롯데서 폭망한 선수, MLB 무실점 행진이라니… 꿈은 허풍 아니었다? 미국 스타일인가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메이저리그 통산 38승이라는 화려한 경력과 함께 지난 시즌 막판 롯데의 승부수로 합류한 빈스 벨라스케즈(34·시카고 컵스)는 말 그대로 처절한 실패를 겪었다. 제아무리 경험이 많고 뛰어난 경력이 있어도, 한국 무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말짱 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벨라스케즈는 지난해 롯데에 합류한 뒤 11경기에서 35이닝을 던지는 데 그치며 1승4패 평균자책점 8.23이라는 역대급 최악 성적을 냈다. 벨라스케즈와 함께 3강 이상으로 가려던 롯데의 계획은, 벨라스케즈의 부진과 함께 산산조각났다. 시즌 뒤 쓸쓸하게 미국으로 돌아갔고, 스프링트레이닝을 코앞에 둔 시점까지 계약을 하지 못하다 가까스로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191경기, 선발로만 144경기에 나간 경험은 인정할 만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하락세였고, 지난해에는 KBO리그에서도 실패했다. 게다가 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미국에서 잊히는 흐름으로 가던 선수였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벨라스케즈의 경험을 눈여겨 본 시카고 컵스가 생각보다 이 선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리플A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돌던 벨라스케즈는 4월 25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콜업됐다. 당시 컵스는 일시적으로 던질 투수가 마땅치 않아 마이너리그에서 누군가를 임시 선수로 콜업해야 했고, 성적을 떠나 경험이 많은 벨라스케즈를 부른 것이다. 벨라스케즈는 그렇게 4월 26일 LA 다저스와 경기에서 2⅓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2023년 이후 첫 메이저리그 등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임시 선수인 만큼 곧바로 양도선수지명(DFA)돼 강등된 벨라스케즈는 결국 컵스와 다시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부상이 있어 보름 이상 빠지는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컵스는 25일 다시 벨라스케즈를 메이저리그 무대로 콜업했다. 역시 임시 선수의 느낌이 강하기는 했지만, 직전 콜업에서 나름 쏠쏠하게 써 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렇게 28일 두 번째 등판에서도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콜업 이후 좀처럼 등판 기회를 잡지 못했던 벨라스케즈는 28일 밀워키와 원정 경기에 팀이 8-2로 앞선 9회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점수 차가 박빙이었다면 사실 내기 부담스러웠을 상황이지만, 점수 차가 6점으로 벌어지자 필승조 소모보다는 최근 등판이 없어 어깨가 생생했던 벨라스케즈를 내 경기 마무리에 도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
9회 등판한 벨라스케즈는 부담스러운 타자일 법했던 선두 브라이스 투랑을 1루 땅볼로 처리하며 한숨을 돌렸다. 강한 타구였지만 1루수의 수비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어 윌리엄 콘트레라스를 다시 1루수 뜬공으로 처리했다. 이어 대타 게럿 미첼을 1루수 땅볼로 정리하면서 이날 경기를 깔끔하게 끝냈다. 1이닝 퍼펙트, 투구 수는 12개에 불과했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94.1마일(151.4㎞)이 나왔다.

메이저리그 등판은 두 경기고, 긴박한 상황에서 등판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3⅓이닝 무실점이라는 안정적인 성적을 내면서 눈도장을 받았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위기가 찾아올 것으로 보이나 다시 DFA 절차를 거쳐야 하는 부담이 있는 만큼 컵스도 당분간 벨라스케즈를 추격조로 활용하며 26인 로스터에 둘 가능성이 제법 커졌다.
사실 구속이나 던지는 구종 자체에서 롯데 시절과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는 건 아니다. 저 정도 구속은 KBO리그 시절에도 나왔고, 새로운 구종을 개발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역시 메이저리그 타자들과 KBO리그 타자들의 성향이 다른 것은 분명하고, 벨라스케즈는 조금 더 공격적인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방망이를 어떻게 이끌어내야 하는지를 아는 베테랑이다. 지난해 KBO리그 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때로는 환경이 많은 것을 다르게 한다.
벨라스케즈는 지난 4월 인터뷰 당시 “나는 아직도 패스트볼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고 했고, 실제 28일 경기에서도 패스트볼 위주의 투구로 까다로운 밀워키 타자들을 잡아냈다.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벨라스케즈의 목표는 메이저리그 서비스타임 10년을 채우는 것. 올해 남은 시즌을 꾸준하게 메이저리그에 붙어있으면 9년에 가까운 서비스타임을 확보할 수 있고, 그 성과를 발판 삼아 ‘서비스타임 10년’에 도전할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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