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떠나는 미국인들…대공황 이후 첫 ‘인구 순유출’

김하늬 미국 통신원 2026. 6. 2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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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아메리칸 드림’…지난해 순이민자 ‘-15만 명’
치솟은 주거비·의료비…총기 범죄·정치 양극화도 한몫

(시사저널=김하늬 미국 통신원)

현재 워싱턴DC는 거대한 생일잔치를 준비하는 도시 같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잇는 내셔널몰 곳곳에는 건국 250주년을 뜻하는 'America 250' 배너가 걸려 있고, 박물관과 기념관들은 특별전 준비에 분주하다. 미국은 1776년 독립선언 이후 250주년을 맞는 역사적 순간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축제 분위기 이면에는 미국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약 15만 명의 순유출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들어오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미 역사에서 순유출 현상은 대공황 시기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오랫동안 세계 이민자들의 종착지였던 미국이 이제는 자국민들까지 떠나는 나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ChatGPT 생성이미지

더 나은 치안, 더 싼 물가 찾아 유럽행 러시

이 변화의 한 축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이 자리한다. 트럼프는 재집권 이후 대규모 추방과 비자 제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미 국토안보부에 따르면 지난해 약 67만 명이 강제 추방됐고 220만 명 이상이 자진 출국한 것으로 집계됐다. 골드만삭스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순이민 규모가 역사적 평균보다 약 80%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외국인 유입이 줄어든 것만으로는 현재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미 시민 스스로 미국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인들의 해외 이주 열풍을 집중 조명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은퇴자나 디지털 노마드(유목민)가 아니다. 자녀를 둔 평범한 중산층 직장인들이다. 뉴욕에서 평생을 살았던 보험 분석가 켈리 맥코이는 연봉 8만 달러를 받고도 생활이 빠듯해지자 알바니아로 이주했다. 어도비와 파라마운트에서 일했던 마이클 르블랑은 아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2차례 총기 위협 사건이 발생한 뒤 가족과 함께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떠났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목적지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이다. 포르투갈의 미국인 거주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500% 이상 증가했고 지난해에만 36% 늘어났다. 아일랜드는 지난해 약 1만 명의 미국인을 받아들였는데 이는 전년의 2배 수준이다. 독일 역시 미국에서 유입된 인구가 미국으로 향한 독일인보다 많았다.

미국인들은 왜 떠나는 것일까. 첫째 이유는 생활비 부담이다. 미 경제는 여전히 강하다. 실업률은 낮고 인공지능 열풍에 힘입어 뉴욕 증시는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중산층이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하버드대 주택연구센터에 따르면 미 중간 가격 주택을 구매하기 위해 필요한 연소득은 2020년 6만6000달러에서 지난해 12만 달러 이상으로 약 2배로 뛰었다. 집값 상승 속도가 임금 상승을 크게 앞질렀다. 뉴욕과 뉴저지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더 뚜렷하다. 맨해튼 평균 아파트 임대료는 이미 월 4000달러를 넘어섰고,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단독주택 가격도 80만~100만 달러 수준이 일반화됐다. 연봉 20만 달러가 넘는 맞벌이 가구조차 내 집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교육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뉴욕 대도시권의 데이케어 비용은 자녀 한 명당 연간 2만~3만 달러에 이른다. 자녀가 둘이면 연간 5만 달러 이상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 가정은 은퇴자금 적립을 중단하거나 의료비 지출을 줄여가며 보육비를 감당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의료비는 해외 이주를 고려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다. 

총기 범죄에 대한 불안도 중요한 배경이다.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한 한 미국인은 WSJ에 "5세 아이가 총기 난사 대응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원했다"고 말했다. 포르투갈로 이주한 미국인 가족 역시 자녀 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위협 사건을 계기로 미국을 떠났다.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피로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외 이주 컨설팅 업체들은 트럼프 재선 이후 해외 이주 상담이 급증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을 단순한 정치 현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집값과 의료비, 교육비 부담, 총기 문제, 원격근무 확산 등 구조적 변화가 오랫동안 누적된 결과라는 것이다.

너무 비싼 생활비에 나라 등지는 美 중산층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한 걸음 더 나아간 현상을 조명했다. 일부 미국인은 더 이상 미국을 떠날지 여부를 고민하는 단계가 아니라, 돌아갈 수 있을지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아와 베트남, 멕시코 등에서 원격근무를 하며 생활하는 미국인들은 현지에서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외식을 즐기는 등 미국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생활 수준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치솟은 주거비와 의료비, 노후자금 부담 때문에 귀국 자체가 부담스러운 선택이 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실제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돌아갈 비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해외 이주가 일시적 체류가 아니라 사실상의 영구 이민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향하는 유럽 국가들이 미국보다 경제적으로 더 부유한 곳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임금 수준이 미국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미 기업에서 급여를 받거나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기반으로 해외 생활을 선택한다. 미국 경제의 높은 생산성이 만들어낸 소득을 바탕으로 유럽의 의료·교육 시스템과 치안, 삶의 질을 누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미 경제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브루킹스연구소와 딜로이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민 감소가 노동 공급을 줄이고 경제성장률을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미 출산율이 인구 유지에 필요한 수준을 밑돌고 있다. 최근 노동력 증가의 상당 부분은 이민자들이 담당해 왔다.

미 경제지 포천은 이를 국가부채와 연결해 분석했다. 현재 미 국가부채는 38조800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이민위원회에 따르면 이민자들은 2023년 한 해 동안 6500억 달러 이상의 세금을 납부했다. 케이토연구소는 1993년 이후 이민자들이 미국 재정에 14조5000억 달러 규모의 순기여를 했다고 추산했다. 노동연령층 비중이 높은 이민자들이 미 경제와 재정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는 의미다.

결국 미국은 건국 250주년을 맞아 묘한 역설과 마주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국가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며 성공을 자축하고 있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자국민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250년 전 미국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의 목적지였다. 하지만 250년 후인 현재,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면서도 자국민들을 붙잡지 못하는 현상. 미국인들의 해외 이주 열풍은 건국 250주년 미국이 마주한 가장 불편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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