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는 기억조차 따뜻하게, 연극 ‘세상 참 예쁜 오드리’ 김경란 정애연 [인터뷰]

양형모 기자 2026. 6. 2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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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에서 내려 바지를 털었다.

정애연 배우와 나는 같은 곳에서 산 아이스커피, 김경란 배우는 집에서 챙겨온 텀블러에 담긴 음료를 마셨다.

김경란 배우는 조혜련 배우 주선으로 합류했고, 정애연 배우는 연출가의 러브콜을 받았다고 한다. 김경란 배우는 이영국 감독한테 전화를 받았고, 정애연 배우는 주변 동료의 추천으로 연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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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세상 참 예쁜 오드리’에서 주인공 오미연 역에 더블 캐스팅된 배우 정애연(왼쪽)과 김경란. 사진제공 | 에이엔컴퍼니
마을버스에서 내려 바지를 털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종로08번 마을버스로 갈아 타고 10분. 이런 외진 곳이라니. 공연 보러 또는 맛집 찾아 대학로 ‘거실’만 왔다 갔다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데는 배우들의 부엌이나 침실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런 곳에서는 공연이나 연습이 끝난 깊은 밤, 골목 술집 아무 데나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루의 고됨과 아직도 뜨끈하게 남아있는 열정을 한 잔 술로 식히는 배우들과 쉽게 눈을 마주치게 된다. 물론 이 속살 같은 뒤풀이 공간에 아무나 껴주지는 않는다.

한적한 시골 버스 정류장에 툭 떨어진 이방인처럼 서먹하게 서 있자니, 정애연 배우가 건물 뒤편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대로시네요?” 2019년 연극 ‘사랑해 엄마’ 인터뷰 때 보았으니 7년쯤 되었으려나.

배우들의 시간은 확실히 더디게 간다. 억울할 정도로 정애연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다. 웃으면 눈이 가늘고 길어지는 것도 여전하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아이스커피 한 잔을 들고는 그를 따라 지하 연습실로 내려간다. 배우들의 연습이 한창인 모양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꽤 시끄럽다.

“연습하는 거 구경 하실래요?” 정애연 배우의 말에 “아뇨. 괜찮습니다” 하고 단호히 거절했다. 솔직히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이럴 땐 눈 딱 감고 사양하는 게 좋다.

이런 건 풀코스 정식에 디저트, 커피까지 마셨는데 호스트가 다가와서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사양을 전제로 한 질문이다. 나는 예의 있게 물러선다. 사실 배우들은 연습하는 모습을 외부인이 구경하는 것을 썩 반기지 않는다.

연습실 옆 빈방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기다린다. 잠시 후 김경란 배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경란 배우와는 초면이지만, 그가 출연한 작품은 본 적이 있다. 셋이 다 모였으니 슬슬 인터뷰를 시작한다. 아이스 브레이킹엔 역시 날씨 이야기만한 게 없다. 이날은 정수리가 타도록 뜨거웠다.

스마트폰의 녹음 앱 버튼을 누른다. 정애연 배우와 나는 같은 곳에서 산 아이스커피, 김경란 배우는 집에서 챙겨온 텀블러에 담긴 음료를 마셨다.

눈앞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같은 배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느낌을 준다. 정애연 배우는 턱선에서 경쾌하게 떨어지는 단발머리에 보기만 해도 시원한 하늘색 반소매 블라우스를 걸쳤다. 촘촘한 무늬가 박힌 옷자락이 그의 도회적인 외모와 잘 어울려 보인다.

김경란 배우는 이마를 살짝 덮은 정갈한 앞머리에 짙은 흑발을 어깨 밑으로 길게 늘어뜨렸다. 정교한 펀칭 디테일과 앙증맞은 프릴이 눈에 띄는 순백의 블라우스 차림이다.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기운이 은은하게 배어 나왔다.

