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농시]'좋아서 하는 노력' 얼리 대신 연세 선택한 박준성 "확실하게 약점 보완하고 프로 가겠다"

황혜림 2026. 6. 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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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황혜림 인터넷 기자] 수능 점수 대신 오직 농구 실력으로 대학 문을 두드린 신입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간.
바로 ‘대학농구능력시험(대농시)’이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정답을 채워 나갈 신입생들의 성장 기록을 들여다본다. 열 번째 성적표의 주인공은 '연세대 박준성(189cm, F)'이다.

 


#소년로그


원주가 키워내고 연세대가 다듬고 있는 원석, 그저 농구가 좋았던 소년 박준성의 이야기다.

“어렸을 때 너무 안 뛰니까, 어머니가 좀 뛰라고 원주 DB 유소년 클럽에 보내셨어요. 처음에는 그냥 공놀이를 했죠(웃음). 그러다 5, 6학년 때 클럽 코치님 눈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경기도 뛰게 됐고, 당시 휘문중 감독님이셨던 최종훈 감독님 눈에 띄어 엘리트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서원주초등학교에서 취미로 공놀이를 즐기던 어린 박준성에게 엘리트 선수의 길은 쉽게 내릴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다른 지역 학교의 스카우트 제안이었던 만큼 고민도 컸다.

"서울 학교에 진학하려면 이사를 해야 했어요. 원주에서 갑자기 서울로 올라와 생활해야 한다는 게 당시에는 가장 큰 장벽이었죠. 미래가 확실한 것도 아니었고, 오랫동안 농구 선수를 준비해온 것도 아닌데 갑자기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하며 상경을 결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럼에도 발걸음을 코트로 옮긴 것은 스스로의 의지였다.

"그냥 농구가 너무 좋았어요. 부모님께서는 제가 하고 싶은 걸 믿고 응원해주셨어요. 제가 농구를 하고 싶다고 말한 게 이 길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였어요."


그렇게 휘문중 진학을 결심하고 상경한 박준성을 눈여겨본 곳이 또 있었다. 바로 그의 고향팀인 원주 DB 프로미였다. 2020년 1월 22일, 박준성은 원주 DB의 연고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누구나 꿈꿀 만한 고향 팀의 부름이었지만, 그는 이번에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어요. 제가 농구를 이렇게 오래 할 줄도 몰랐고, ‘고등학교 1학년까지만 해보고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자’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망설였죠. 그래도 다시 한번 제안을 주셔서 연고 선수가 됐고, 당시에는 남들보다 조금 앞선 출발선에 선 기분도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웃음).”


지난해, 동갑내기 에디 다니엘과 김건하, 양우혁이 얼리 드래프트로 참가해 좋은 활약을 펼쳤다. 이 고졸 루키들의 기록에 박준성도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7월, 입시가 한창이던 여름. 그를 부른 것은 연세대뿐만이 아니었다. DB 역시 그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프로에서 다듬어지기 보다, 완성된 모습으로 프로에 가기를 원했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당시에 대학과 프로에서 제안이 동시다발적으로 왔거든요. DB 박지현 코치님과도 얘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저 스스로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대학에 가서 포워드로서 포지션을 더 다듬고, 좀 더 완성된 상태로 프로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치열한 고민 끝에 대학 무대를 선택했지만, 먼저 프로에 뛰어든 동기들과의 끈끈한 인연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프로에 조기 진출한 김건하와의 대화에서는 영락없는 동갑내기 친구의 장난기가 묻어났다.

“(김)건하랑 최근에 연락을 했어요. KBL 유스 드림캠프 기사에 멘토로 갔던데, 인터뷰에서 그 캠프에서 친해진 사람으로 저를 꼽았더라고요. 그래서 ‘네가 아직 나를 잊지 않았구나’하고 연락을 먼저 보냈어요.”

“이제 건하는 프로 2년 차잖아요. 제가 대학교 4학년을 마치고 프로에 가면 저는 쳐다도 못 볼 거라고 농담했죠(웃음). ‘나는 수건 들고 심부름하고 있을 때, 너는 앉아서 폼롤러나 굴리고 있을 거다’라고 장난도 치면서 오랜만에 안부를 주고받았어요.”

박준성은 고교 시절, 경기마다 더블더블을 기록한 것은 물론 한 경기 49득점, 트리플더블까지 달성했다. 189cm라는 빅맨으로서는 아쉬운 신장으로 자신보다 큰 선수들과 부딪쳐야 했지만,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과 노력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했다. 언더 사이즈 빅맨의 한계를 지워내는 활약이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박준성은 다양한 엘리트 캠프에 초청받으며 시야를 넓혔다. 국내외를 넘나드는 캠프 경험은 그에게 실력뿐만 아니라 농구를 대하는 태도에 큰 영감을 주었다. 2023년에는 KBL 유스 엘리트 캠프에서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캠프는 초기에는 친목 도모 같은 성격이 강해요. 팀을 나눠서 훈련하다가 마지막 날이 다가와 경기를 시작하면 분위기가 진지해지죠. MVP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경기를 하다 보니 슛도 잘 들어가고 김동욱 코치님이 조언해 주신 대로 플레이했더니 좋은 평가를 받아 MVP까지 받을 수 있었어요.”

