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하이닉스 절대 팔지 마라”…2조원 굴리는 가치투자자의 후회
삼성·SK·마이크론 3강 구도…새 경쟁자 진입 난망
장기 보유론에도 메모리값·HBM 경쟁력은 ‘변수’
“영원히 보유했어야 했는데 팔아버렸다.”

파브라이는 워런 버핏의 가치투자 원칙을 따르는 투자자로 알려져 있다. 파브라이 인베스트먼트 펀드의 매니징 파트너로, 올해 5월 말 기준 운용자산은 13억달러다.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무게도 커졌다. 산업통상부가 지난 1월 발표한 ‘2025년 연간 및 12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보다 22.2% 늘어난 1734억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서버 투자가 확대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DR5 등 고부가 메모리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파브라이는 지난 22일 유튜브 채널 ‘지식인사이드’에 출연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투자했다가 매도했던 경험을 공개했다.
그는 “영원히 보유했어야 할 기업들이었는데 내 원칙을 어기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매도했다”며 “돌이켜보면 뼈저린 실수였다”고 말했다.
두 종목을 언제 사고팔았는지, 또 실제로 얼마를 벌거나 잃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특정 가격에 사라는 권유라기보다는 경쟁력 있는 기업을 너무 일찍 팔아버린 데 대한 후회에 가깝다.
파브라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높게 평가한 배경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재편이 있다.
과거 메모리 시장에서는 여러 업체가 생산량을 늘리며 가격 경쟁을 벌였다. 지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이 이끄는 3강 구도가 굳어졌다.
후발 업체가 이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기도 어렵다. 첨단 공장을 짓는 데 막대한 자금이 들고, 생산라인을 갖춘 뒤에도 안정적인 수율과 고객사 인증을 확보해야 한다. 특허와 전문인력, 오랜 생산 경험도 필요하다.
파브라이는 “새로운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하려면 특허 장벽을 넘어야 하고 수천 명의 핵심 엔지니어를 확보해야 한다”며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구축하는 데도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생산시설만 세운다고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아니다. 기술과 인력을 축적하고 수율을 안정시켜 기존 업체들과 경쟁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파브라이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을 골드러시 당시 곡괭이를 팔던 사업에 빗댔다.
AI 가속기는 연산용 반도체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데이터를 대량으로, 그것도 빠르게 주고받으려면 고성능 메모리가 받쳐줘야 한다.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아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HBM이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파브라이는 “반도체 산업의 성장 수혜를 가장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며 “이미 보유하고 있다면 팔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황의 좋은 시기도 아직 초입이라고 평가했다.
장기 보유가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공급이 수요보다 빠르게 늘면 가격이 급락하는 경기순환 산업이다. 설비투자와 재고, 제품 가격, 고객사의 투자 계획에 따라 실적과 주가가 크게 움직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사업 구조도 같지 않다. HBM 기술력과 고객사 구성, 범용 메모리 비중이 다르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의 성과도 실적에 영향을 준다. 같은 메모리 3강 업체라는 이유만으로 두 회사의 투자 위험을 똑같이 볼 수는 없다.
파브라이는 한국 경제의 장기 위험으로 인구 감소를 꼽았다. 국가데이터처의 ‘장래인구추계: 2022∼2072년’에 따르면 중위추계 기준 한국 총인구는 2024년 5175만명에서 2072년 3622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인구 감소는 생산과 소비를 함께 위축시켜 내수와 경제성장에 부담을 준다. 파브라이는 한국과 일본처럼 인구가 줄어드는 국가는 해외 시장에서 성장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파브라이는 주식을 시세표의 숫자가 아니라 기업의 일부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사고팔 게 아니라, 회사를 통째로 사들인다는 마음으로 사업 구조와 부채, 장기 경쟁력을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평생 보유할 수 있는 기업을 찾는다”며 “투자자들이 돈을 잃는 가장 큰 이유는 레버리지”라고 말했다. 부채가 많은 기업뿐 아니라 개인이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방식도 경계했다.
비트코인이나 AI처럼 시장의 관심이 한곳에 몰릴 때 뒤늦게 뛰어드는 투자에도 선을 그었다. 남들이 외면하는 곳에서 위험에 비해 기대수익이 큰 기업을 찾는 것이 가치투자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파브라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높이 평가한 근거는 당장의 주가가 아니라 메모리 시장의 진입 장벽과 세계 시장에서의 위상이다. “절대 팔지 말라”는 그의 말도 어떤 가격에서든 사라는 뜻은 아니다. 메모리 가격과 재고, HBM 경쟁력, 회사의 재무 상태가 바뀌면 장기 보유의 근거 역시 다시 따져봐야 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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