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추락한 월드컵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번 월드컵부터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참가국 수가 대폭 늘어 상대적 약팀들이 더 많이 참가했음에도 성적은 지난 대회 16강에서 뒷걸음쳤다. 기존 대회 체제와 비교하면 사실상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결과다.
팬들은 세계 최정상급 공격수 손흥민(LA FC), 테크니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철벽 수비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역대 최강이라 할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 항로를 잃은 듯 헤매다 산산이 난파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영웅들로 구성된 이 팀을 좌초하게 만든 것은 외부에서 불어온 풍랑이나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이미 그 과정을 지켜봐서 알고 있듯이 그건 우리 내부 원인으로 발생한 인재(人災)였다.
지난 3년간 한국 축구는 극도의 몸살을 앓았다. 그 이유는 ‘승부조작 기습사면’ ‘클린스만, 홍명보 감독 불공정 선임’ 등과 같은 불합리로 인한 것이었다. 이 사태가 전해주는 내용은 분명하고 명확하다. 불합리와 불공정으로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자명한 사실이다. 대한축구협회는 그동안 온갖 구실을 대고 자기 합리화와 변명으로 일관하며 책임 회피하기 바빴지만 그 최종 결과는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벌어진 참사였다. 선수들도, 홍 감독도, 정몽규 협회장도 모두가 최악의 결과 속에 퇴장하게 됐다.
막강한 스쿼드를 지니고도 무력한 경기력을 보인 한국팀의 문제점은 비탄력적 전술 운용이었다. 시작 전부터 많은 문제점을 지적받은 스리백 포메이션을 끝까지 고집했고 그 틀에 선수들을 끼워 넣었다. 선수들에게 익숙했던 포백 포메이션을 갑작스레 버리고 스리백을 도입해 선수들이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던 데다, 스리백 운용의 핵심인 빠른 윙백의 부재로 인해 핵심 전술이 사실상 막혀 있었는데도 이를 고집했다. 결국 선수들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한 포지션에서 실수를 연발했고 공줄 곳을 찾지 못해 헤매었다. 더 큰 문제는 상대 팀이 바뀌는데도 계속 같은 포메이션과 전술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남아프리카공화국 감독이 한국 전술은 뻔하다는 모욕적인 발언까지 했을까. 나이가 들긴 했어도 손흥민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감독의 재량에 속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부차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월드컵뿐만 아니라 축구계 전체에 만연한 미래 준비와 장기 전략 부재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작용해온 불합리한 의사 결정 구조들이었다. 이 대회 결과는 이런 근본적 문제의 산물이다. 이번 대회 결과를 계기로 협회에 대한 대대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온 국민의 관심을 받는 월드컵이었기에 전국적인 비판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유독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있으니 그건 바로 정치인들의 축구 비판이다. 축구계가 아무리 비판받을 일을 했어도 정치인들만 할까. 축구는 패했어도 민생에 끼치는 영향은 정치보다 덜하다. 비리 혐의에 연루된 일부 정치인이 팬들을 위하는 척하고 축구협회 개선 운운하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월드컵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여전한 현실 문제들이다. 당장 눈앞의 선거관리위원회 문제부터 시작해 온갖 답답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강렬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은 제대로 바뀌지 않고 있다. 정치인들이 “불공정, 무능, 무원칙” 운운하며 협회 개혁을 거론했는데, 이를 협회가 아닌 정치에 대입하면 그 역시도 들어맞는다. 많은 이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염원했는데도 제대로 바뀌지 않고 당리당략에 따라 저항해온 모습은 축구계뿐만 아니라 선관위와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에서 볼 수 있는 모습 아닌가. 강렬한 염원과 희망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불합리와 불공정이 이를 꺾어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일 수 있다. 이 대회는 이러한 모습을 새로 고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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