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사병, 동원의 전설이 되다" 삽으로 쌀 씻던 청년이 단체급식 전문가로
장병들 입맛 맞춘 메뉴로 잔반율 낮춰
셰프 꿈꾸다 '단체급식의 과학'에 눈떠
취사병·영양사 경험 살려 고객사 발굴
"케어푸드 등 사업장 확장 이어갈래요"

"으뜸아, 너는 간부식당 또 언제 올 거니. 빨리 와라. 아니, 그냥 전역하지 말고 계속 있어라."
10여 년 전 충북 청주시 공군 제17전투비행단에서 취사병 겸 으뜸병사였던 최영훈이 상사(上士)에게서 들은 '살벌한' 칭찬이다. 요리 실력이 출중한 그에게 병사식당 말고 간부식당 메뉴도 자주 해달라는 농담이었다.
그가 담당한 병사식당 식수는 1,200명. 셰프의 꿈을 품고 고3 때 한식, 스무 살 때 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어도 처음에는 대규모 인원에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막막함이 밀려왔다. 첫 임무인 밥 짓기부터 쉽지 않았다. 밥솥만 무려 스무 개였다. 세미기(쌀 씻는 기계)로는 턱도 없어 쌀을 삽으로 씻었다.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의 주인공인 이등병 강성재가 레벨 업을 하며 '전설의 취사병'으로 거듭난 것처럼 영훈도 '짬밥'(군대에서 먹는 밥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먹고 만들며 점차 장병들의 신임을 얻었다. 2015년에는 고참들과 함께 군인요리경연에 출전해 철판 배식·창작 요리 동상도 수상했다.
군 복무 중 급식의 세계에 눈을 뜬 영훈은 전역 후 전공을 바꿔가며 영양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단체급식 기업 동원홈푸드에 입사했다. 어느덧 급식 전문가로 성장한 최영훈(32) 대리를 이달 15일 서울 서초구 동원산업빌딩에서 만났다.
셰프 꿈꿨던 청년, 급식의 세계에 풍덩

어릴 적부터 부모님 생신이면 직접 요리를 해드릴 정도로 손맛에 자신 있던 최 대리였지만 군 복무 중 처음 마주한 단체급식은 알지 못했던 '시스템 과학'의 세계였다. 그는 "처음에 '일반 음식 할 때 두 숟갈 넣었으니 100인분이면 200숟갈 넣으면 되겠지'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며 "계량부터 조리 시간 엄수, 식중독 등 위생 문제, 잔반율, 팀워크까지 신경 쓸 게 정말 많았다"고 회상했다.
일개 취사병이었지만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기도 했다. 장병들이 선호하지 않아 재고가 쌓인 조림용 순살 생선을 튀긴 뒤 양념치킨 소스를 묻혀 강정처럼 내거나 소위 군데리아를 만들 때도 패티 맛이 떨어지는 찜기 조리 방식 대신 튀기는 식이었다. 최 대리는 "맛 호평과 함께 잔반도 크게 줄었다"며 "상부에서도 재고 식재료를 깔끔하게 처리하자 격려해주셨다"고 말했다. 원가, 재고 관리, 잔반율 등 단체급식의 중요 지표를 체감한 순간들이었다.

전역 뒤 조리학과에서 식품영양학과로 전과한 그는 영양사·식품산업기사·위생사 등 가능한 자격증을 최대한 땄다. 2019년 2월 동원홈푸드에 영양사로 입사한 후에는 경마공원, 연수원, 회사 구내식당, 육군 부대를 두루 거치며 현장마다 다른 운영 방식과 고객 특성을 몸으로 익혔다.
2022년 3월 젊은 나이에 여러 고객사를 관리하는 운영소장을 맡게 되자 손익 구조와 회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2년간 퇴근 후 한국방송통신대에서 경영학·회계학을 공부해 학위도 받았다.
학업을 병행하면서 하루에 두세 곳씩 바쁘게 사업장을 돌아다닐 때도 고객사 미팅만 하고 훌쩍 떠나는 법이 없었다. 간식을 들고 가 조리사와 조리원들을 만나며 그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였다. 현장 경험 덕에 '사람 관리'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셈이다. 최 대리는 "본사 관리도 중요하지만 결국 서비스 품질은 현장 직원들이 좌우한다"고 말했다.

조리 실무 경험부터 경영·회계 이론, 사업장 관리 역량까지 갖춘 최 대리를 알아본 회사는 올해 1월부터 그에게 '개발' 일을 맡겼다. 신규 고객사 발굴 업무다. 최 대리는 "여러 현장을 거친 게 '여긴 식자재 질을 중시하네' '여긴 단가를 50원이라도 낮춰야겠다' 같은 니즈(요구)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수주 제안서를 쓸 때도 '내가 현장 영양사라면 이 조건을 지킬 수 있을까' 되물으며 100% 지킬 수 있는 약속을 고객사에 제안하려 한다"고 말했다.
최 대리의 합류 후 단체급식 사업부에는 희소식이 이어졌다. 공장, 대학 등 위주였던 사업장이 요양시설, 실버타운, 공항 같은 컨세션사업장(다중이용시설)으로 확장된 것. 최 대리는 "저염식·저당식은 물론 고도의 케어푸드 역량이 필요한 요양시설이나 급식의 효율성에 외식 브랜드 수준의 트렌디함까지 갖춰야 하는 컨세션사업장 등을 탄탄한 식자재 유통망과 연구개발(R&D) 역량을 바탕으로 확장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10년에 한 번씩 인생의 방향을 트는 큰 모험을 했는데 회사 사업에도 큰 획을 그을 수 있도록 도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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