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푸틴 후계자’ 소리 들은 이바노프 前 러 부총리 별세
국방장관 거쳐 부총리·대통령 비서실장 지내
2016년 ‘환경 특사’로 강등되며 권력 멀어져
한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후계자가 될 것이란 평가를 들을 만큼 권세가 막강했던 세르게이 이바노프 전 러시아 부총리가 7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구체적인 사인이나 유족의 반응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대통령실인 크레믈궁은 이날 짧은 성명에서 “푸틴 대통령은 세르게이 이바노프의 사망에 관해 가족 및 지인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했다”고 밝혔다. 이바노프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고인이 명예 회장으로 있던 한 농구 관련 단체에 의해 먼저 발표됐고, 그 뒤 크레믈궁이 이를 확인하는 순서를 취했다.

KGB 요원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바노프도 옛 소련 시절 구체적으로 무슨 업무를 담당했는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2000년 푸틴 대통령 취임 후 옛 KGB가 연방보안국(FSB)이란 이름으로 부활한 뒤 이바노프는 그 부국장이 되었다가 이듬해인 2001년에는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소련과 러시아를 통틀어 역사상 첫 민간인 국방장관이었다.
영어가 유창한 이바노프는 뮌헨안보회의(MSC)에 자주 참석해 기자들과 대화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유럽 확장이 러시아 국익을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2022년 2월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아를 침략할 때 내세운 명분과 비슷하다.
이바노프는 푸틴의 두 번째 대통령 임기 도중인 2005년 국방장관으로서 부총리를 겸임하며 권력이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 헌법상 대통령의 3연임은 금지됐다. 많은 이들이 이바노프가 2008년 푸틴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푸틴은 1965년생으로 이바노프보다 12살이나 어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를 후계자로 삼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시켰다.

2012년 대통령에 복귀한 푸틴은 이바노프를 비서실장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2016년 그는 돌연 러시아 연방의 환경·교통 문제를 다루는 대통령 특사로 지명되며 권부 핵심을 떠났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강등 인사였다. 이바노프는 올해 2월까지 약 10년간 이 직책을 수행했으나, 이미 정치권과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바노프가 국방장관이던 시절 외교부 장관에 임명돼 벌써 22년 넘게 러시아 외교 정책을 이끌고 있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은 고인을 애도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라브로프는 이바노프를 “현대 러시아 발전에 크게 공헌한 뛰어난 정치가”로 규정하며 “고인은 우리나라 국가 안보 및 국방 역량을 강화하고 세계에서 러시아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애썼다”고 밝혔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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