파란색과 흰색. 맑은 하늘에 둥실 떠오른 구름을 보는 것처럼 기분 좋은 대조였다. 살짝 몸을 기울여 어깨를 맞댄 두 사람은 이내 고개를 뒤로 젖히며 환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닮은 듯 많이 다른, 이들이 뭉친 이유는 단 하나다. 7월 1일부터 7월 19일까지 대학로 드림시어터에서 관객과 만나는 연극 ‘세상 참 예쁜 오드리’에서 두 사람은 주인공 오미연 역을 맡고 있다. 2025년 대학로 초연 때도 두 사람은 오미연 역이었다.

고향에서 국숫집을 운영하는 엄마 오미연에게 갑작스럽게 알츠하이머가 발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2024년 이영국 감독의 원작 영화는 ‘왕사남’으로 국민스타가 된 박지훈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주목받았다. 이 연극은 이영국 감독과 이효숙 연출이 공동 연출을 맡고 있다.

사진제공 | 에이엔컴퍼니
대학로 연극판에서 1년 만에 재연을 올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원작자이자 영화를 직접 연출하셨던 이영국 감독님이 이 작품을 무대에 꼭 다시 올리고 싶다고 먼저 제안하셨어요.” 정애연 배우가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올해는 기획팀도 새로 꾸려졌고, 무엇보다 이효숙 연출님이 공동 연출로 합류하셨어요. 연습실 분위기부터 완전히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죠.” 김경란 배우가 말을 보탰다.

올해 공연은 지난해 초연과 비교해 달라진 구석이 많다. 작년에는 마술과 음악을 결합해 ‘매지컬’이라는 콘셉트를 앞세웠다. 반면, 올해는 좀 더 연극적인 요소에 집중했다.

극 중 아이돌 가수 역할을 맡은 미연의 딸 강지은이 노래하고 춤추는 최소한의 대목을 제외하면, 오직 연극 본연의 힘에 몰두하기로 뜻을 모았다. 아들 배역을 포함해 주변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대거 교체돼 연습실에는 팽팽한 신선함이 감돌았다.

“두 분은 벌써 세 번째 같은 작품에 동반 출연하고 계시는데요. ‘1950 결혼기념일’, ‘사랑해 엄마’ 그리고 ‘세상 참 예쁜 오드리’. 이 정도면 한 세트로 보일 지경입니다.”

내 두 배우가 동시에 웃음보를 터뜨렸다. 김경란 배우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면, 애연이와는 정말 깊은 인연이에요. 연극을 하기 전에 같은 방송을 한 적도 있어요. 엠넷 온스타일 채널의 ‘토크 앤 시티’라는 스타일 프로그램에서 메인 MC와 서브 MC로 호흡을 맞췄죠.”

“그때부터 친분이 두터우셨겠군요?” 김경란 배우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게 그렇지도 않아요. 그때는 녹화 끝나면 각자 인사하고 집에 가기 바빠서 친해질 틈이 없었거든요.”

“방송과 연극은 완전히 달라요. 한 달 반 동안 비좁은 연습실에서 땀을 흘리며 같이 살다시피 해야 하니, 서로의 밑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게 되거든요.” 듣고 있던 정애연 배우가 끼어들었다.

“이번에 경란 언니가 더블 캐스팅으로 다시 합류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속으로 얼마나 든든하고 기뻤는지 몰라요.”

솔직히 나는 조금 오해하고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 두 사람에게 친분이 생겨났고, 그러다 보니 “우리 이 작품 같이 해요”라든지 아니면 먼저 캐스팅된 사람이 “연출님, 이 배우 어때요?” 하고 추천했을 것이라 지레 짐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말은 전혀 달랐다. “우리도 이렇게 만나는 게 신기하다니까요?”

두 사람이 두 번째 만난 작품은 연극 ‘사랑해 엄마’였다. 김경란 배우는 조혜련 배우 주선으로 합류했고, 정애연 배우는 연출가의 러브콜을 받았다고 한다. ‘오드리’ 역시 마찬가지다. 김경란 배우는 이영국 감독한테 전화를 받았고, 정애연 배우는 주변 동료의 추천으로 연이 닿았다.

