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찐독자'와 '텍스트힙 독자'

2025년 한국의 성인 독서율은 38.5%다. 전자책, 오디오북 독서를 합친 숫자다. 전 세계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다. 종이책 독서율은 28.8%에 불과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서전은 해마다 역대급 흥행 중이다. 지난 24일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도 연일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사전 티켓이 예매 시작 10초도 안 돼 동나고, 굿즈 확보를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도 벌어졌다. 28일까지 닷새 동안 15만명 정도가 찾을 예정이다.
오늘날 독서 문화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찐독자'는 여전히 읽고 쓰고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 그들은 몰입해 타인의 마음을 여행하는 걸 즐기고, 도서관과 서점을 찾는다. 책에 둘러싸여 자기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다. '텍스트힙 독자'는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났다. 이들도 책 읽기를 좋아하나, 동시에 책이란 물건에 담긴 문화적 가치와 오프라인 경험에도 열광한다. 이들은 한정판, 굿즈 등을 사들이고 사인회, 강연회, 도서전을 찾아다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 교류를 위해서다.
SNS에서 책은 자기 지성과 교양을 드러내는 강력한 자기표현 수단이 됐다. 텍스트힙 독자에게 도서전은 책을 사고파는 장터라기보다 책과 함께 자기 취향을 탐색하는 자아의 놀이터다. 개성 있는 출판사 부스들, 다양한 책들, 넘쳐나는 굿즈들, 다채로운 한정판들, 막 나온 신간들, 강연하는 저자들을 한 번에 감각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런 도서전에 '내가 와 있다'는 것만큼 텍스트힙 독자가 자기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건 없다.
찐독자가 책을 눈으로 즐긴다면, 텍스트힙 독자는 책을 몸으로 즐긴다. 둘 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으나, 그 사회적 행위는 다르다. 찐독자는 책 그 자체에 집중하나, 텍스트힙 독자는 책을 둘러싼 감각적 경험과 강렬한 유대감을 더 바란다. 이들이 굿즈만 즐길 뿐 책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냉소할 수도 있다. 현실은 다르다. 종이책 독서율이 30%가 안 되는 나라에서, 차라리 이들은 읽기도 좋아하고, 굿즈도 좋아하는 사람에 더 가깝다.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한길사 펴냄)에서 에밀 뒤르켐은 일상에서 분리된 시공간에 함께 모여 공동 의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집단적 열광'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SNS에 숱하게 올라오는 인증 사진들은 그 증거일 테다. 이런 열광은 개인을 사회적 존재로 거듭나게 하고, 모래알 같은 개체를 묶어 하나의 공동체로 바꾼다. 도서전 경험을 통해 텍스트힙 관람객은 독서 공동체에 소속된다. 이들을 '찐독자'로 바꾸는 건 전적으로 출판의 몫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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