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 10년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적, 제주 환자의 심장이식 이야기
![[심부전과 살아가기] 10년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적, 제주 환자의 심장이식 이야기](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27/Edaily/20260627061005280hgxr.jpg)
처음 그를 진료한 분은 심장이식센터장님이었다. 제주도의 한 병원에 다니던 환자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호흡곤란으로 외래를 찾아왔다. 숨이 차서 눕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걷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제주에서 인천까지, 비행기를 타고 공항을 지나 병원에 닿기까지의 그 길을, 환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건너왔다.
검사 결과는 예상보다 나빴다. 심장은 이미 크게 늘어나 있었고, 심장초음파에서 좌심실 박출률(Ejection Fraction, EF)은 10%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정상 심장이 한 번에 절반 이상의 피를 내보낸다면 이 심장은 열에 하나 남짓밖에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곧바로 입원 치료를 시작했고, 동시에 심장이식 대기자 등록을 준비했다. 처음 만난 날부터, 이 환자의 길 끝에는 이미 ‘이식’이라는 두 글자가 놓여 있었던 셈이다.
여러 진료과가 모인 다학제 회의 끝에 심박출량 저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좌각차단(LBBB) 소견이 확인되었다. 좌심실이 한 박자로 모여서 수축하지 못하고 좌우가 어긋나게 뛰면, 같은 힘을 써도 몸으로 나가는 피는 줄어든다. 어긋난 박자를 다시 맞춰 주기 위해, 먼저 CRT-D(심장재동기화 치료 및 제세동기 삽입술)를 시행하기로 했다.
다행히 치료는 효과가 있었다. 환자는 이후 약 3년 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냈다. CRT-D 시술 이후 좌심실 박출률도 20% 이상으로 조금씩 회복되는 듯했고, 코로나19 유행기와 몇 번의 겨울도 큰 고비 없이 넘겼다. 외래 때마다 약은 잘 드시는지, 체중이 늘지는 않았는지, 다리가 붓지는 않는지 확인하면서, 우리도 환자도 ‘이대로 한동안은 괜찮겠다’고 조심스레 안심했다.
그러나 심부전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감기를 한 차례 앓고 난 뒤부터 환자는 다시 숨이 차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된 호흡곤란은 약을 올려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회복되는 듯 보이던 심장은 다시 본래의 약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계속 숨이 차면, 이제 LVAD(좌심실보조장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2024년, 제주에 봄이 한창이던 무렵 환자는 결국 LVAD 수술을 받았다. LVAD는 약해진 좌심실 대신 피를 몸으로 밀어내 주는 기계 펌프다.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에게는 이식이라는 다음 문이 열릴 때까지 버티게 해 주는 ‘다리(bridge)’와 같다.
보통 LVAD를 삽입한 뒤에는 장기 기능과 폐고혈압, 영양 상태, 운동 능력을 차근차근 회복시키며 적절한 공여 심장을 기다린다.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안정적으로 보조순환을 유지한 뒤 이식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LVAD 환자의 이식은 가슴을 다시 여는 재개흉(redo) 수술이라 이전 수술로 생긴 유착을 박리하는 과정에서 대량 출혈의 위험이 높다. 그래서 우리 병원은 심장혈관흉부외과와 상의하여, LVAD 수술 후 최소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이식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 기증자가 줄면서, 이런 조건과 무관하게 2년, 3년, 길게는 5년 이상 LVAD에 의지해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기계가 시간을 벌어 주는 동안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은 오롯이 환자의 몫이다.
그 기다림 속의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숨찬 증상은 사라졌지만 환자는 매일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고 드라이브라인(체외로 나온 전선) 상처를 소독해야 했다. 외출할 때면 늘 장비가 든 가방을 메야 했고, 그 무게에 어깨와 체형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다. 여행을 계획할 때는 옷보다 여분의 배터리와 충전기를 먼저 챙겼다. 항응고제를 거르지 않고 복용하며 혈액응고 수치를 정기적으로 확인했고, 작은 상처 하나, 미열 한 번에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몸 안에 기계가 들어온 뒤, 삶 전체가 LVAD를 중심으로 다시 짜였다.