두 사람은 내 눈앞에서 “넌 그랬니?” “언니는 그랬구나” 하면서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자석이 두 사람을 같은 무대 위로 끊임없이 끌어당기는 것 같다.

연극 ‘세상 참 예쁜 오드리’ 출연 배우들. 왼쪽부터 원성준, 김민아, 정애연, 김경란, 한지우, 도은우. 사진제공 |에이엔컴퍼니
정애연 배우는 이번 작품의 주관사인 에이엔컴퍼니를 이끄는 수장이기도 하다.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프로듀서의 영역까지 넘나들고 있다. 실무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홍보 마케팅을 조율하느라 하루가 모자란 요즘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언급되진 않았지만, 드라마도 촬영하고 있는 모양이다.

같은 배역, 다른 캐릭터를 가진 두 사람의 성향은 무대 밖에서 펄펄 끓는 물과 얼음처럼 완벽히 달라 보였다.

“제 성격이 워낙 털털해서 대본에 조금 거친 표현이나 줄임말이 있어도 둥글둥글 뱉어내요. 무슨 소리를 해도 다 괜찮다며 시원하게 넘어가죠.” 정애연 배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그런 대목을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대본에 ‘야, 네가 개냐?’라는 투박한 대사가 적혀 있으면 가만히 손을 들죠. 연출님, 저는 강아지로 바꾸면 안 될까요?”

김경란 배우의 말에 우린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정애연 배우가 말했다. “저는 연습할 때 장난을 좀 치는 편인데, 감독님이 엄마의 너무 털털한 면은 안 묻어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성향이 너무 달라서 재밌어요.”

김경란 배우의 각별한 무대 사랑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정도다. 여하튼 공연장에서의 그를 보면 뉴스 앵커, 예능 프로그램 MC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다.

“지금 공연 중인 연극 ‘기억의 숲’ 극장에서 스탠바이만 하면 빗자루를 손에 쥐어요. 제가 쓸기 시작하면 후배들이 기겁을 하며 뺏으려고 달려들지만, 절대 안 내주고 고집스럽게 바닥을 싹싹 청소하죠.”

“대체 연극이 뭐길래 방송 마이크 대신 빗자루를 쥐게 만드는 건가요?” “그게 참 운명 같아요. 저도 이런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가지고 한번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거든요. 그랬더니 대학 입학 원서를 내던 날까지 거슬러 올라가더라고요.”

고3 수험생 김경란은 본고사 대신 특차 지원을 결심했다. 담임 선생님은 여중, 여고를 나온 김경란에게 “무조건 여대를 가라, 이대가 최고다”라며 강요하다시피 이화여대 원서를 써주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은 열망이 있었어요. 거기는 실기 없이 이론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거든요.”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대학 원서를 내러 이화여대로 가던 중 김경란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 한양대 한 바퀴만 돌고 가면 안돼?” 차창 밖으로 한양대 교정을 눈에 담으면서 속마음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해서 김경란은 이화여대 철학과를 다니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부산 MBC에 합격하며 아나운서의 길을 걸었고, 주변에서는 천직을 찾았다며 난리였다. 하지만 정작 대학 시절 그의 유일한 해방구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1인극 ‘염쟁이 유씨’를 보고는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무대 위 단 한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객석의 관객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눈물짓게 만드는 광경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부터 무대라는 공간에 깊은 경외감을 품게 되었다. 언젠가는, 진짜 언젠가는 …

반드시 무대에 서겠다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결국 김경란은 2015년 최불암과 함께한 연극 ‘시유어겐’으로 무대 데뷔의 꿈을 이루게 된다. 당시 “연기를 어떻게 배워야 하냐”는 김경란의 질문에 대선배 최불암은 “연기를 뭘 배워, 그냥 무대 위에서 하는 거야”라고 했단다.

