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내실서만 17년…장애 오랑우탄 '백석' 햇빛 누리게 됐다

한송아 기자 2026. 6. 27.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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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도 사육사도 복지 높인 서울대공원 사례
선천적으로 양쪽 하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오랑우탄 '백석'. 내설에서만 생활하던 백석이는 사육사들의 노력으로 야외 방사장이 생겼다. ⓒ 뉴스1 한송아 기자

(서울=뉴스1) 한송아 기자 =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 오랑우탄 '백석'(17)이 햇빛과 바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

오랫동안 방사장이 없는 내실에서 생활해 온 백석에게 최근 야외 공간이 생겼다. 장애 개체의 특성을 고려한 사육환경 개선으로 백석은 실내와 야외를 오갈 수 있는 '선택권'을 얻었고, 사육사들의 관리 환경도 함께 달라졌다.

서울대공원은 지난 24일 '2026년 상반기 동물복지 외부전문가 자문회의'에서 오랑우탄 백석의 사육환경 개선 사례를 공개했다. 이번 개선은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 4년 인증 연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추진된 대표적인 동물복지 개선 사업 가운데 하나다.

내실에 머물던 백석, 햇빛과 바람 선택하게 됐다

내실에서만 생활하던 백석이 모습(서울대공원 제공) ⓒ 뉴스1
지난 24일 야외 방사장에 나와 있던 백석이를 만날 수 있었다. ⓒ 뉴스1 한송아 기자

서울대공원에 따르면 백석은 선천적인 장애와 뇌질환 의심 증상으로 양쪽 하지를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 팔의 힘으로 몸을 끌며 이동하는 생활을 이어왔고 그동안 방사장이 없는 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기존 내실은 에폭시 바닥 중심으로 조성돼 이동 과정에서 몸이 반복적으로 마찰하며 경미한 상처가 생기기도 했다. 햇볕을 충분히 쬐지 못해 비타민D 결핍과 골밀도 저하가 우려됐다. 낯선 사람의 접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특성으로 수의사 진료와 시설 관리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사육사가 백석과 분리되지 않는 공간에 직접 들어가 청소와 관리를 해야 해 안전 문제도 안고 있었다.

서울대공원은 백석의 특성을 고려해 사육환경을 전면 개선했다.

백석이가 사육사들이 백석이를 위해 야외 방사장에 심어준 블루베리 나뭇잎을 맛보고 있다. ⓒ 뉴스1 한송아 기자

가장 큰 변화는 백석이 내실과 야외 공간을 스스로 선택해 이용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이제 백석은 햇빛과 바람, 자연의 소리를 접할 수 있는 외부 케이지와 실내 공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실내 공간도 자연 친화적으로 바뀌었다. 기존 에폭시 바닥 외에 나무껍질 바닥재(바크)를 깔고, 자연목과 파이프 프레임을 설치해 팔을 이용한 수직·수평 이동을 돕도록 했다. 정서적 안정을 위해 이불과 담요 등을 걸 수 있는 구조물도 마련했다.

관리 환경 역시 개선됐다. 사육사와 동물을 분리할 수 있는 안전 게이트를 설치해 보다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사육사 사무실과 가까운 공간으로 옮기면서 백석의 건강 상태도 더 자주, 더 세심하게 살필 수 있게 됐다.

백석이가 이 자리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창문으로 사무실에 있는 사육사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뉴스1 한송아 기자

"백석도 사육사도 눈이 반짝"…장애 동물복지 사례로 주목

이번 개선은 지난해 AZA 조건부 인증 과정에서 지적받은 동물복지 개선 사항을 반영한 사례이기도 하다. 당시 AZA는 오랑우탄과 고릴라 등 일부 영장류의 장기간 단독 사육과 사육환경 개선 등을 권고한 바 있다.

최효정 서울동물원 동물기획과장은 "AZA 인증은 동물복지와 종 보전, 교육, 안전 등 동물원 운영 전반을 국제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제도"라며 "인증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동물복지 수준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송혜경 교수를 알아본 백석이가 눈을 맞추고 있다. ⓒ 뉴스1 한송아 기자

송혜경 청주대 동물보건복지학과 교수는 과거 서울대공원에서 백석을 돌본 인연을 떠올리며 "몇 년 만에 다시 만나도 백석은 나를 알아볼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동물"이라며 "백석의 눈도, 오랫동안 함께한 사육사들의 눈도 모두 반짝이는 것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오랑우탄에게는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며 "사육사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 마련한 공간인 만큼 동물을 위한 고민과 노력이 만들어낸 감동적인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이기원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KAZA) 사무국장은 이번 사례가 장애 개체의 복지를 적극적으로 개선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봤다.

이 사무국장은 "장애가 있는 동물은 일반적으로 관람객에게 공개되지 않는 공간에서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백석 사례는 장애가 있더라도 개체 특성에 맞는 환경을 조성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승구 사육사가 백석이의 야외 방사장을 살펴보고 있다. ⓒ 뉴스1 한송아 기자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동물원의 역할은 단순히 종을 보전한다는 이유로 동물을 계속 늘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며 "종 보전이라는 가치와 개별 동물의 복지가 충돌할 때는 동물 한 마리, 한 마리의 삶의 질을 우선하는 판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백석 사례는 동물원의 역할이 '돌봄이 필요한 개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도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고 전했다.

서울대공원은 백석 외에도 시각장애가 있는 열대조류관 앵무새들을 새로운 사육환경에 적응시키며 활동량을 높이는 등 장애 개체의 특성에 맞춘 복지 개선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대공원에서 열린 2026년 상반기 동물복지 외부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최효정 서울대공원 동물기획과장이 AZA 인증 추진 현황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뉴스1 한송아 기자
지난 24일 서울대공원에서 열린 2026년 상반기 동물복지 외부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여용구 서울대공원 동물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뉴스1 한송아 기자

한편 서울대공원은 지난해 AZA 조건부 인증 이후 일본원숭이사 환경 개선, 오랑우탄 사육환경 개선, 코끼리 행동 교육 등 지적 사항을 순차적으로 보완해 왔다. 오는 9월 열리는 AZA 청문회에서 4년 연장 인증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용구 서울동물원장은 "AZA 인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물복지 수준이 한 단계 더 발전했다고 느낀다"며 "앞으로도 동물의 삶의 질을 높이는 환경 개선과 멸종위기종 보전 활동을 지속해서 추진해 시민들에게 신뢰받는 동물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해피펫]

badook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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