그럼에도 환자는 언제 이식 기회가 오더라도 가장 좋은 상태로 수술대에 오르겠다는 듯, 누구보다 성실히 치료에 임했다. 재활 운동을 거르지 않았고, 기계 관리도 상처 관리도 빈틈이 없었다. 우리끼리 농담처럼 “모범 환자상을 드려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코디네이터의 눈에는 그 성실함이야말로 환자가 기다림을 견디는 자기만의 방식처럼 보였다.
그렇게 1년만 지나면 이식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시간은 어느덧 2년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사이 몇 차례 이식 순위가 되어 연락을 드린 적은 있었지만 최종 수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때마다 환자는 다시 짐을 풀고 제주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 전화가 와도 곧장 달려올 수 있도록 입원 가방을 싸 둔 채 늘 비상대기 상태로 지냈다고 했다.
제주에 사는 환자에게 심장이식은 더욱 긴박하다. 뇌사 장기기증이 발생하면 적출 당일에 수혜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비행기를 타고 인천까지 와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도, 의료진도 늘 시간과 거리를 함께 계산하며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드물게도 적출 일정이 이틀 뒤로 예정된 뇌사 장기기증자 발생 연락이 왔다.게다가 가장 경쟁이 치열한 O형 혈액형임에도 우리 환자가 2순위라는 소식이었다. O형 수혜자는 원칙적으로 같은 O형 공여 심장만 받을 수 있어 대기가 가장 길다. 그런데도 기회가 코앞에 와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1순위 기관의 수혜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정보였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에서 예감이 들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받겠구나.”
모든 것이 우리 쪽으로 맞춰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기증자분이 ‘내 심장은 너희가 가져가라’고 우리 병원 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새벽 2시. 교차반응검사(crossmatch)가 음성이라는 결과를 확인했다. 수혜자의 혈액과 공여자의 림프구를 섞어 거부반응의 단서를 미리 보는 검사인데, 이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결과지를 확인하자마자 나는 센터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일단 병원으로 오시라고 하죠.”
곧바로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아직 최종 확정은 아니며, 검사 결과에 따라 마지막에 무산될 수도 있다는 점도 잊지 않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환자는 다른 질문도, 망설임도 없었다.
“당장 갈게요. 입원 가방은 몇 달 전부터 싸 놓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금 바로 공항으로 가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으니 일단 가겠다는 그 한마디에 환자가 이 전화를 얼마나 오래 기다려 왔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필 그날은 비까지 내렸다. 최근 항공편이 많이 줄어든 터라 표를 구할 수 있을지 마음을 졸였는데, 잠시 후 환자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오늘 비행기가 전부 매진이었는데요, 신기하게도 딱 한 자리 남아 있었어요. 저 타고 가라고 남겨 둔 자리였나 봐요!”
그렇게 환자는, 빗속을 가로질러 제주에서 인천으로 날아왔다. 입원하자마자 수많은 검사와 채혈이 이어졌다. 팔이 멍들도록 바늘이 들어갔지만 환자는 내내 웃고 있었다.
“주사 백 번 찔러도 괜찮아요. 다 저를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그날 밤, 우리는 최종 수혜를 확정했다.
수술을 앞두고 마지막까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환자의 원래 심장이 오랜 심부전으로 너무 크게 늘어나 있었다는 점이다. 심장이식에서 공여 심장이 수혜자에 비해 지나치게 작으면 충분한 심박출량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이식 직후 우심실 부전이 생길 수 있다. 이식 초기 예후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공여 심장의 크기는 단순히 체중만으로 가늠하지 않는다. 성별과 키, 나이까지 함께 보아야 실제 심장의 크기를 제대로 짐작할 수 있다.
