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호의 월드컵 파일] 끝은 또 다른 시작, '월드컵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승패는 순간이지만 '태도'는 한국 축구의 미래다

[더팩트 | 최순호 전 국가대표] 월드컵은 4년에 한 번 열린다. 그러나 월드컵의 시계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한 대회의 막이 내리는 순간, 세계 축구는 곧바로 다음 대회를 향해 움직인다. 지역예선이 시작되고, 각국 대표팀은 새로운 선수와 전술, 지도 체계를 점검한다. 선수에게 월드컵은 꿈이고, 지도자에게는 평생의 도전이며, 국가협회에는 축구 경쟁력을 증명하는 무대다.
나 역시 선수와 지도자로 축구 인생을 살아오며 이 시계의 무게를 여러 번 느꼈다. 월드컵은 단순한 국제대회가 아니다. 단일 종목으로 열리는 세계 최고 축제이며, 때로는 올림픽을 뛰어넘는 관심과 열기를 만들어낸다. 한 경기의 승패가 국가적 자존심과 연결되고, 한 세대의 축구 방향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래서 월드컵은 끝나는 대회가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대회라고 말하고 싶다.
그 중심에는 국제축구연맹, FIFA가 있다. FIFA는 때로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된다. 운영 방식이나 결정 과정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축구를 하나의 질서 안에서 움직이게 하는 힘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FIFA는 명확한 규정과 원칙, 대륙별 체계, 국가협회 관리 시스템을 통해 세계 축구의 큰 틀을 유지한다. 무엇보다 월드컵 출전 자격이라는 권한은 매우 강력하다. 국가 권력도, 협회도, 지도자도 월드컵이라는 무대 앞에서는 규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FIFA 시스템의 힘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도 이제 본격적인 시간 속으로 들어섰다. 대한민국은 본선 진출을 일찍 확정했고, 그만큼 기대도 컸다. 그러나 대회는 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좋은 출발 뒤에도 흔들릴 수 있고, 한 번의 실수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축구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준비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고, 상대와 환경, 심리와 운이 모두 변수로 작용한다.
물론 팬들의 아쉬움과 비판은 당연하다. 대표팀은 국민의 관심과 응원을 받는 팀이고, 그만큼 책임도 크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대회가 진행되는 시간이다. 감독이 공식적으로 1차 목표를 32강 통과라고 밝혔더라도, 선수단 내부의 최종 목표는 더 높은 곳일 것이라 믿는다. 대회 중에는 성급한 단정이나 감정적 비난보다 냉정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평가는 결과가 모두 나온 뒤 해도 늦지 않다. 오히려 그때 해야 더 정확하고 책임 있는 평가가 된다.
나는 축구에서 결과만큼 중요한 것이 태도라고 생각한다. 승패는 기록으로 남지만, 사람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것은 그 과정에서 보여준 자세다. 선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하고, 지도자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 협회와 지원스태프는 흔들림 없이 팀을 뒷받침해야 하며, 언론과 평론가도 비판하되 품격을 잃지 않아야 한다. 팬 역시 분노보다 응원의 힘이 더 클 때 대표팀은 마지막까지 싸울 수 있다.
승리했을 때 겸손하고, 패배했을 때 상대를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그것이 한국 축구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다. 옛말에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조화를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래야 한다. 비판은 필요하지만 조롱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응원은 뜨겁되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잃어서는 안 된다.
월드컵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지금의 한 경기, 한 장면, 한 결과도 결국 한국 축구가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일부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품격을 지키며 싸우는 일이다.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 숫자로 남지만, 태도는 한국 축구의 얼굴로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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