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전력 전쟁 2막’ 준비하는 HD현대일렉트릭, 물류 자동화된 배전신공장 가보니

지난 25일 오후 충북 청주 HD현대일렉트릭 배전(配電)캠퍼스. 성인 어깨 높이 자율주행 물류로봇(AMR) 한 대가 취재진과 마주치자 “길이 막혔어요. 장애물을 치워주세요”라며 멈춰 섰다. 사람이 비켜서자 곧바로 다시 움직였다. 완제품 창고에선 높이 9m의 자동 케이스 처리 로봇 10대가 AMR이 싣고 온 케이스들을 10m 높이 선반의 빈 공간에 쉴 새 없이 적재했다.
이곳은 HD현대일렉트릭이 1161억원을 투입해 구축한 미래형 배전 기기 생산 기지다. 자재 입고부터 AI 기반 수요 예측, 생산, 검사, 출하까지 공장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자동화 시스템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AI 전력 전쟁 2막… “이제는 배전”
최근 2~3년 전력 기기 업계의 수퍼사이클을 이끈 건 초고압 변압기였다. 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멀리 보내는 대형 송전탑과 변전소용 초고압 기기가 품귀 현상을 빚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제 전선(戰線)이 배전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본다. 배전은 변전소를 거쳐 온 고전압의 전기를 공장, 빌딩, 데이터센터, 가정 등 실제 수요처에 맞게 전압을 낮추고 안전하게 나눠주는 전력망의 ‘최종 배달’ 단계다. 전력 수요가 늘수록 배전망 투자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다.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AI 데이터센터 내부에는 전기를 안전하게 분배하는 배전반, 전압을 낮추는 배전 변압기, 과전류를 차단해 AI 서버를 보호하는 중저압차단기가 대규모로 들어간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프리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배전 기기 시장 규모는 2025년 1202억9000만달러(약 185조원)에서 2034년 2032억3000만달러(약 312조원)로 두 배 가까이 커질 전망이다. 초고압 변압기는 수주에서 인도까지 3~4년이 걸리지만 배전 기기는 빌딩이나 데이터센터 건설에 맞춰 상시 납품되는 특성상 경기 방어력도 높다. 전력 업계가 배전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생산 능력보다 중요한 건 납기
HD현대일렉트릭도 이런 변화를 겨냥해 청주에 배전 기기 생산 거점을 구축했다. 기존 경기 안성의 생산 라인을 접고 울산의 배전 라인까지 통폐합하기로 했다. 청주 캠퍼스의 강점은 ‘AI와 로봇의 결합을 통한 뛰어난 생산성’이다. 공장의 두뇌 역할을 하는 제조실행시스템이 AI 기반 수요 예측과 연동돼 필요한 부품과 작업 순서를 초 단위로 계산한다. 과거에는 작업자가 일일이 창고를 오가며 부품을 찾았지만, AI의 지시를 받은 자동 이송장치와 AMR이 생산 라인으로 필요한 자재를 갖다 준다. 고전압 시험과 외관 검사도 자동화 로봇이 대체했다. 저압기기 생산 라인의 자동화율은 95%에 달한다.
현재 글로벌 전력 기기 시장은 성능 못지않게 얼마나 빨리 납품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청주 배전캠퍼스의 중저압차단기 생산능력은 기존 안성 공장 대비 약 70% 늘었지만 출하까지 걸리는 시간은 줄였다. 공장의 생산 효율성을 나타내는 설비종합효율은 가동 초기인데도 예전 안성 공장(58%)보다 높은 75%다. 회사는 2030년까지 효율을 세계 최고 수준인 90%까지 높여 연간 중저압차단기 생산량을 1300만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창호 HD현대일렉트릭 부사장은 “배전 기기 투자는 단순히 생산 시설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를 안정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장기적으로 배전 기기 매출 비율을 현재 16% 수준에서 30%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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