“IMG 캠프에서는 미국의 자유로운 경기 문화와 분위기를 많이 배웠어요. 세레머니나 벤치에서 동료들을 맞이하는 리액션 같은 것들이요. NBA를 보면 3점슛이 성공했을 때 벤치 선수들이 코트 근처까지 뛰쳐나오며 환호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생소하기도 하고 신기했어요”

#대학농구능력시험
박준성은 자신의 대학농구능력시험 성적표에서 리바운드와 슈팅 두 과목에 조심스럽게 2등급을 매겼다.

휘문중 시절에는 최영상과 함께, 휘문고 시절에는 팀의 기둥으로서 홀로 수십 점을 올리며 묵묵히 기록을 쌓아 나갔다. 득점과 리바운드로 기록하는 더블더블은 그에게 일상에 가까웠다.


그가 두 자릿수 리바운드를 잡아낼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히 공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의 궤적을 읽고 한 발 먼저 움직이는 영리함 덕분이었다. 이는 코트 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인 노력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남들보다 힘이 셌기 때문에 자리 선점하는데 도움이 됐고, 공을 쫓아가려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가져간 게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공이 내 쪽으로 와서 잡는 게 아니라, 내가 공 쪽으로 가서 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항상 리바운드를 했어요. 득점은 그냥 오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자신있게 플레이하다 보니 따라와줬어요”

그의 영리한 리바운드 능력은 평소 영상 분석을 통해 쌓아온 데이터 베이스가 기반이 되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데니스 로드맨이 경기 영상을 보며 리바운드를 분석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저도 그걸 따라 영상을 보면서 공이 떨어질 위치를 예측하고,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자는 생각을 했죠. 열 번 중 세 번만이라도 그렇게 해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대학 무대에 선 박준성은 이제 찾아온 찬스에서 슈팅으로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격 상황에서 공을 향한 그의 집념은 여전하다.

 

“지금은 저보다 큰 센터 형들이 리바운드를 많이 잡아주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디펜스 리바운드보다는 오펜스 리바운드에 더 비중을 두고 가담해요. 훈련할 때도 적극적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세이프티 역할로 뒤에 남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골밑으로 파고들려고 해요. 그렇게 해야 결국 득점으로 이어지니까요.”


뿐만 아니라 박준성은 올해 KUSF 대학농구 U-리그 11경기에 출전해 3점슛 성공률 57.9%을 기록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준수한 외곽포를 선보이며 스트레치 빅맨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던 그는, 대학에서 그 잠재력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중이다.

“슈팅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폼이라든지, 포물선 같은 걸 코치님들이 조언해주시는대로 연습을 많이 했어요. 원래는 포물선이 많이 낮았거든요. 요즘은 일부러 좀 더 높게 쏘려고 하고 있어요. 어차피 경기 중에는 포물선이 또 낮아지게 되니까, 연습할 때 더 신경써서 포물선을 교정하는 중이에요. 슛폼도 원래 상체가 좀 뒤로 기울어지면서 슛을 던졌는데, 최대한 앞으로 고정할 수 있게 연습하고 있어요.”

이러한 노력 뒤에는 슈터 선배들의 영상을 좋은 교과서 삼아 끊임없이 연구한 과정이 있었다.

“제 포지션과 비슷한 형들의 영상을 많이 참고했어요. 이근휘 선수나, (유)기상이 형 영상을 가장 많이 봤어요.”

자신의 장점에는 섣불리 1을 적지 않던 박준성이었지만, 수비 과목에는 냉정하게 6등급을 매겼다.

“대학에 처음 왔을 때나 지금이나 수비부터 하자는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아직 수비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훈련할 때도 그 부분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고 있어요. 공격은 형들에게 수비가 몰렸을 때 자연스럽게 찬스가 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은 공격보다 수비 능력을 더 키우고 싶어요. 단국대전에서도 상대가 일부러 스위치를 통해 저를 공략해서 득점을 많이 올렸거든요. 그런 확실한 약점부터 하나씩 지워나가자는 생각으로 훈련하고 있어요.”

그가 수비에 이토록 엄격한 기준을 가지는 이유는 코칭스태프의 주문과 스스로 느끼는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완성형 선수가 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바로 1대1 수비다.

“감독님께서 1대1 수비를 가장 많이 강조하시는데, 아직 제가 형들을 잘 못따라가고 공격력 좋은 형들을 잘 못 막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그래도 팀적인 수비는 최대한 이해하려고 하고 있는데, 1대1 수비가 여전히 과제인 것 같아요.”


