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의 마지막 소임, 홍명보 경질이어야 하는 이유···임명권자들의 책임을 남기는 유일한 길 [이근승의 삐딱선]

이근승 MK스포츠 기자(specialone2387@maekyung.com) 2026. 6. 2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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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KFA)는 홍명보에게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기회를 줬다.

지도자 홍명보는 출발선부터 달랐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선수 시절 ‘축구를 잘했다’는 것이었다.

선수 홍명보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MLS) 로스앤젤레스(LA) 갤럭시 유니폼을 입고 뛰던 2004년 10월 10일 은퇴했다.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은 2005년 9월 26일. KFA는 딕 아드보카트 한국 축구 대표팀 신임 감독을 보좌할 코치 중 한 명으로 홍명보를 택했다.

지도자 홍명보는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기회를 받았다. 사진 원본=대한축구협회. 편집=이근승 기자
홍명보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월드컵을 두 번이나 지휘한 지도자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이 월드컵 도전사에서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한 대회. 2026 북중미 월드컵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기서 하나 짚어야 할 점이 있다.

홍명보는 지도자 경험이 없는 상태로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가 됐다.

홍명보는 2005년 8월 22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시작된 ‘2급’ 지도자 강습회에 참여했다. 홍명보가 처음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던 날이다.

홍명보는 ‘3급’부터 시작하지 않았다. ‘프로 100경기 또는 A매치 20경기 이상 뛴 경험이 있는 지원자의 경우 3급 지도자 강습회가 면제된다’는 규정 덕분이었다.

홍명보가 2006 독일 월드컵 본선을 위해 출항한 아드보카트호에 탑승했을 때 그는 2급 지도자 자격증 취득 3주 차였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을 이끌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 사진=ⓒAFPBBNews = News1
그때도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2급 지도자 자격증 보유자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팀만 지도할 수 있었다.

당시 KFA는 대표팀 지도자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KFA 1급 지도자 자격증이나 아시아축구연맹(AFC) A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자’로 명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2급 지도자 자격증 취득 3주 차였던 홍명보는 아드보카트호 코칭스태프로 탑승해 단 9개월 만에 꿈의 무대인 월드컵을 경험했다.

한국은 2006 독일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3경기에서 1승 1무 1패(승점 4점)를 기록했다. 본선 참가국 수가 32개국이던 때였다.

한국은 조 3위로 조별리그 통과에 실패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대회 후 한국을 떠났다.

홍명보 감독. 사진=연합뉴스 제공
홍명보는 대표팀에 남았다. 코치로 국가대표팀과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는 올림픽 대표팀(U-23)을 겸직하면서 영향력을 넓혔다.

코치 홍명보는 2007 AFC 아시안컵, 2008 베이징 올림픽 등을 경험한 뒤 감독 생활을 시작한다. 한국 U-20(20세 이하) 대표팀 사령탑이었다.

홍명보는 2009년 이집트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이란 성과를 냈다. KFA는 홍명보에게 2012 런던 올림픽을 목표로 하는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을 맡겼다.

2010년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이었다. 한국은 준결승전에서 한 수 아래 전력인 아랍에미리트(UAE)에 연장 접전 끝 패하며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2년 뒤 런던 올림픽을 목표로 21세 이하 선수 위주로 구성한 대표팀이었다고 하나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감독이 올림픽까지 감독직을 이어간 사례는 한국 축구 역사에서 흔치 않다.

그 흔치 않은 역사에 홍명보가 있다.

박항서 감독. 사진=천정환 기자
2002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던 박항서 감독은 대회 직후 감독직을 내려놔야 했다.

KFA는 박항서에게 2002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 두 달 반 뒤 치러진 아시안게임 실패의 책임을 물었다.

홍명보는 KFA의 굳건한 지원과 신뢰를 등에 업고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이란 역사를 썼다. 한국 남자 축구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건 유일한 사례다.

다만 홍명보에겐 U-20 대표팀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팀을 만들어 갈 기회가 주어졌다. 2009 U-20 월드컵 중심에 섰던 이들이 연령별 대표의 끝인 23세가 됐을 때 치러졌던 대회가 런던 올림픽이다.

홍명보에겐 아시안게임을 올림픽을 위한 경험의 무대로 삼을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까지 주어졌다.

KFA는 홍명보에게만큼은 체계적이었다.

