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말년 병장 권순우의 윔블던 본선 출동이 반가운 이유
- 지난해 메이저 현장서 한국 선수 부재 절감
* 7월 12일 전역 앞두고 군인 신분 마지막 메이저 출전
* 협회·장호테니스재단, 국군체육부대 테니스팀에 훈련 지원금 5000만 원 전달
* 권순우, 1회전서 스페인 신예 마르틴 란달루세와 격돌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은 28일 영국 런던으로 향합니다.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 참관을 위해서입니다.
이번 출장은 협회장으로서 해야 할 국제 교류 일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올해 주 회장의 발걸음은 지난해와 다릅니다. 올해 윔블던에는 한국 선수가 있습니다. 권순우(28·국군체육부대)가 예선을 뚫고 남자 단식 본선 무대를 밟습니다. 애초 주 회장이 출장 일정을 잡을 때만 해도 불투명했던 권순우의 윔블던 본선행이었습니다.
게다가 2025년 1월 13일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한 권순우는 7월 12일 전역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윔블던은 권순우가 군인 신분으로 출전하는 마지막 메이저 대회입니다.
주 회장에게 권순우의 본선행이 누구보다 반가운 이유입니다.
지난해 주 회장은 호주오픈, 윔블던 등 메이저 대회 현장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성인 남녀 본선 무대에 한국 선수는 없었습니다. 주니어 무대에서도 존재감은 옅었습니다. 과거 삼성증권 감독 시절 이형택, 윤용일, 전미라, 정현 등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 대회 무대를 누비든 장면을 익숙하게 봤든 주 회장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현장의 분위기도 달랐습니다. 한국 선수 없이 메이저 대회에 간 협회장은 예전 같은 대우를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주 회장은 "회장으로 갔는데도 정작 우리 선수가 없으니, 푸대접을 받는 느낌이었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한 대회 관계자에게 "한국은 뛰는 선수가 아무도 없지 않으냐"는 취지의 말을 들었을 때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올해 권순우의 윔블던 본선행은 단순히 선수 한 명의 출전 소식이 아닙니다. 한국 테니스가 메이저 무대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는 상징입니다. 주 회장에게는 국제무대에서 한국 테니스의 존재감을 회복하는 첫 장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권순우에게 윔블던은 낯선 무대만은 아닙니다. 그는 2021년 윔블던에서 독일의 다니엘 마주어를 꺾고 대회 첫 승을 거뒀습니다. 이어 2회전에서는 도미니크 쾨퍼에게 5세트 접전 끝에 패했습니다. 패배였지만 잔디코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대회였습니다.
2022년에는 더 강렬한 장면을 남겼습니다. 1회전 상대가 디펜딩 챔피언 노바크 조코비치였습니다. 권순우는 윔블던 센터코트에서 조코비치를 상대로 한 세트를 따냈습니다. 비록 세트스코어 1-3으로 졌지만, 세계 최정상급 선수와도 맞설 수 있다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2024년에도 윔블던 본선 무대를 밟았습니다. 당시 권순우는 1회전에서 덴마크의 홀게르 루네를 만났습니다. 결과는 0-3 패배였습니다. 부상 여파와 경기 감각 회복 과정에서 맞은 쉽지 않은 무대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본선행은 더 의미가 있습니다. 2021년 2회전, 2022년 조코비치 전 선전, 2024년 본선 경험 이후 군 복무라는 또 다른 변수를 거쳐 다시 윔블던 본선에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한국 테니스 입장에서는 메이저 무대 경험이 있는 에이스가 다시 세계 무대의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고, 주 회장에게는 지난해 느꼈던 한국 선수 부재의 허전함을 씻어낼 반가운 신호입니다.
권순우는 윔블던 본선 1회전(29일 예정)에서 스페인의 마르틴 란달루세를 만납니다. 란달루세는 2006년생의 젊은 선수입니다. 권순우보다 9살 어립니다. 27일 현재 세계 랭킹도 58위로 권순우(202위)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메이저 본선 경험과 투어 무대의 압박감이라는 측면에서는 권순우에게도 충분히 승산을 기대할 수 있는 대진입니다.
