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코인으로 낼 수 있나요?”…디지털 지갑 실험 주목
수납 및 지급 효율 기대감...제도·소비자 보호는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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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보험료를 계좌이체나 카드가 아닌 디지털 지갑으로 내고, 보험금도 같은 지갑으로 받는 시대가 올까.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은행과 카드업권을 넘어 보험업권으로도 번지고 있다. 교보생명이 보험료 수납과 보험금 지급에 대한 기술검증(PoC)에 나선 데 이어, 보험연구원 역시 스테이블코인이 보험산업의 결제·정산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으면서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업계에서는 가격 변동성이 낮아 지급결제 수단으로 활용 가치가 높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교보생명은 블록체인 인프라 전문 기업 EQBR과 손잡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보험료 수납 및 보험금 지급에 대한 기술검증을 완료했다.
양사는 교보생명의 기존 보험 시스템과 블록체인 인프라를 연계해 디지털 지갑에 보유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보험료를 자동 납부하고, 해당 거래 내역이 보험사 내부 시스템에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과정을 검증했다. 이는 보험업계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실제 업무 프로세스에 접목해 본 초기 단계의 실험으로 평가된다.
결제 수단 넘어 정산 구조 변화
보험업계가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한 결제 수단 추가에 그치지 않는다. 보험 업무는 보험료 수납부터 계약 유지, 사고 접수, 보험금 심사, 최종 지급, 재보험 정산에 이르기까지 긴 자금 흐름을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과 결제사업자, 재보험사, 중개기관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연결된다.
스테이블코인이 이 흐름에 도입되면 자금 이동 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정산 기간을 줄이며, 거래 기록의 추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특히 해외 재보험 거래나 글로벌 기업보험처럼 여러 국가의 기관이 얽힌 거래에서는 송금 시간 단축과 환전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보험연구원 또한 최근 발표한 '스테이블코인과 보험산업 과제'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과 스마트 컨트랙트의 프로그래밍 가능성, 블록체인의 조합 가능성이 결합될 경우 보험산업의 가치사슬 전반이 재편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 결제를 넘어 상품 개발과 판매, 보상 처리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데이터 연동으로 보험금 자동화될까
스테이블코인의 또 다른 활용처로는 보험금 지급 자동화가 꼽힌다. 보험금 지급 조건을 스마트 컨트랙트와 연결하면 특정 요건이 충족됐을 때 보험금이 자동으로 지급되는 구조가 가능하다. 지수형 보험, 날씨보험, 여행자보험처럼 지급 기준이 비교적 명확한 상품이 우선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항공편 지연 시간이 특정 기준을 넘을 경우 별도 청구 절차 없이 디지털 지갑으로 보험금이 자동 입금되는 방식이다. 기상 데이터나 운항 데이터와 같은 외부 정보와 블록체인상의 보험계약을 연결하면 보험금 청구 및 심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세종대 경영학부 김대종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보험료 수납과 보험금 지급은 결제 수단 확대를 넘어 보험사의 정산 인프라를 바꿀 수 있는 시도"라며 "블록체인 기반 결제가 정착되면 중개 비용을 줄이고 정산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와 준비자산, 감독 체계, 디지털 지갑의 보안 등 제도적 기준이 아직 정비되지 않았다"며 "실제 상용화까지는 규제 마련과 대중적 수용성이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술 현실화까지는 과제 산적
기술보다 어려운 것은 보험업의 규제 구조다. 보험료는 단순 결제가 아니라 계약 유지와 실효, 환급, 회계 처리로 이어지고 보험금은 소비자의 권리와 직결된다. 스테이블코인으로 돈을 주고받는 기술이 가능하더라도 이를 정식 수납·지급 수단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디지털 지갑 분실이나 오입금, 해킹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어떻게 나눌지도 정리돼야 한다. 또한 보험사가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할 경우 회계상 어떤 자산으로 볼지, 지급여력비율(K-ICS)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따져봐야 한다. 스마트 컨트랙트가 보험금 지급을 자동화하더라도 현행 보험금 심사 절차를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도 쟁점이다.
결국 보험업권의 스테이블코인 실험은 아직 가능성 확인 단계에 가깝다. 상용화의 열쇠는 블록체인 기술보다 보험업법과 소비자 보호, 자본규제와의 접점을 얼마나 정교하게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개인 고객 대상의 보험료 납부보다는 기업보험, 해외 재보험, 지수형 보험 등 정산 효율과 비용 절감 효과가 비교적 뚜렷한 B2B 영역에서 먼저 실증이 이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이 당장 일상적인 보험료 납부 수단으로 쓰이기는 어렵지만, 정산 구조가 변화할 미래에는 대비해야 한다"며 "제도화 방향이 구체화되면 보험사들도 기술검증을 넘어 실제 적용 가능한 업무 영역을 선별하는 작업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