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신입사원 강회장'이 불길하다, '재벌집 막내아들' 전철 밟을까 봐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드라마를 추천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잘 나가다가 마지막 즈음에 흐지부지되고 마는 작품이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예전 김수현 작가나 노희경 작가 작품을 떠올려 보면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마무리가 납득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용두사미(龍頭蛇尾) 드라마가 부쩍 늘었다. 이러다가 용두사미식 전개가 K-드라마의 고질병으로 자리잡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 전 종영한 SBS <멋진 신세계>도 끝이 아쉬웠다. 8회까지는 자신 있게 추천했다. 10회까지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러나 남은 4회, 특히 13회는 실망 그 자체였다. 이 드라마는 임지연과 허남준, 두 배우가 목줄을 잡고 끌고 간 셈이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배우들의 연기는 날로 일취월장해서 세계 어느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반면 작가들은 뒷심 부족으로 지지부진, 오히려 배우들의 발목을 잡는 느낌이다.

현재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유영국 작가의 회고전.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인 유영국 작가가 생전에 "설명이 요구되는 그림은 이미 그림이 아니고 군더더기다"라는 명언을 남겼단다. 그 얘기를 들으니 바로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다. 마지막 회가 방송된 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냐", "결국 결말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믹 로맨스 판타지에 해설이 필요하다면 그 자체로 실패 아니겠나.
사방에 뿌려놓은 복선과 떡밥을 거둬들이지 못했는데 일례로 서리(임지연)의 친구? 정확히는 동료 배우(김계림)다. 왜 신서리에게 수면제를 탄 물을 먹이고 소품실 밖에서 자물쇠를 채운 걸까? 단순한 질투심이었다고 하기에는 엄연한 범죄가 아닌가. 그럼에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차달수 회장(윤주상)에게 별다른 방편이 없었다는 것도 기막히다. 최문도(장승조)의 아이는 왜 납치하듯 데려온 건지 원. 잔인무도한 최문도의 죄상이 밝혀지는 과정도 맥이 빠졌고. 백은혜, 정영주, 백지원처럼 존재감 있는 배우들도 변죽만 울린 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 아쉬웠다. 판타지라는 말로 덮기에는 너무 성의가 부족했다.

현재 8회까지 방송되며 가파른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JTBC <신입사원 강회장>도 사정이 비슷하다. 영혼 체인지, 재벌가 회장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암투,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교통사고, 치매를 앓는 할머니까지. 빤한 설정이지만 예측불허의 전개와 색다른 변주로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 두 드라마가 닮았다. <신입사원 강회장>도 6화까지는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8화에서 슬슬 불안해진다. 이 드라마가 JTBC <재벌집 막내아들>과 세계관이 이어진다고 해서 걱정스러웠는데, 이유인즉 <재벌집 막내아들> 또한 회귀냐 꿈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할 만큼 애매한 결말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멋진 신세계>와 <신입사원 강회장>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주인공들이 기대 이상으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는 점이다. 임지연, 허남준, 이준영, 이주명. 넷 모두 "저렇게 연기를 잘했어?" 매회 감탄하게 만들지 않나.

먼저 이준영.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에서 징징대던 '영범'이를 떠올리면 안 된다. 손현주가 맡은 '강용호' 회장과 이준영이 맡은 축구선수 '황준현'의 영혼이 바뀌는 설정인데, 손현주가 완성해 놓은 '강용호'를 이준영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다. 초반에는 내레이션을 손현주가 처리했는데 후반으로 가면서 이준영이 강용호의 말투로 혼잣말을 한다. 그런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곁에서 받쳐주는 이상재(김종태) 전무, 박봉기(이성욱) 부장과의 호흡도 흥미롭다.
그리고 강 회장의 막내딸 '강방글' 역의 이주명. 원작에 없는 인물인데 이번에 제대로 존재감을 발휘한다.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전교 1등 지승완' 역으로 눈도장을 찍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드라마 역시 용두사미의 전형이었다.
8화는 코마 상태였던 강용호가 숨을 거두는 것으로 끝났다. 원작에서 황준현의 영혼이 소멸되고 강용호가 그 몸을 차지한다고 들었다. 그래도 황준현에게 축구선수라는 서사를 마련해준 만큼 조금 다른 전개려니 기대했었다. 하기는 김순옥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했기에 갈등이 상상 이상으로 증폭되리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예상했어야 옳다.

강방글이 황준현에게 슬슬 연심을 품기 시작했는데, 실은 아버지 강용호가 아닌가. 또 아내 조선희(윤유선), 즉 강방글의 엄마를 볼 때마다 아련한 눈빛을 보내는데 이 관계를 또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돌아가야 할 강용호의 본체는 이미 숨을 거두었으니 말이다.
강용호가 교통사고 보상이라며 황준현에게 건넸던 백지수표가 남아 있다. 액수를 50억이든 100억이든 마음대로 적으라고 했는데 영혼이 바뀐 뒤 강용호가 '최성을 주시죠'라고 적어두었다. 지금도 지갑에 고이 간직하고 있을 텐데 아마 사건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제발 아쉬운 마무리만은 아니기를, 무엇보다 이준영과 이주명, 두 배우의 열연이 너무나 아깝지 않나. 두 배우가 훗날 이 작품을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JT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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