주 회장은 필자와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권순우의 윔블던 본선 출전은 군 복무 중에도 국제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남자 테니스에서 군 복무는 오랫동안 선수 생명의 큰 변수였습니다. 프로 투어는 랭킹으로 움직입니다. 1년, 2년 국제대회 출전이 끊기면 랭킹은 급격히 떨어집니다. 복귀 후 다시 챌린저 예선부터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선수들 사이에서는 "군대에 가면 프로 선수 생활이 사실상 끝난다"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권순우는 그 인식을 흔들고 있습니다. 상무 복무 기간 동안 국제대회 출전의 길을 찾아냈고, 몸도 달라졌습니다. 주 회장은 권순우에 대해 "몸이 전성기 때보다 오히려 더 좋아진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군 복무 기간 동안 다른 데 눈을 돌릴 수 없는 환경에서 훈련과 몸만들기에 집중한 효과가 나타났다는 평가입니다. 실제로 권순우는 최근 데이비스컵에서도 자신감을 보였고, 이번 윔블던 예선에서도 끈질긴 경기력으로 본선 진출권을 따냈습니다.

여기에는 대한테니스협회의 노력과 국군체육부대의 협조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대한테니스협회는 올해 2월 국군체육부대 테니스팀에 훈련 지원금 5000만 원을 전달했습니다. 권순우, 홍성찬 등 우수 선수들이 군인 신분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협회와 장호테니스재단이 힘을 모아 마련한 지원금이었습니다. 단순한 격려금이 아니라 군 복무 중인 선수들이 경기력을 유지하고 국제무대 도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든 실질적 기반이었습니다.
주 회장도 군 복무 중인 선수가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길을 협회가 확인해 나갔다고 설명했습니다. 데이비스컵 일정과 입소 시기가 겹친 상황에서 관련 절차를 알아봤고, 협회가 요청하면 군 복무 중에도 국제대회 출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국군체육부대의 협조와 협회의 지원이 더해지며 권순우의 해외 대회 출전 길이 넓어졌습니다. 그 덕분에 권순우는 군인 신분으로도 해외 무대에 올라 베트남과 중국 챌린저대회에서 우승하며 랭킹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권순우의 윔블던 본선행은 본인의 노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코트에서 예선 3연승을 만든 것은 권순우 자신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시 국제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협회와 국군체육부대의 지원, 후원사인 요넥스 코리아 등의 믿음과 주변의 관심도 함께 기억돼야 합니다. 권순우가 이번 윔블던을 계기로 더 큰 무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둘러싼 도움에 대한 감사와 책임감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 태도가 후배들에게는 또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권순우의 후원사인 요넥스 코리아도 반가움을 나타냈습니다. 김세준 요넥스 코리아 대표는 "권순우 선수의 윔블던 본선 진출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2024년 본선 진출 이후 부상과 군 복무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다시 메이저 대회 본선 무대에 오른 것은 선수의 강한 의지와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김 대표는 또 "요넥스는 권순우 선수가 세계 무대에서 자기 경기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매우 뜻깊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권순우 선수의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원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후원사의 시선도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합니다. 권순우의 본선행은 혼자만의 복귀전이 아닙니다. 선수가 버티고, 협회가 길을 찾고, 국군체육부대가 협조하고, 후원사가 뒤에서 밀어준 결과입니다. 한국 테니스가 앞으로 유망 선수를 키우려면 바로 이런 지원 구조가 더 넓어져야 합니다.
주 회장은 이 장면을 후배 선수들에게도 중요한 모델로 보고 있습니다. 군 복무가 반드시 선수 경력의 중단이나 후퇴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협회가 제도적으로 돕고, 선수 본인이 준비를 이어가고, 후원사가 지속해서 함께하면 군 복무 중에도 국제무대 복귀의 길을 열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물론 권순우 한 명의 본선행으로 한국 테니스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테니스는 여전히 선수층 감소, 주니어 육성, 대학·실업 무대 약화, 국제대회 부족, 재정 기반 취약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주 회장이 최근 양구에서 열린 한국 테니스 미래 대토론회에서 대회 구조 개편, 주니어 리그 세분화, 대학리그 개편, 프로리그 도입, 랭킹 체계 분리 등을 꺼낸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혁에는 상징이 필요합니다.
선수와 학부모, 지도자들이 "그래도 한국 선수도 메이저에 갈 수 있다"라고 느끼는 장면이 있어야 합니다. 후원 기업도, 팬도, 미디어도 그런 장면을 통해 다시 테니스를 바라봅니다. 권순우의 윔블던 본선행은 그래서 한 선수의 성취를 넘어 한국 테니스 전체에 던지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지난해 주 회장은 한국 선수 없이 메이저 대회 현장을 지켜봤습니다. 올해 윔블던에서는 다릅니다. 전역을 보름가량 앞둔 말년 병장 권순우가 예선을 거쳐 본선 코트에 섭니다. 결과와 별개로, 그 장면은 한국 테니스가 아직 세계 무대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말년 병장 권순우의 윔블던 본선 출동이 반가운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한 선수의 복귀를 넘어, 한국 테니스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선수를 지키고 키우고 다시 세계 무대로 보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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