김경란은 그렇게, 관객의 귀에 내비게이션처럼 날아와 꽂히는 명확한 아나운서 발음 하나를 무기로 삼아 무작정 첫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김경란 배우처럼 대중에게 친숙한 유명인이 연극 무대에 서면 아무래도 원치 않은 해프닝들이 생기더라고요.” 연극에 처음 출연한 모 가수는 자신이 등장하자 객석 여기저기에서 “OOO이다”, “OOO 나왔다”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연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김경란 배우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앞세워 노골적인 홍보를 하지 않는 편이다 보니 관객들이 공연장에 입장할 때까지 김경란 출연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관객 분들이 캐스팅보드나 프로그램을 보며 ‘김경란 아나운서랑 진짜 똑같이 생기지 않았냐’고 수군거리세요. 심지어 ‘이름도 똑같다’며 신기해하다가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진짜 그 사람이 맞냐’고 묻기도 하시죠.” 우리 모두 깔깔깔 웃었다.

“온전한 배우로 무대에 서고 싶어서 활동명을 가명으로 바꿀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어요. 나름 인공지능까지 동원해 예쁜 예명을 지어놨는데, 결국 제 본명으로 서고 싶어서 밀어두었죠.” 김경란 배우가 말했다.

극 중 엄마 오미연은 5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초로기 알츠하이머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을 ‘오드리’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나는 이게 예전부터 궁금했다.

왜 하필 수많은 이름 중에 ‘오드리’일까. 주변 중년 여성들의 메신저 프로필이나 카카오톡 별명 같은 것을 보면 유독 오드리가 차고 넘친다. 그러고 보면 중년 남자들에게는 ‘오드리’ 만한 캐릭터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것은 조금 부럽다.

내 투정 섞인 말에 김경란 배우는 “제임스 딘?” 하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남자 쪽은 진짜 오드리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네요.”

“제임스 딘은 젊은 날 불꽃처럼 뜨겁게 타오르다 홀연히 사라진 청춘의 대명사죠. 반면 오드리 헵번은 아름다움이라는 가치가 세월을 이겨내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숭고한 상징 같아요.” 김경란 배우가 설명했다.

“오직 의술의 힘으로 얼굴 가죽을 팽팽하게 당겨서 얻는 미모가 아니죠. 오드리 헵번은 나이가 들어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도 온화한 미소와 선한 행동으로 삶의 품격을 보여주는 인간적인 매력을 갖고 있어요.”

“정애연 배우의 인생 롤모델도 오드리 헵번인가요?” “두말하면 잔소리죠. 젊은 시절 눈부셨던 대스타가 나이 들어서는 소외된 세계의 약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고 봉사하셨잖아요. 그 삶을 닮고 싶어요. 저 역시 그렇게 아름답게 나이 들고 싶네요.” 정애연 배우가 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왕 배우 얘기가 나온 김에 우리는 잠시 옆길로 새 알파치노, 덴젤 워싱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이야기했다. 가장 오래 대화에 올려진 인물은 양조위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주름이 생겨서도 깊고 아름다웠던 그의 눈빛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양조위는 우리 양씨 가문의 자랑이죠”라는 내 농담에 두 사람은 “푸헐” 하고 웃었다.

알츠하이머라는 가볍지 않은 소재를 다루지만, 연극은 축축하고 절망적인 슬픔에만 매몰돼 있지 않다. 이영국 감독은 고단하고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무대 위 공간에서만큼은 오드리가 최대한 예쁘고 품격 있게 살아 숨 쉬기를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공연 때마다 어김없이 짜고 매운 눈물바다로 변하고 만다.

“후반부로 가면 객석에서 눈물 콧물 훌쩍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잖아요. 무대 위 배우들에게도 그 소리가 들리나요?” 나는 궁금했다.

“그럼요. 다 들려요. 연기할 때 객석의 울음소리가 무대 위로 고스란히 밀려오거든요.” 정애연 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경란 배우는 “들리지만 영향을 받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관객은 무대의 가장 중요한 변수예요.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소리는 너무 잘 들리죠.”

지난 시즌 공연장에는 암전 시에도 객석을 비추는 적외선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고 한다. 이 덕분에 배우들은 무대 뒤에서 관객의 반응을 살필 수 있었다.

