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애플의 가격 인상
맥북 최대 300달러·아이패드 최대 200달러 올라
국내 판매가도 최대 70만원 인상…소비자 부담 커져
반도체 업계 호황 속 '피해자 프레임' 비판 여론도

차가운 시장 반응
애플은 2026년 6월 25일(현지시간) 맥과 아이패드를 비롯해 맥 스튜디오, 홈팟, 애플TV 등 주요 제품 가격을 일제히 올렸다. 인상 폭은 맥북이 100~300달러, 아이패드가 100~200달러다. 가장 저렴한 맥북 네오는 599달러에서 699달러로, 맥북 에어(512GB)는 1099달러에서 1299달러로, 맥북 프로(1TB)는 1699달러에서 1999달러로 뛰었다. 다만 애플 매출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아이폰과 애플워치·에어팟은 이번 인상에서 빠졌다.
국내 판매가도 곧바로 조정됐다. 지난 3월 99만원에 출시돼 '가성비 맥북'으로 인기를 끈 맥북 네오는 119만원으로 20만원 올랐고, 맥북 에어와 맥북 프로는 모델에 따라 40만~70만원가량 뛰었다. 최고 사양인 16인치 맥북 프로(9999달러)는 국내가 1699만원에 이른다. 특히 초소형 PC 맥 미니 256GB는 연초 89만원에서 134만 9000원으로 약 46만원 올랐는데, 부품값 상승에 원/달러 환율까지 겹친 결과다. 국내 기준 인상률은 맥북이 약 15~20%, 아이패드가 15~25%에 달한다. 일부 유통점은 다음 달 1일부터 인상가를 적용한다고 안내했다.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발표 당일 애플 주가는 6% 넘게 빠지며 2025년 4월 이후 최악의 하루를 기록했고, 같은 날 델 주가도 8% 넘게 하락했다. 변경된 가격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즉시 적용됐다.
애플은 책임을 'AI'로 돌렸다. 회사는 성명에서 "소비자 전자 산업이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다"며 AI 데이터센터의 급팽창이 메모리·저장장치 수요를 폭증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품 가격이 이렇게 빠르게, 이렇게 많이 오른 것은 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비용을 자체 흡수하며 소비자를 보호해왔지만 이제 더는 버틸 수 없다는 논리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이번 메모리 공급난을 "100년에 한 번 있을 법한 홍수"에 비유하며, 40여 년간 어떤 분야에서도 이런 상황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가격 상황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경고였고, 이번 인상은 예고된 수순이었던 셈이다.
메모리 회사들의 달라진 태도
문제는 같은 사안이 누군가에게는 재앙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잔치라는 점이다. 메모리 공급사들은 호황을 넘어 사상 최대 실적을 쓰고 있다. 마이크론은 최근 분기 매출이 1년 전의 네 배 이상으로 뛰었고, 매출총이익률은 39%에서 84.9%로 치솟아 엔비디아와 메타마저 앞질렀다. 마이크론은 공급을 확보하려는 고객들로부터 220억 달러 규모의 장기 계약까지 확보했다고 밝혔다.
가격 흐름도 가파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D램 가격은 올해 1분기에만 최대 98% 올랐고, 이번 분기에 다시 58~63% 추가 상승이 예상된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메모리·저장장치 가격이 최근 세 분기 만에 네 배가 됐다고 집계했고, 모건스탠리는 메모리 가격이 1년 새 여섯 배 올랐다고 분석했다. 업계는 이 사태를 'RAM아마겟돈(RAMageddon)'이라 부른다.

애플의 '저장용량 장사'의 역사
여기서 비판이 갈린다. 부품값 급등이 사실이라 해도, 하필 애플이 '저장장치 비용'을 이유로 값을 올린다는 점이 곱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애플은 오랫동안 저장용량 업그레이드에 큰 폭의 웃돈을 붙여 기기 가격을 끌어올려온 회사이기 때문이다. 256GB에서 512GB로 한 단계 올리는 데 수십만원을 더 받는 식의 가격표는, 실제 낸드 원가와의 격차 탓에 '저장용량 폭리'라는 비판을 오래 받아왔다.
가격 전략도 비판을 키운다. 애플은 종종 가장 싼 구성을 아예 없애 시작 가격 자체를 끌어올린다. 실제로 지난 5월 599달러짜리 256GB 맥 미니 기본형을 단종시켰다가, 이번에 같은 256GB 모델을 다시 799달러에 내놨다. 비용을 흡수하기보다 저가 선택지를 치우고 더 비싼 구성으로 소비자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수치도 이 의심에 빌미를 준다. 애플의 하드웨어 부문 마진율은 3월 말 끝난 분기에 38.7%로, 1년 전 35.9%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같은 분기 순이익은 296억 달러였다. 부품값이 올랐다지만 마진은 되레 두꺼워진 셈이다. 비판론자들의 시선은 이렇다. 저장용량으로 두툼한 마진을 챙겨온 회사가, 이제는 저장장치 원가를 명분으로 청구서를 소비자에게 넘긴다는 것이다.
'비싼 게 아니라 좋아진 것'이라는 프레임
발표 시점도 계산된 인상을 준다. 시장에서는 이번 발표를 가을 아이폰 출시를 앞둔 '사전 정지작업'으로 본다. IDC의 나빌라 포팔 수석연구원은 아이폰 인상도 결국 올 것이라며, 가을 출시 전에 미리 가격 이슈를 털어내 신제품 발표의 초점을 '값'이 아닌 '가치'에 맞추려는 전략적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카운터포인트의 타룬 파탁 연구원은 부품 비용이 아이폰 한 대당 약 200달러를 더할 수 있고, 전 라인업에서 150~200달러 인상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당분간 계속되는 부담
물론 이 부담이 애플만의 것은 아니다. 같은 날 마이크로소프트는 8월 1일부터 엑스박스 가격을 올린다고 발표했고, 삼성전자도 미국에서 갤럭시 S26 일부 모델 값을 100달러 인상했다. 분석가들은 공급망 협상력이 약한 경쟁사들이 애플보다 더 큰 폭으로 값을 올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애플은 그나마 탄탄한 공급사 관계 덕에 충격을 일부 덜어낸 편이다. 모건스탠리는 새 메모리 생산능력을 갖추는 데만 수년이 걸려, AI 인프라 확장이 이어지는 한 공급난과 원가 부담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봤다.
결국 소비자에게 남는 건 '스티커 쇼크'다. 수십 년 만에 PC 값이 오르고 환율까지 겹친 국내에서는, 학생과 일반 소비자의 업그레이드 심리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AI가 반도체를 넘어 소비자 전자제품 값까지 끌어올리는 '새로운 인플레이션'의 한복판에서, 오랫동안 저장용량으로 프리미엄을 챙겨온 애플이 "우리도 어쩔 수 없다"며 청구서를 내미는 장면은 어딘가 개운치 않다. 불가피한 비용 전가인지, 마진 방어에 좋은 명분이 생긴 것인지 그 판단과 부담은 결국 지갑을 여는 소비자의 몫으로 남는다.
※가격·실적·전망 수치는 2026년 6월 25~27일 국내외 보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