#대학로그
대학리그 첫 두경기에서는 평균 7분 15초로 길지 않은 시간을 소화했지만, 그 다음 한양대전에서 19분 28초를 뛰며 7점 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더 나아가 동국대전에서는 27분 52초동안 코트를 누비며 3점슛 5개를 포함해 21점 1리바운드 2스틸을 기록, 대학 입학 후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동국대전에서 최대한 자신 있게, 기본부터 하려다 보니 잘 됐던 것 같아요. 반면에 성균관대전에서는 마지막에 제 실수로 골을 먹혀서 졌는데, 그런 팀 수비 실수를 안 하려고 하고 있고, 결국 그것도 기본에 대한 걸로 이어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훌쩍 늘어난 출전 시간의 배경에는 평소 훈련에서 조동현 감독에게 꾸준히 증명해온 박준성의 가치가 있었다. 조 감독은 “평소 연습 태도를 봤을 때 팀에 필요한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김승우, 이주영과 함께 뛰면 궂은일을 해주고, 오픈 찬스에서는 과감하게 슛을 던져줄 수 있는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직은 찬스가 많이 오지는 않아요. 그래도 한 번 한 번 찾아오는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자신 있게 슛을 던지려고 해요. 또 수비를 적극적으로 하면서 감독님께 계속 어필하려고 노력했어요. 감독님께서 수비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시거든요.”


대학에 진학하며 최우선 과제를 포지션 변경으로 꼽을 만큼, 인사이드에서 아웃사이드로향한 박준성의 활동 영역 변화는 파격적이다. 그는 포지션의 변화에서도 수비의 아쉬움을 가장 먼저 털어놓았다.

“공격적인 부분에서는 바뀐 포지션에 어느정도 적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고등학교 때 포스트 수비와 지금 맡는 외곽 수비는 차이가 크다보니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일상로그
순탄하게 대학에서의 첫해를 보내고 있는 그에게도 나름의 난관은 있었다. 고등학교와는 사뭇 다른 대학 수업과 대규모 강의, 치열한 성적 경쟁도 새내기 박준성에게는 낯선 환경이었다.

“시험은 나름 열심히 봤는데, 교양 과목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배우던 방식과는 많이 달라서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조별 활동이 있는 수업은 팀원들의 도움도 받고, 참여만 열심히 해도 괜찮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데, 혼자 200명 넘는 학생들과 대강의실에서 듣는 수업은 어떻게 해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산에 오른 새내기 박준성과 김윤서

연세대와 고려대, 숙명의 라이벌인 두 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을 ‘연고전’에 대한 기대감. 수많은 팬과 동문이 주목하는 큰 무대에 직접 나서는 박준성으로서는 그 비장함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올해 치러진 정규리그 두 차례의 맞대결에서는 모두 고려대에 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첫 정기전을 앞둔 ‘아기 독수리’ 박준성은 이제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있다.
“작년에 연고전을 보러 갔는데, 그때 처음으로 현장의 생동감을 느꼈어요. 그래도 당시에는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그렇게까지 비장한 마음은 아니었죠. 그런데 올해 고려대에 두 번 다 지면서 정기전만큼은 꼭 이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 뜨거운 열기가 있는 코트 위에 직접 서보고 싶어요.”


스스로의 성적표에 단 하나의 1등급도 적지 않은 박준성이지만, 그 깐깐한 채점은 역설적으로 그가 앞으로 채워나갈 여백이 그만큼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상을 뒤지고 포물선 하나에 매달리는 묵묵한 노력이야말로 그 성장 가능성에 가장 큰 힘을 보태는 동력이다. 원주의 소년은, 이제 연세대에서 자신의 한계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 성장 기록의 첫 페이지는 이제 막 쓰여지고 있을 뿐이다.

#번외로그
한편, 휘문고 출신 박준성은 주위 사람들은 물론 농구인들 사이에서 프로 농구 선수 오세근을 닮은 것으로 굉장히 유명하다. 묵직한 플레이 스타일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판박이라는 평에 얽힌 일화도 흥미롭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오세근 선수를 처음 봤어요. 안양 경기를 보러 갔다가 그냥 경기 끝나고 나올 때 줄 서서 잠깐 봤는데, 그때는 닮은 줄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근데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친구들도, 초등학교 급식실 선생님도 정말 닮았다고 말씀하셔서 신기하기도 했어요. 나중에 언더아머 캠프에서는 심사위원으로 오셨는데 그때는 좀 닮은 것 같다 해주셨어요.”

오세근과 프로에서 함께 활약하는 프로선수들조차 그들의 유사성(?)에 감탄하기도 했다.


“6학년 때, 이상범 감독님 취임식 날 감독님 손을 잡고 들어갔었어요. 그때 프로 형들이 닮았다고 엄청 그러고, 저번에 KCC랑 연습 경기할 때도 허훈 형이 세근이 형이 왜 여기 있냐고 그랬어요(웃음)”

아직 아마추어 선수인 ‘박준성’ 이름 세 글자에, 닮은 외모로 인해 항상 붙는 ‘작은 오세근’이라는 별칭이 부담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마저도 자신의 자랑스러운 수식어라 설명했다.

“‘제2의 오세근’이라는 수식어는 일단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라도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니까요. 다만 프로에 가서는 저만의 플레이와 모습을 보여드리면 된다고 생각해요. 워낙 대단한 선수와 연결되는 별명이라 기분 좋은 부담감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사진_점프볼 DB, 박준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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