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NASA와…빛의 예술로 기후위기 일깨워
NASA와 담수위기 체험 전시
AI문제도 체감할 수 있게끔
경계 넘나들며 번역하듯 작업
BTS군무 재해석 영상작품도
예술과 공학 접목하고 싶어서
英왕립예술학교서 KAIST로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면 될까. 강이연 KAIST 교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빛을 다루는 예술가이지만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 디지털 기술을 다루지만 평소에는 디지털 기기를 멀리한다. 수십 페이지짜리 논문도 전부 인쇄해서 읽는다. 설치예술가이지만 직함은 공대 교수다.
그의 작품 장르를 표현하는 용어는 없다. 미디어 아트, 설치예술, 아트&테크놀로지 등 어떤 말로도 그의 작품을 담아내지 못한다. 강 교수는 빔 프로젝터를 공간에 투영해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을 만든다. 벽면은 물론 천장부터 바닥까지 모두 영상을 투영하고 소리를 입혀 관객은 작품 속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작품에 정해진 경계도 없다. 강 교수는 "벽면은 물론 전시실 전체, 심지어 건물을 모두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든다"고 했다. 경계의 해체, 체험과 몰입은 강 교수의 작품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다.
'선을 넘는 발상'에 전 세계가 매료됐다. 2020년 방탄소년단(BTS)과 협업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가득 채우더니, 2023년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구글과 협업했다. NASA의 위성 정보를 토대로 담수 위기를 사람들이 직접 실감하도록 만들었다. 복잡한 숫자와 과학을 예술로 번역한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인 학자 최초로 TED 메인 무대에 연사로 올랐다. 강 교수는 "인공지능(AI)과 기후위기는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문제라서 해결이 어려운 것"이라며 "예술을 통해 복잡한 문제를 사람들의 경험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강 교수는 "예술은 공적인 행위이고 일종의 설득 행위"라는 지론을 폈다. 그는 "환경운동가들이 일부러 불쾌감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는 시대착오적"이라며 "훨씬 재밌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기후와 AI가 가져올 위험을 전달할 수 있다"고 했다.
가령 그가 2024년 전시한 '라이트 아키텍처'는 전시장 전체를 가상의 인공신경망으로 꾸몄다. 거대한 공간으로 위압감을 만들고 그 안을 다니는 사람이 두려움과 당혹감을 느끼도록 설계했다. 그는 "AI의 블랙박스는 인간을 데이터 조각으로 만들 수도 있는 두려운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과학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 강 교수가 생각하는 자신의 역할이다. 과학기술은 발전할수록 점점 우리의 감각을 떠난다. 강 교수는 "우주나 기후, AI 같은 첨단과학은 놀랍지만 더 이상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며 "언제부턴가 과학의 겉모습만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게 두렵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편리하게 쓰는 AI 서비스 이면에는 데이터센터의 소음에 시달리는 주민이 있는 것처럼 과학은 결국 감각의 문제로 돌아온다"며 "경계를 허물고 과학을 경험으로 번역하는 게 내 일"이라고 했다.
경계를 해체하는 경험. 강 교수도 그 덕을 봤다. 3살 때부터 화가를 꿈꿨던 그는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미대 회화과에 진학했다. 20대의 그는 누구보다 그림을 잘 그렸으나, 그리고 싶은 게 없었다. 2차원 평면이라는 구속, 제한된 크기와 거기서 나오는 신체의 속박. 강 교수는 "그때는 그림이 지긋지긋했고 아예 미술을 포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실의에 빠진 강 교수를 구원한 건 기술이었다. 디지털 기술, 특히 빔 프로젝터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을 "빛이 쫙 뻗어나가는 모습을 볼 때 나의 신체에 대한 속박과 제한이 한 번에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고 떠올렸다. 기술로 경계를 넘어서자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마구 생겼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수식이 오간다. 빔 프로젝터의 위치와 벽면과의 각도, 영상의 시간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KAIST에 온 것도 같은 이유다. 강 교수는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2024년 KAIST 산업디자인학과를 택했다. 그 전까지 그의 인생에 공학은 없었다. 그는 "구글, NASA와 협업하면서 그들의 언어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며 "내가 과학자들 속에 들어가 스며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원석 기자 / 사진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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