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없는 미로…젠지, 공포를 삼키다
끝없는 노란 복도, 탈출 불가능한 공간
불안·고립감 자극…존재론적 불안 키워

대부분의 공포 영화는 캄캄한 암흑이나 유혈이 낭자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2005년생 케인 파슨스 감독의 ‘백룸’은 기존 공포영화의 공식을 완전히 벗어났다. 형광등이 환하게 켜진 노란 방이 미로처럼 이어지며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을 공포의 축으로 삼아, 글로벌 젠지 세대(1997년 이후 출생)의 존재론적 공포를 포착했다는 점이 흥행 비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화는 할인 가구점을 운영하는 클라크와 심리치료사 메리의 상담으로 시작한다. 클라크는 외벌이로 아내의 로스쿨 학비를 부담하는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이후 아내에게 버림받은 사실을 털어놓으며 깊은 분노와 좌절을 드러낸다. 그러던 어느 날 클라크는 가게 지하에서 현실 세계와 연결되지 않는 통로를 발견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노란 복도 ‘백룸’으로 들어선다. 백룸으로 들어간 클라크가 점차 이성을 잃고 사라지는 가운데 메리는 완전히 변한 그와 마주하고 자신 역시 미로에 갇힌다.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은유는 노란 공간이라는 배경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대비되는 ‘흑인’ 클라크의 존재다. 누구보다 눈에 띄는 인물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노란 공간 속에서 빠르게 희미해지면서 결국 사라지고 만다. ‘백룸’은 이처럼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불안, 즉 존재론적 공포를 다룬 작품이다. 어디론가 미끄러지듯 이동하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는 감각이 공포의 본질로 작동한다. 현실의 벽을 통과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노클리핑’ 설정은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9와 4분의 3 승강장을 떠올리게 한다. 판타지의 문법을 차용한 점 역시 작품의 또 다른 매력 요인으로 꼽힌다. 제작비 1000만 달러(약 150억 원)를 투입한 이 영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제작비의 30배가 넘는 3억 182만 달러(약 4654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연승 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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