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1.4조 투입된 AI교과서, 결국 법정행…‘맞춤교육’ 3년 만에 손배소전[중기+]

홍석희 2026. 6.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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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6월 8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AI 디지털 교과서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 부총리가 발표한 AIDT는 그러나 2024년 계엄령 선포와 2025년 탄핵·대선 등을 거치며 공중분해 됐고, 발행 사업에 참가했던 교과서 개발 업체들은 정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가액은 2000억원 규모로 알려진다.[연합]
정부 믿고 개발 나선 교과서 개발업체들, 23일 국가 상대 민사소송
교과서 지위 박탈 뒤 채택률 급락…구조조정·사업철수 번져
헌법소원 장기화 전망에 손실 보전 위한 배상 책임 공방 본격화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정부가 ‘1대1 맞춤 교육’을 앞세워 추진했던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 사업이 도입 발표 3년 만에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으로 번졌다. 정부 발표를 믿고 교과서 개발과 플랫폼 구축, 인력 확충에 나섰던 발행사들은 교과서 지위 박탈 이후 손실이 현실화됐다. 교육업체들은 헌법소원을 이미 제기했으나 결론까지 2년 이상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기에 민간 투자 피해를 돈으로 다투는 민사소송을 별도로 시작된 것이다.

27일 교육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YBM·동아출판·아이스크림미디어·비상교육·NE능률·금성출판사·교학사·교문사 등 10여 개 교과서 발행사는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에 교육부를 상대로 2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번 소송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태평양이 법률대리인으로 참여했다. AIDT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헌법소원과 별개로, 발행사들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실제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행사들은 당초 소송 제기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업계에선 피해 업체들이 여전히 교육부, 시도교육청, 학교 현장과 사업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만큼 공개적인 대립 구도를 키우는 데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 교육업계 관계자는 “법적 대응은 불가피하다고 보면서도 교육 현장을 상대로 하는 사업 특성상 전면전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AIDT는 지난 2023년 6월 교육부가 ‘AI 디지털교과서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수학·영어·정보·국어 특수교육 과목에 우선 도입하고, 2028년까지 국어·사회·역사·과학·기술·가정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4년 보고서에서 2025~2028년 학생용 AIDT 구독료가 최소 1조9252억원에서 최대 6조6156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후 감사원 감사에선 2023~2025년 AIDT 도입 준비에 들어간 예산이 1조4093억원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AIDT를 공교육 혁신의 핵심 수단으로 제시했다. 학생별 학습 수준과 속도를 분석해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고, 교사는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생을 지도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도입 초기부터 졸속 추진 논란이 따라붙었다. 교사 연수와 기기 인프라, 개인정보 보호, 구독료 예산, 검정 기준 등을 둘러싼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감사원은 이후 AIDT 도입 과정에서 시범운영 생략, 현장 적합성 검토 미흡, 기술 기준 마련 전 검정 공고 등 준비 부족을 지적했다.

AIDT가 교육업체들이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법적 지위 변경 탓도 크다. 국회는 2025년 8월 AIDT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교과서일 때는 학교 현장에 ‘의무’ 사용 으로 강제되지만, 교육자료가 되면 학교의 AIDT 도입 여부가 ‘선택’이 된다. 발행사 입장에선 시장 규모와 회수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게 되는 셈이다.

실제 현장 도입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교육부가 전면 도입 대신 학교 자율 선택 방식으로 선회한 뒤 AIDT 채택률은 30%대에 그쳤다. 감사원 감사 결과 2025년 3~5월 AIDT를 채택한 학교의 초·중·고 학생이 10일 이상 AIDT를 활용한 비율은 학년·과목별 평균 8.1%였다. 한 번도 접속하지 않은 비율도 평균 60%로 집계됐다.

발행사들은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했지만 정책 변경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업계가 주장해온 민간 투자 규모는 8000억원에 이른다. 개발비뿐 아니라 학습 데이터 설계, 콘텐츠 제작, 플랫폼 구축, 검정 대응, 영업·운영 인력 확충 등에 비용이 들어갔다는 설명이다. 이번 공동 소송의 소송가액은 2000억원 규모로 알려졌으며, 업체별 손해 산정에 따라 청구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 피해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진 천재교육은 민사소송을 별도로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AIDT 후폭풍은 고용 문제로도 이어졌다. 천재교과서는 올해 3월 디지털 학습지 ‘밀크티’ 사업부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내부에서는 감축 규모가 수백명대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 회사 측은 AIDT 정책 변화로 손실이 커져 인력 효율화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아이스크림에듀와 비상교육도 희망퇴직, 사업부 축소, 인력 재배치에 나선 바 있다. 웅진씽크빅은 AIDT 관련 정책 불확실성을 이유로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발행사들은 지난해 11월 헌법소원도 제기했다. AIDT를 교육자료로 바꾼 법 개정이 신뢰보호 원칙과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다만 헌법소원은 결론이 나올때까지 2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업계 내부에서 손실 보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민사소송은 ‘정부 정책을 신뢰한 민간업체’의 피해를 법원이 어느정도 수준에서 인정할 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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