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법, 트럼프에 ‘임시보호 이민자’ 수십만명 추방 길 열어줬다

김원철 기자 2026. 6. 26. 13:4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 땅을 밟지 않은 상태인 망명 신청자들도
멕시코 쪽 국경서 돌려보낼 수 있다는 판결도
미국 연방대법원이 아이티와 시리아 출신 이주민 수십만명의 임시보호지위(TPS)를 박탈할 수 있도록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준 25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이민자 권익 옹호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임시보호지위(TPS) 이민자 수십만명을 추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대법원은 미국 땅을 밟지 않은 망명 신청자를 멕시코 쪽 국경에서 돌려보낼 수 있다는 판결도 내놨다.

연방대법원은 25일(현지시각) 아이티와 시리아에 대한 임시보호지위 종료 결정은 원칙적으로 법원의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6 대 3으로 판결했다. 보수 성향 대법관 6명이 다수 의견에 섰고,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반대했다.

이번 판결로 트럼프 행정부는 아이티인 35만명과 시리아인 6100여명의 임시보호지위를 종료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임시보호지위가 만료되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잃고 추방 대상이 될 수 있다.

임시보호지위는 전쟁이나 자연재해, 정치적 혼란 등으로 본국 귀환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외국인이 미국에서 일정 기간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미 의회가 1990년 도입했으며, 국토안보부 장관이 국가별 상황을 검토해 통상 6∼18개월 단위로 지정하거나 연장할 수 있다.

미국은 2010년 대지진 뒤 아이티를, 2012년 내전 발발 뒤 시리아를 임시보호지위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재집권했을 당시 17개국 출신 약 130만명이 임시보호지위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가운데 13개국에 대한 보호조치 종료를 추진해왔다.

아이티·시리아 출신 이민자들은 국토안보부가 국무부 등 관계기관과 본국 상황을 실질적으로 협의하지 않는 등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다. 하급심 법원들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임시보호지위 종료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다수 의견을 작성한 보수성향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임시보호지위 관련 법률이 행정부의 지정·연장·종료 결정을 법원이 심사하는 것을 명백히 제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티 관련 발언 등을 근거로 임시보호지위 종료가 인종적 편견에서 비롯됐다는 원고 쪽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진보 성향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반대 의견에서 법원이 행정부의 최종적인 정책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더라도, 법률이 요구한 절차를 준수했는지는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티 이민자 관련 발언들이 임시보호지위 종료 결정에 인종적 동기가 작용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대법원은 이날 또 다른 이민 관련 사건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이민법은 미국에 “도착한” 외국인에게 망명 신청 기회를 보장한다. 쟁점은 미국-멕시코 국경의 공식 입국장 앞까지 왔지만, 미 국경 당국이 통과를 막아 아직 미국 땅을 밟지 못한 사람도 미국에 “도착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였다.

대법원은 미국 땅을 실제로 밟지 않고 멕시코 쪽에 머는 사람은 미국에 “도착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미국 정부가 이들을 입국시키거나 망명 신청을 접수할 의무가 없다고 6 대 3으로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미국 정부는 망명 신청자에게 법적 권리가 생기는 시점 자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국경 관리 요원이 공식 입국장으로 향하는 사람을 국경선 앞에서 막으면, 그 사람은 미국에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에 망명 신청 절차에도 접근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방식은 ‘미터링’(metering)으로 불린다. 국경 당국이 시설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하루에 받아들이는 망명 신청자 수를 제한하고, 나머지 사람은 멕시코에서 기다리게 하는 정책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6년 처음 시행했고,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확대됐다가 조 바이든 행정부가 2021년 폐지했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반대 의견에서 “더 많은 사람이 숨지고, 더 많은 사람이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으려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악관은 대법원 판결을 환영했다. 애비게일 잭슨 백악관 대변인은 “엄청난 승리”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오랫동안 미국인을 괴롭혀온 이민 제도의 심각한 악용을 법에 따라 끝내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잔혹하고 비인간적 결정”이라며 “임시보호지위는 집에 돌아가는 것이 안전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트럼프와 대법원이 잔혹함과 혼란, 공포를 택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시민권 금지 행정명령 등 굵직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도 남아 있다. 대법원이 다음주 여름 휴회에 들어가기 전에 판결 선고를 마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