KFA는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이후 조광래, 최강희 두 감독을 거친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홍명보를 앉힌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까지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홍명보는 감독으로 참가한 첫 월드컵에서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다. 조별리그 3경기 1무 2패(승점 1점)였다. 한국이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유일한 대회다.

홍명보는 2015년 12월 17일 중국 슈퍼리그(1부) 항저우 뤼청 감독으로 선임된다. 지도자 홍명보의 첫 프로 생활이었다.

홍명보의 항저우는 2016년 슈퍼리그 15위를 기록하며 갑급리그(2부)로 강등됐다. 홍명보는 2017년 5월 25일 항저우 지휘봉을 내려놓는다.

홍명보 감독. 사진=김영구 기자
KFA가 다시 한 번 홍명보에게 기회와 권한을 준다.

KFA는 2017년 11월 홍명보를 ‘행정 총괄 책임자’인 전무이사로 내정했다.

여기서 또 하나 짚어야 할 게 있다.

홍명보는 ‘축구를 잘한 선수’였다. ‘축구를 남들보다 잘했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빠르게, 더 많은’ 지도자 기회를 잡았다. 홍명보가 ‘지도자로서 무언가를 증명해서’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은 기회’를 잡았던 게 아니다.

홍명보가 KFA 행정을 총괄하는 전무이사를 맡았을 때도 그랬다. 행정 능력을 증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홍명보가 대한민국 축구의 행정을 총괄하는 전무이사가 됐다.

홍명보 감독이 울산 HD 사령탑으로 지휘한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홈구장 관중석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홍명보는 KFA 전무이사로 3년 동안 머문 뒤 울산 HD로 향했다. 그는 울산에서 K리그1 2연패란 성과를 냈다. 2005년 이후 리그 우승이 없던 울산의 한을 풀었다.

리그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24년 7월 13일이었다. KFA는 울산 감독을 맡고 있던 홍명보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다.

홍명보는 2023년 8월 2일 K리그 최고 대우를 받으며 울산과 3년 재계약을 맺었었다.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아 팀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는 존중받지 못했다. K리그를 향한 기본적인 배려조차 없었다.

‘국가대표를 위해선 K리그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쌍팔년도 인식은 K리그가 정치권에 의해 탄생한 1983년부터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KFA는 이 사실을 2024년 7월 13일 명확하게 확인시켜 줬다.

한국 축구 대표팀 선수단 소개 시 홍명보 감독의 이름이 불리자 팬들은 거센 야유와 걸개를 내걸었다. 사진=이근승 기자
팬들이 분노했다.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고,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문화체육관광부 감사가 진행되면서 ‘축구판에서 당연하게 여겨진 부끄러운 민낯’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엔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다.

KFA는 행정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은 4월 23일 KFA가 문체부를 상대로 낸 특정감사 결과 통보 및 조치 요구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선언했다. 재판부는 정몽규 회장이 축구 대표팀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에서 자격없이 개입한 점,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이사회의 권한이 무력화된 점 등을 지적하며 문체부의 징계 요구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아이돌 콘서트를 방불케 했던 국가대표 A매치가 텅 빈 관중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박수받으며 출항하는 월드컵 출정식이 사라졌고, 대회 개막이 다가오면서 ‘무관심’이 걱정으로 떠올랐다.

홍명보 감독. 사진=김영구 기자
변함이 없었던 건 홍명보를 향한 KFA의 진심이었다.

KFA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홍명보를 최대한 지원했다.

그 결과 이번 대표팀의 준비 과정은 12년 전인 2014 브라질 월드컵과 확실히 달랐다.

코칭스태프 구성부터 과거와 차이가 있었다. 내국인 감독 체제에서 외국인 코치의 수(4명)가 한국인 코치(3명)보다 많은 최초의 월드컵이 이번 대회다.

대표팀은 출정식을 건너뛴 대신 이른 소집과 고지대 적응 훈련을 진행했다.

48개국 체제, 월드컵의 경험, 선수 개개인의 경력. 이 세 가지만 봐도 이번 월드컵 조 편성은 역대 최고였다. 사진 원본=AFPBBNews=News1. 편집=이근승 기자
조 편성에선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행운이 따랐다.

체코는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두 개의 독립 국가(체코/슬로바키아)로 분리된 이후 월드컵에 딱 한 번 나왔던 팀이었다.

