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올라] ‘1600분의 1초’에 갈리는 승부…무거운 보람이 있다

김영원 기자 2026. 6. 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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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빨랫줄과 빨래집게, 가루세제와 빨래판, 나무젓가락, 믹스커피, 수도꼭지 및 샤워기 필터, 진드기 시트. 몬테레이/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지난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해 멕시코 과달라하라로 향하는 일정으로 2026 북중미월드컵 취재 출장이 시작됐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어디까지 진출할지 알 수 없는, 이처럼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장기 출장은 처음이다. 집 떠나온 지 어느덧 20일차, 겨우 23kg에 맞췄던 개인 짐가방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 처음 짐을 싸며 ‘굳이’라고 생각하며 챙겨온 것들은 사실 장기 출장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다.

즉석밥과 함께 먹을 멸치볶음을 가져왔다. 안타깝게도 밥과 반찬의 비율이 맞지 않아 멸치볶음이 많이 남았지만, 1차전 체코와의 경기를 취재하러 가기 전에 먹은 한 끼는 든든한 힘이 됐다. 진드기를 주의하라는 조언에 진드기 방지 패드를 가져와 숙소 침대에 깔았다. 믿거나 말거나, 효과가 있어서인지 진드기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진드기에 물리진 않았다.

필자가 멕시코 할리스코주 과달라하라 숙소에서 물이 끓는 멀티포트에 즉석밥을 넣고 데우고 있다. 과달라하라/김영원 기자

“이건 꼭 있어야 해”라며 필자의 어머니가 건넨 것은 멀티포트였다. 경기 취재가 끝난 뒤 숙소에서 즉석밥이나 라면을 먹으려면 필요하다는 거였다. 짐이 무거워지는 게 싫어 잠시 망설였지만 담았다. 살면서 제일 잘한 선택이었다. A조 2차전 멕시코와의 경기 당일 새벽 배탈이 났기 때문이다.

배가 아파 눈을 뜬 건 새벽 4시, 경기까지 15시간 남은 시점이었다. 가져온 지사제를 먹고 최대한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정오까지 잠만 잤다. 바나나 한 개를 죽이 될 때까지 씹어 이온음료와 함께 넘기고 경기장에 갔다. 취재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와 굶었고, 다음날까지 일반식을 먹지 않고 즉석밥으로 죽을 끓여 먹었다. 멀티포트가 없었더라면 물갈이 배탈이 24시간 만에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의 숙소 세면대 옆에 2리터 생수병이 놓여있다. 양치를 하고 칫솔과 입을 헹굴 때 생수를 사용하고 있다. 몬테레이/김영원 기자

가져왔지만 쓰지 못해 안타까운 것도 있다. 수도 필터다. 멕시코는 수돗물이 식수로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양치와 샤워할 때를 대비해 수도꼭지와 샤워기 필터를 가져왔지만 어느 숙소도 규격이 호환되지 않았다. 필자는 반쯤 포기하고 샤워는 수돗물로, 양치는 생수를 사서 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5~2026 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수원에프시위민과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경기. 내고향 최금옥이 골을 넣자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캐논 아르(R)1으로 촬영했다. 김영원 기자
양현준, 조규성이 지난 19일(한국시각)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2차전 멕시코와 경기가 열린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경기장에서 슛팅하고 있다. 캐논 아르(R)1으로 촬영했다. 사포판/김영원 기자

굳이 가져온 건 개인 짐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이번 월드컵 경기는 캐논 카메라 보디 아르(R)1으로 취재하고 있다. 평소 사용하는 보디는 아르(R)3이지만, 월드컵을 위해 최신형인 아르(R)1 두 대와 RF 100-300mm 렌즈를 대여했다. 출장을 떠나기 전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과 결승을 취재할 기회가 있어 아르(R)1과 아르(R)3의 성능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수원FC위민과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준결승은 폭우 속에서 열렸는데, 아르(R)1은 거센 빗줄기 속에서도 필자가 원하는 대로 피사체에 초점을 잘 잡았다. 가장 중요한 골과 세리머니 장면을 골망 너머로 찍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갑작스럽게 렌즈 방향을 돌리거나 원하던 피사체가 가려지는 상황에서 그물망에 초점이 맞는 경우가 많다. 이 역시 아르(R)3보다 아르(R)1이 기존 피사체에 초점을 고정하는 성능이 더 좋았다. 1600분의 1초로 축구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는 결정적 장면을 찍는냐 놓치느냐가 갈라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필자가 지난 24일(한국시각) 2026 북중미월드컵 A조 3차전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경기를 하루 앞두고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몬테레이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식 훈련을 캐논 아르(R)1과 RF100-300mm 렌즈로 취재하고 있다. 멕시코 일간지 ‘엘 노르테’ 소속 알레한드로 가르자 기자가 찍어준 사진이다.

RF 100-300mm(신형) 렌즈 역시 기존에 축구를 취재할 때 쓰던 EF 200-400mm(구형) 렌즈와 비교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렌즈는 1.4배 익스텐더를 이용하면 최대 560mm까지 줌인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사진이 어둡게 찍힌다. 한국 조별예선 경기는 모두 저녁에 열렸기 때문에 1.4배 익스텐더를 결합했을 때 최대 F4까지 조리개가 열리는 RF 100-300mm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조리개 수치가 작아지면 작아질 수록 어두운 상황에서도 더 밝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도난 우려 때문에 대여 장비는 따로 보험까지 들었다. 다행히 아직 도난당한 장비는 없지만, 모든 기자가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않고 조심하고 있다. 실제로 조별 예선 초반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멕시코와 남아공의 개막전 경기에서 통신사 로이터 사진기자가 아르(R)1 보디 1대와 400mm 망원렌즈를 도난당하기도 했다.

사진기자들이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치바스 베르데 바예에서 장비 가방을 기다란 자물쇠로 함께 묶어둔 모습. 사포판/김영원 기자

첫 장기 출장, 첫 국제대회 출장의 무게감을 정신적으로 그리고 몸으로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멕시코 올라]는?

도파민 가득한 북중미 월드컵 현장! 한겨레 김영원 사진기자가 멕시코 현지에서 생생하고 뜨거운 그 순간을 프레임에 담아 보냅니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월드컵의 진짜 이야기를 [멕시코 올라] 연재로 만나보세요!
몬테레이/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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