“무대가 암전된 상태에서 모니터를 보았는데, 관객 분들이 일제히 고개를 푹 숙이고 계시더라고요.” “오드리에게서 저마다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리 없이 통곡하시는 모습에 저희도 놀랐어요.” 김경란 배우의 목소리가 축축해졌다.

“이번 시즌 공연의 또 다른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는 새롭게 각색된 결말 부분이에요.” 정애연 배우가 분위기를 바꿨다.

“마지막 대목에서 모든 사람들이 웃고, 오드리도 웃는 결말로 가는데, 이것이 참 복합적인 느낌을 주더라고요. 과연 이 작품은 해피엔딩일까요?” 나는 초연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질문했다.

“그렇게 보기엔 애매한 구석이 없지 않고, 뭔가 애잔하기도 하고 말이죠.”

김경란 배우는 “이번 엔딩이 또 좀 달라졌다”고 했다. “초연 때 오드리를 심플하게 마무리했다면, 이번에는 가족이 함께 모여 화해하고 엄마를 좋아하는 정서가 중요해요. 오드리가 자신만의 세상으로 완전히 떠나버리는 영원한 이별로 느끼실지, 화해한 가족의 온전한 소통으로 받아들이실지, 해석은 전적으로 관객들의 몫이죠.”

“중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요.” 정애연 배우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각자가 상상하고 싶은 대로 가져갈 수 있는 열린 결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여운이 더 깊게 남을 겁니다.”

지난해 초연에서 오미연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김경란.
우리는 시시각각 쏟아지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도파민에 올리브처럼 흠뻑 절여지는 삭막한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눈을 자극하는 강렬한 가짜가 아니면 아예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팍팍하고 고단한 개인의 안위만 최우선으로 여기느라 정작 내 곁의 진짜 소중한 가족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살아가기 일쑤다. 김경란 배우는 “요즘은 강력한 도파민적인 자극이 아니면 반응을 잘 안 하잖아요”라고 현실을 짚었다.

“익숙한 얼굴 말고 낯선 일반인들이 나오는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즐겨 보곤 하죠. 저는 그보다는 정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마음에 주목하고 싶어요. 오드리 여사를 만나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이 인생의 전부인 한 여자가 살아내는 삶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거든요.”

“각자 개인만 중요하게 여기느라 주변을 차단하고 살아가죠. 이 연극은 내 가장 가까운 가족과 이웃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생각할 수 있는 공연이 될 거예요.” 김경란 배우의 목소리가 좀 더 신중해졌다. 정애연 배우가 덧붙였다.

“살아가는 데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젊은 나이에도 초로기 치매가 많이 온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먼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 모두의 아픈 이야기일 수 있죠.”

정애연 배우는 이어 “요즘 정서적인 면이 부족하다 보니, 젊은 친구들이 공황 같은 아픔을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고 주변과 공유하면서, 늦기 전에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두 오드리 여사와의 유쾌한 수다가 끝났다. 스마트폰의 녹음 종료 버튼을 눌렀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던 중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헤어지기 전에 꼭 이 말을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나는 잊지 않고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셋이 사진 한 장 찍을까요?”

지하 연습실 밖으로 걸어 나오니, 초여름의 투명하고 맑은 햇살이 이마 위로 부서져 내렸다.

누군가의 기억은 마모되어 가고, 그 기억의 빈터는 결국 곁에 남은 이들의 자리가 된다. 극 중 오드리가 세상에서 가장 예쁠 수 있었던 이유는, 부서지는 기억조차 따뜻하게 끌어안으려 했던 가족의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눈부시던 옛 시간. 훗날 마주할 나의 낯선 얼굴. 이 모든 생애의 자국이 오드리라는 이름으로 7월의 무대에 피어난다. 참으로 어여쁜 존재다. 말없이 포개 건네는 초대에 마음이 먼저 덜컹인다. 극장으로 향할 이유는 그것만으로, 됐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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