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태극기는 어르신의 전유물? 이젠 2030의 ‘애착템’ 됐다

직장인 오모(32)씨는 요즘 어디를 갈 때 항상 태극기를 가지고 다닌다. 지난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잠실 참정권 집회’에 참석한 이후 생긴 버릇이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숄더백에 작은 태극기를 꽂아둔 사진을 올리고 “반려 태극기와 함께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려 태극기’는 반려동물처럼 애정을 갖고 태극기와 늘 함께한다는 뜻이다. 최근 젊은이들이 주로 쓰는 말로 ‘애착 태극기’라고도 불린다. 직장인 한모(29)씨도 최근 ‘태극기 전도사’가 됐다고 한다. 한씨는 “길에서 시민들이 나눠준 태극기를 받았는데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묘한 일체감을 느꼈다”며 “보다 보니 ‘태극기가 참 예쁘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했다.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태극기가 ‘반려·애착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젊은이들에게 태극기는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엄숙한 애국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주로 노년층에서 집회 등에 참석할 때 태극기를 들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MZ세대 사이에서 태극기가 ‘힙(Hip)’한 패션 아이템이나 하나의 문화적 ‘밈(Meme·유행 콘텐츠)’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태극기 문양이 들어간 패션 아이템이나 액세서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늘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최모(26)씨는 얼마 전 출퇴근용 백팩에 6·25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태극기 키링(열쇠고리)을 달았다. 최씨는 “키링 하나에 3만원 선으로 가격이 꽤 나가지만, 태극기가 갖는 의미가 좋아 구매했다”며 “일반 캐릭터 키링을 달고 다니는 것보다 예쁘고 스스로도 뿌듯하다”고 했다. 최씨가 키링을 구매한 온라인 쇼핑몰의 태극기 키링 상품 페이지에는 “태극기가 이렇게 힙한 줄 몰랐다” “실물도 예쁜데 의미까지 있어서 더 좋다” 같은 구매 후기가 3600여 개 달렸다. 한 온라인 쇼핑몰 사장 이모(42)씨는 “태극기 문신 스티커도 이번 달에만 평소보다 10배 이상은 더 팔렸다”며 “월드컵 등 영향이 있어 보이지만 2~3년 전보다 확실히 매출이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광복절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출시한 ‘데니 태극기’ 키링은 기념품점에 입고되자마자 품절되는 일이 반복됐다. 데니 태극기는 고종의 외교 고문을 지낸 미국 외교관 오언 니커슨 데니(1838~1900)가 고국으로 돌아갈 때 가져간 태극기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태극기 관련 상품은 올해도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번 현충일 전후로 데니 태극기 키링 판매량이 늘었다”고 했다.

태극기 관련 의류도 여름휴가철마다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한다. 해외여행 때 입으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K콘텐츠 위상이 높아지면서 해외에서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심리가 반영된 것 같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태극기를 소재로 의류를 제작하는 ‘바이더알’의 이인원 대표는 “7년 전 처음 태극기 옷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최근 들어 주문이 눈에 띄게 늘어 현재는 하루 평균 100벌 이상씩 판매된다”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로 30대 후반을 넘어선 사람들이 주 고객이었는데 지금은 20대 고객 비율이 20~30%까지 늘어났다”고 했다.
온라인에서도 태극기 바람이 불고 있다. 요즘 현충일이나 광복절 같은 국가기념일에 실물 태극기를 게양하는 집을 찾기는 어렵다. 대신 카카오톡 프로필을 태극기 스티커로 꾸미는 ‘디지털 게양 챌린지’가 유행한다. 태극기 게양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바뀐 셈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BTS나 손흥민, 페이커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인들이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을 보며 자란 세대”라며 “태극기를 무겁고 경직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하나의 트렌디한 아이콘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MZ들이 태극기 아이템 구매에 적극적인 것을 두고는 소비를 통해 자기 가치관을 드러내려 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 성향이 반영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김태희 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국장은 “태극기 열풍을 이어가면서 2030대가 올바른 태극기 사용법과 폐기 방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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