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20년’ 강정평화센터 임대료 탓 문 닫아…“거점없이 계속 활동” [현장]

지난 26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해군기지(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로 들어가는 진입로 입구에 있는 감귤밭. 초록빛 풋귤이 싱그럽게 익어가는 이곳에 한때 강정평화센터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흔적은 낡은 간판밖에 없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반대주민회)의 활동 거점인 평화센터가 문을 닫은 건 지난달 말이다. 2020년 12월 임대한 480평 감귤밭 한가운데 설치한 20평짜리 비닐하우스에 평화센터를 연 지 5년6개월 만이다.
이 평화센터는 2012년부터 8년간 운영됐던 첫 평화센터를 잃은 반대주민회가 어렵게 다시 일군 보금자리였다. 2020년 5월 첫 평화센터 땅이 팔려 건물이 헐리게 되자 반대주민회는 재건립추진위원회를 꾸렸다. 이후 주민 출연기금(500만원), 크라우드 펀딩 후원금(2882만원),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의 후원금(1천만원) 등으로 감귤밭을 빌려 비닐하우스 4동을 지었다.

그중 하나의 비닐하우스는 오랜 싸움에 상처 입은 주민들이 서로 위로하고 회의하며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는 장소로 쓰였다. 2007년 정부와 제주도가 국가안보사업이라며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건설지로 발표한 뒤 일부 주민은 처절하게 저항했다. 연인원 700명이 넘는 주민과 활동가가 경찰에 연행됐고, 총 4억원에 가까운 벌금이 부과됐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정부와 제주도가 반대 주민 쪽을 과잉 진압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며 사과하라고 했을 정도다.
2016년 해군기지가 준공된 뒤에도 평화활동을 이어온 반대주민회가 두번째 보금자리마저 잃은 건 임대료 부담 때문이다. 감귤밭 임대료는 연 650만원으로 주변 시세(연 48만원 추정)의 10배가 훌쩍 넘었다. 감귤 판매 수익금과 주민 회비를 합쳐 가까스로 임대료를 내고 나면 정작 활동비가 남지 않았다.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공동대표는 “다른 밭 주인들은 우리가 돈을 얼마를 준다고 해도 (투쟁한다는 이유로) 땅은 못 빌려준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우리 밭 주인 덕분에 잘 지냈다”면서도 “임대료 압박으로 이도 저도 할 수 없다면 임대료를 감당하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후원해준 분들께는 죄송하다”고 했다.

임대료 부담을 덜어낸 반대주민회는 앞으론 통물도서관 등을 빌려 쓰며 거점 없이 활동하기로 했다. 내년 투쟁 20주년을 앞두고는 평화와 연대 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다. 고 대표는 “그동안 강정마을이 기지화되거나 해군기지가 바다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 꾸준히 점검해왔다”며 “앞으로 주민의 기억 속에 있는 지난 20년을 기록하는 책을 발간하고 제주생명평화대행진과 같은 행사도 제대로 준비하겠다”고 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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