공여자는 60대였다. 나이만 놓고 보면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질병에 의한 뇌사공여자가 아니였고, 관상동맥 CT에서도 의미 있는 이상이 보이지 않아 심장 자체는 비교적 양호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무엇보다 공여 병원이 우리 병원과 멀지 않아 심장이 몸 밖으로 나와 다시 뛰기까지의 시간, 즉 허혈시간을 짧게 가져갈 수 있었다. 나이가 주는 부담을, 짧은 허혈시간과 양호한 심장 상태가 메워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혜자는 체격이 크고 심장이 매우 커져 있었지만, 공여자는 체중은 가벼워도 키가 큰 편이었다. 단순한 몸무게 차이만 보면 작아 보여도, 키와 성별을 함께 고려하면 심장의 크기는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는 계산이 섰다. 센터장님과 적출팀은 공여 심장의 기능과 크기, 공여자의 상태, 예상 허혈시간, 그리고 수혜자의 체격과 2년이 넘는 대기 기간을 모두 저울에 올려놓고 고민했다. 완벽하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O형이라는 점과 이 오랜 기다림을 생각하면,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적출팀이 직접 확인한 공여 심장은, 우려할 만한 차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마침내 수술 당일이 되었다.
“수혜자 ○○○환자, 수술실로 이동하겠습니다.”
가족이 곁을 지키지 못한 자리는, 오랜 시간 환자를 돌봐 온 병동 간호사들이 채워 주었다. 이동 침대 곁에 둘러선 그들을 보며 환자는 밝게 웃었다.
“이제 이 지겨운 LVAD 떼고 올게요. 간호사 선생님들이 수술실 입구까지 와 주시니 너무 좋네요.”
내일 아침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끝으로, 환자는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환자는 웃고 있었고, 그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제주에서 함께 오지 못한 가족들은 가까운 절을 찾아 기증자분을 위한 감사기도를 하며 밤을 지새웠고 수술 후 환자는 의식을 바로 회복했다. 다음 날 아침 중환자실 격리병실의 유리창 너머로, 나를 향해 팔과 다리를 크게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말은 이것이었다.
“나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프고, 너무 좋아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10년 넘게 이어져 온 기다림이 비로소 한숨을 돌리는 것 같았다.
센터장님은 이 환자의 긴 여정을 돌아보며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O형 환자가 심장이식을 오래 기다리는 데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O형 수혜자는 원칙적으로 O형 공여 심장을 기다려야 합니다. 반면 O형 공여 심장은 혈액형이 맞는 다른 혈액형 수혜자에게도 갈 수 있습니다. 제도상 같은 혈액형이 우선 고려되지만, 심장이식은 무엇보다 응급도가 중요한 장기입니다. 더 위급한 환자, 거리, 대기 기간 같은 여러 조건이 함께 작용하지요. 결국 O형 환자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좁고, 그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심장은 살아 있는 사람이 나누어 줄 수 없는 장기다. 한 번의 뇌사 장기기증, 한 통의 연락, 한정된 허혈시간 안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래서 O형 환자에게 기다림은 더 길고, 한 통의 전화는 더 절박하다.
제주에서 인천까지 비행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다. 그러나 심장이식을 받기 위해 그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환자는 10여 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2년 넘게 몸의 일부처럼 함께했던 LVAD 가방을 내려놓기까지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수술 후 한 달쯤 지나면, 환자는 이제 LVAD 가방 없이 제주로 돌아갈 것이다. 낯설 만큼 홀가분해진 몸과 마음으로, 새로운 심장과 함께 다시 일상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번 이식은 한 환자에게 찾아온 기적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가 10년 넘게 포기하지 않고 준비해 온 시간이 만든 결과였다. 그리고 그 시간을 곁에서 함께 지켜본 우리에게도, 오래도록 기억될 이식이었다.
이순용 (sy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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