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역차별이라는 비호남권에게

박형주 기자 2026. 6. 2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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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정치부장
박형주 정치부장

'가뭄에 단비'. 오랫동안 메마른 땅에 꼭 필요한 비가 내린다는 뜻이다. 지금 광주와 전남 시도민의 마음이 정확히 이와 같다. 오랜 고통이 끝나고 마침내 즐거움이 찾아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고사성어와도 잘 어울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 지역에 400조 원에서 500조 원을 투자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수년간 메말랐던 땅이 기름지게 될 때가 드디어 온 것일까?

이번 투자 소식은 단순한 부품 조립 공장을 짓는 수준이 아니다. 반도체 제조의 핵심 시설인 전공정 생산라인과 후공정 패키징 시설이 모두 포함되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비수도권 지역에 이런 초대형 종합 반도체 단지가 들어서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국가의 핵심 첨단 산업은 철저히 수도권과 충청,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만 육성됐다. 이번 투자는 과거 호남 지역민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찾아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경제 지원 조치다. 과거 호남은 대한민국의 눈부신 산업화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국가의 모든 경제 개발 축은 수도권과 경부축을 중심으로만 이루어졌다. 역대 정부는 영남권에 대규모 공장과 중화학 산업단지를 집중적으로 건설했다. 반면 호남에는 경제를 이끌어갈 대기업의 굵직한 제조 시설이 거의 들어서지 못했다. 일할 곳이 턱없이 부족해 지역의 젊은이들은 고향을 등지고 수도권으로 떠나야만 했다. 광주와 전남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헌신을 바쳤다. 하지만 국가는 그에 합당한 경제적 보상과 지원을 오랫동안 외면했다. 호남 시도민들이 겪어온 상대적인 박탈감과 경제적 억울함은 매우 깊다.

그런데 최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소식이 알려지자 다른 지역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대구와 경북 등 영남권 정치인들이 연일 거세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은 정부의 호남권 투자가 영남에 대한 심각한 역차별이자 낡은 지역 소외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반도체와 같은 국가 핵심 전략 산업은 철저히 시장과 경쟁 논리에 따라 입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재명 정부가 다가오는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인 표 계산에 따라 호남에만 특혜를 집중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자신들의 지역이 부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영남권 정치인들의 이러한 비판은 결코 타당하지 않다. 이번 투자를 역차별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수십 년간 호남이 겪은 차별의 아픈 역사를 무시하는 처사다. 오랫동안 기울어져 있던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정당한 작업을 두고 특혜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거듭 강조한 것처럼 지역 균형발전은 특정 지역을 향한 시혜적인 배려가 결코 아니다. 이는 지방 소멸의 위기를 막고 대한민국 전체가 생존하기 위한 최우선의 필수 전략이다. 호남을 반도체 핵심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은 편중된 기형적인 산업 구조를 바로잡는 역사적인 출발점이다.

게다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기업 입장에서 경제적 타당성도 완벽히 갖추고 있다. 광주와 전남은 대규모 공장을 지을 수 있는 넓은 산업 부지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또한 풍력과 태양광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전국에서 가장 풍부하다. 글로벌 기업들이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RE100 요건을 맞출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여기에 국가 인공지능 컴퓨팅센터와 우수한 연구 인재 인프라까지 튼튼하게 갖추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남부권에 새로운 첨단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매력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제는 소모적인 지역 이기주의를 단호히 버리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다. 호남의 경제 발전은 결코 영남의 희생을 딛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호남의 반도체 산업 도약은 대한민국 전체의 경쟁력을 한 차원 높이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도 많이 남아 있다. 수백조 원의 투자가 성공적으로 실현되려면 막대한 전력과 공업용수를 차질 없이 공급하는 방안을 빈틈없이 준비해야 한다. 또한 산업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할 우수한 반도체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일도 매우 시급하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가 지역 경제를 살찌우는 튼튼한 뿌리로 자리 잡도록 우리 모두가 온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