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장난감과 '쓱쓱' 조약돌 [변태섭의 세상 청진]
편집자주
의학의 창으로 세상을 청진합니다. 난해한 전문 지식은 알기 쉽게 풀고, 사회 현상의 이면을 짚어봅니다. 병원 문턱을 넘어 우리 삶 깊숙이 들어온 의학 이야기를 전합니다.

가끔 아들 방에서 ‘딸깍딸깍’ 소리가 울려 퍼진다. 기계식 키보드 키감을 그대로 옮겨놓은 작은 장난감(키캡)이 내는 소리다. 누를 때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불빛이 반짝인다. 왜 그렇게 계속 누르느냐고 물으면 아이의 답은 늘 똑같다. “스트레스가 풀려요.”
초등학교 4학년짜리가 스트레스를 입에 올리는 것도 낯선데, 해소 방법이 키보드 장난감을 누르며 딸깍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니. 헛웃음이 나다가 씁쓸해졌다. 초등학생조차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도구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새삼 실감 났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에게 키캡이 있다면 20대 청년 세대 사이에선 ‘워리 스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워리 스톤은 엄지손가락으로 편안하게 문지를 수 있도록 가운데가 오목하게 파인 작은 조약돌이다. 취업 준비와 진로 고민,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청년들이 돌의 매끄러운 표면을 문지르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다.
키캡 장난감과 워리 스톤 유행은 과거 손으로 돌리는 피젯 스피너가 인기몰이를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모두 반복적인 촉각 자극을 통해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을 주는 이른바 ‘피젯 토이’의 일종이다.
국제학술지 연구 결과를 보면, 손가락을 움직이는 감각 활동은 촉각·청각 자극에 주의를 집중하게 해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부정적인 감정에 몰입하기 전에 다른 감각 자극으로 주의를 전환하는 일종의 대체 행동인 셈이다.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는 과정은 ‘왜 그때 그렇게 했을까’, ‘내일 면접을 못 보면 어떡하지’ 같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끊는 데도 도움을 준다.
다만 키캡 등은 일시적인 주의 환기용 도구일 뿐,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지는 못한다. 또한 기분 좋은 촉감에 몰두하다 보면 불안과 긴장, 스트레스를 마주하고 조절하는 힘을 기를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키캡 등의 도구가 불편한 감정을 잠시 덮어두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얘기다.
외부 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해 마음을 다스리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복식호흡이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준희 교수는 “배를 부풀리며 4초간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4초간 참고, 6초에 걸쳐 천천히 내쉬는 복식호흡을 2~3분만 해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하고 심박수가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키캡을 딸깍거리는 초등학생과 워리 스톤을 문지르는 청년들이 갖는 고민과 그 무게는 각기 달라도, 불안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싶다는 바람만큼은 같을 것이다. 손끝의 작은 장난감과 조약돌은 잠시 마음을 달래주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들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길 바란다. 딸깍딸깍 소리와 매끄러운 감촉보다 더 오래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결국 단단한 마음일 테니까.

변태섭 의학담당 기자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최대 '1000조' 투자 예고됐는데.. 호남엔 물도 전기도 부족하다
- 얼마나 빠져야 건보가 될까... 청년층 관심 폭발하는 탈모-경제ㅣ한국일보
- "답을 못 찾겠다" 홍명보 유체이탈 화법에… 거세지는 책임론-스포츠ㅣ한국일보
- [단독] 100㎞ 과속 차량에 9개월 일본 아기 숨졌는데…79세 택시기사 '금고형 집유'
- 미간 찌푸린 채 변호인 바라본 김건희... 법정에 울린 '징역 7년'-사회ㅣ한국일보
- 국회로 공 넘어온 '보완수사권 폐지'... 민주당 계파 갈등에 발목 잡혔다-정치ㅣ한국일보
- "어금니 꽉?"… 손흥민 父, 남아공전 보던 중 관중석서 '벌떡'-사회ㅣ한국일보
- "경솔했다" 선처 호소한 박수홍 형수… 검찰, 항소심도 징역 10개월 구형-사회ㅣ한국일보
- '깐부 할아버지' 배우 오영수, 강제추행 혐의 무죄 확정-문화ㅣ한국일보
- 김어준 한 마디에 '두쪽' 난 민주당... "중도가 아니라 코어가 떠났다"-정치ㅣ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