체코가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던 건 20년 전인 2006 독일 월드컵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북중미 월드컵은 체코란 국가의 두 번째 월드컵 도전이었다. 그런 체코에 월드컵 경험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체코는 플레이오프를 거쳐 북중미 월드컵 본선에 올라 고지대 적응 기회를 만들지도 못했다.

슬퍼하는 이강인. 사진=연합뉴스
개최국인 멕시코는 시드 배정 국가 중에선 해볼 만한 팀으로 꼽혔다. 물론 상대 전적이나 객관적인 전력에서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상대였지만, 아르헨티나, 스페인, 브라질, 네덜란드, 프랑스, 잉글랜드 등 다른 시드 국가와 비교했을 땐 비교적 수월한 팀이었다.

남아공은 월드컵 본선에 세 번 올라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팀이었다.

남아공이 월드컵 본선에 오른 건 2010년이 마지막이었다. 남아공은 자국에서 열렸던 2010년 대회에서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개최국 조별리그 탈락이란 불명예 기록을 쓴 팀이었다.

남아공은 2026년 6월 25일 한국전 승리 전까지 올해 치른 A매치 7경기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팀이기도 했다.

한국은 월드컵 경험자가 단 1명도 없고,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와 같은 슈퍼스타 하나 없는 남아공에 무기력하게 패했다.

한국은 4년 전 월드컵에서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과 한 조에 속한 매우 어려웠던 조별리그를 뚫고 16강에 올랐던 팀이다. 당시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파울루 벤투 감독. 사진=천정환 기자
4년 전 32개국 체제에서 16강에 올랐던 한국이 32강 진출을 놓고 우리에게 유리한 경우의 수를 기도했다.

48개국 체제 조별리그 탈락.

한국은 2026 북중미 월드컵을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 최저 순위로 마감했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에서의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잡았던 유일무이한 인물. 홍명보는 또다시 처참한 실패를 반복했다.

홍명보 감독. 사진=연합뉴스 제공
홍명보는 선수 은퇴 후 ‘최고의 선수였다’는 이유로 축구계 기득권이 깔아놓은 양탄자 위를 걸었다.

지금 한국 축구계엔 단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가르치는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지도자가 수두룩하다.

보통 지도자의 세상엔 휴일 없이 공부와 경험 쌓기에만 매진해도 기회가 찾아올 것이란 보장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기회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태극마크를 달고 나서는 무대가 아니다. 수많은 지도자가 프로에서 딱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삶을 바친다.

대한민국 대다수 지도자에게 월드컵 사령탑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큰 행운이 따라야 한다.

KFA는 지도자 홍명보에게 역사상 유례없는 기회를 줬다.

홍명보는 억울할 수 있다. 그가 감독 선임을 위해 위법한 행위를 한 건 아닌 까닭이다.

선수 생활을 마감했더니 그가 가려는 길 위에 양탄자가 깔렸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 그가 향한 길엔 늘 남들보다 넓고 빠른 길이 열렸다.

홍명보는 그 길을 걸었을 뿐이다.

홍명보 감독의 선수 시절. 사진=AFPBBNews=News1
국민이 홍명보를 사랑했던 이유가 있었다.

국민은 홍명보를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축구인’이라고 믿었다.

선수 시절 강력한 카리스마로 원 팀을 만들었던 국가대표팀 주장. 두 번째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 약 1주일 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후 KFA의 학습 능력과 조직 내 이기심을 지적하던 모습에서 국민은 ‘홍명보는 다르다’고 믿었다.

그러나 홍명보는 변함없이 양탄자 위를 걸었다.

울산 HD 팬들이 홍명보 감독이 국가대표팀 사령탑 후보로 거론되자 홈구장에 내걸었던 걸개. 사진=이근승 기자
홍명보 감독이 국가대표팀으로 향한 뒤 울산 HD 팬들이 내걸었던 걸개. 사진=이근승 기자
한국 축구와 홍명보를 사랑했던 이들이 느끼는 감정의 핵심은 배신감이다.

홍명보는 자진 사퇴가 아닌 경질되어야 한다.

자진 사퇴는 개인의 선택으로 끝난다. 물러나는 것으로 ‘나는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경질은 임명권자들의 책임을 남긴다. 그에게 숱한 기회를 줬던 축구판 기득권의 반성과 책임이 경질이란 결론에 도달해야 한국 축구는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설 수 있다.

홍명보 경질은 단순히 지도자 한 사람을 내치는 것이 아닌 구시대적 체계와의 결별이어야 한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마지막 소임은 홍명보 감독 경질이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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