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최측근 부패 연루… 위기의 스페인 총리

김보경 기자 2026. 6. 2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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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산체스 정권, 8년 만에 흔들
지난 10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열린 교황 레오 14세 집전 미사에 참석하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오른쪽)와 부인 베고냐 고메스. /EPA 연합뉴스

페드로 산체스(54) 스페인 총리는 유럽연합(EU) 정상 중 최근 국제정치 무대에서 가장 관심받는 인물 중 하나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 요구, 반(反)이민 정책, 가자지구 분쟁 정책 등에 대해 번번이 대립각을 세우며 공개 충돌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 좌파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국제정치 록스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적으로 산체스는 가족과 측근들의 잇단 부패 스캔들로 집권 9년만에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야당으로부터 조기 총선과 함께 퇴진 요구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주말 스페인 마드리드의 플라자 데 카스티야 법원은 산체스의 부인 베고냐 고메스(55)의 여권을 압수하고 출국을 금지하라는 조치를 내렸다. 고메스는 총리와의 관계를 이용해 마드리드대학에서 보직을 얻으려 시도하고, 사업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정부 사업을 따내고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3년 째 조사를 받고 있다. 고메스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부인 사건이 처음 수사망에 올랐던 2024년 4월 산체스는 “아내까지 표적으로 삼는 괴롭힘 공작이 개인적, 정치적으로 나를 취약하게 하고 있다”면서 총리 사임 카드까지 던지며 ‘배수의 진’을 쳤다.

6월 15일 베고냐 고메스 여사가 법원에 출두한 가운데스페인 마드리드 법원 밖에 고메스 여사의 의혹을 비판하는 시위 트럭이 서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산체스의 부인이 출국 금지 명령을 받은 이틀 뒤엔 대법원이 ‘산체스의 오른팔’ 호세 루이스 아발로스(67) 전 교통·도시개발부 장관에게 징역 24년 3개월을 선고했다. 아발로스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마스크 구매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아발로스가 비서·사업가 등과 도모해 범죄 조직을 만들어 권력 남용과 뇌물 수수를 일삼았다면서 “스페인 민주주의 기관과 공공 질서의 심각한 퇴보”라고 했다.

아발로스는 산체스를 총리로 만든 실질적인 킹메이커다. 2016년 사회당(PSOE) 당수였던 산체스가 당내 압박에 이기지 못하고 사임했을 때도 아발로스는 산체스의 곁을 지키며 함께 지방 유세를 펼쳐 산체스가 다시 당권을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판결이 내려진 후 아발로스는 “정치적이고 미리 결과가 정해진 판결”이라면서 “선고 결과가 실망스럽다”고 했다.

산체스의 지지자이자 ‘사회당 서열 3위’인 산토스 세르단(57)도 대규모 공공 계약 뇌물 수수 사건에 연루돼 수사를 받고 있다. 세르단은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뇌물을 수수한 정황이 포착돼 현재 사회당 조직비서를 비롯한 모든 직에서 물러났다. 사회당 안에서 발생한 부패 사건인 탓에 산체스 총리의 공개 사과로도 이어졌다.

산체스의 정치적 대부이자 스페인 좌파의 거물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66) 전 스페인 총리(재임 2004~2011년)의 수사는 스페인 좌파 전체를 흔들고 있다. 사파테로는 2021년 스페인 항공사 ‘플러스 울트라’에 구제 금융을 편성하는 데 과거 총리 직무를 통해 얻은 인맥을 활용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스페인 전현직 총리 중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출석하는 첫 사례다.

산체스와 사회당은 2018년 중도우파 국민당이 대규모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불신임 투표에서 패배하면서 집권했다. ‘부패한 보수 정부와 다른 정계 정화’를 기치로 내걸고 EU 27개국 중 두 번째로 오래 집권하고 있지만, CNN은 “지금 산체스의 정치적 생존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고 했다. 다음 총선은 내년 8월 예정돼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 전에 연립정부가 붕괴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금 선거가 치러진다면 국민당이 승리하고 강경우파 복스(Vox)당과 연합해 과반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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