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알고 있다 왜 남한산이 아닌 '남한산성'인지 [초보기자의 거침없이 하이킹]

남한산은 왠지 원래 없던 산 같다. 다시 말해 남한산은 북한산이나 관악산처럼 서울을 둘러싼 큰 산인데도, 그들만큼 귀에 익지 않다. 남한산에 '성'자를 붙여 '남한산성' 네 글자를 완성해야 비로소 어색하지 않다. 남한산이라는 이름이 낯선 건 산보다 산성의 이미지가 더 소비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한산은 등산 자체보다 역사 탐방에 무게가 실린다. 베스트셀러 소설도, 블록버스터 영화도 거기에 일조했다.
이것이 나쁘다거나 문제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뿌리와 잎사귀가 뒤바뀐 것 같았다. 산이 먼저이고 산성이 나중인데, 산성에 묻혀 산 자체는 배경처럼 남아 있었다. 산만을 바라보고 싶었다. 산성을 걷어내고 산성이 없는 풍경을 그렸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고,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라는 걸 남한산을 걸으며 깨달았다. 남한산과 남한산성은 불가결한 존재였다. 남한산성이 있기에 남한산이 있는 것 또한 맞는 말이었다.

남한산의 존재가 희미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남한산 주봉(522m)이 산성 바깥에 있다. 포곡식 산성이란 게 분지를 둘러싼 능선을 따라 축조되기에, 주봉이 분지 가운데 있을 순 없더라도 능선 어느 한 곳에는 있어야 제 위상을 지닐 텐데, 사람 발길이 뜸한 동문과 북문 사이 1시 방향에 있다. 대신에 서부능선의 청량산(497m)이 정상 역할을 한다. 이번 산행은 청량산을 기점으로 서문·남문·북문 방향으로 둥글게 걷는 반나절 코스이다.
수도권 전철 5호선은 강동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 갈래는 하남으로 가고, 한 갈래는 거여·마천 평야를 가로질러 남한산 앞에 멈춘다. 500여 년 전 청나라 대군이 47일간 주둔하던 이 일대는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돼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바로 아래는 백제 시조 온조가 도읍을 정한 위례성에서 이름을 딴 신도시가 들어섰다. 하나의 지역 안에서도 '서울(송파)위례', '성남위례', '하남위례'를 나눌 만큼 시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거기 누구 없소" 적막 속 착각에 들다
좁은 공사판 비계 아래 임시 보도를 따라 마천역에서 산행기점인 성골마을까지 걷는다. 성골마을에 이르자 정겨운 골목 풍경이 펼쳐진다. 시내버스가 차고지에서 낮잠을 자고, 동네 영감님들이 느티나무 아래 앉아 이를 쑤신다. 빛바랜 간판의 식당과 등산용품점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는 연고 없는 향수에 젖다가도, 비 온 뒤 말라가는 웅덩이처럼 이곳 또한 곧 사라질 운명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든다.

성골마을에서 서문전망대까지는 조용한 숲길이다. 초록의 숲이 터널을 이루고 볕에 익지 않은 촉촉한 황토가 카펫을 펼친다. 길이 좋다는 건 누구나 느끼는지 어떤 사람들은 맨발로 걷는다. 도시에선 야만 취급받던 맨발도 산에서는 부러움을 산다. 어떤 때는 딱딱한 등산화를 벗고 싶은 충동이 든다. 수만 장의 낙엽이 쌓이고 썩은 흙에 발바닥이 닿는 순간, 땅의 전류가 온 몸을 돌고 돌 것임을 경험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주말인데도 사람이 귀하다. 때로는 너무 조용해 적막감마저 든다. 두 시간 가까이 그렇게 걷다 보면 현실 감각은 흐려지고 상상에 빠져든다. 비탈의 흙을 파면 총을 맞고 스러진 조선 병사들의 뼈 무더기가 나올 것 같고, 박물관 유리관 속 홀로그램처럼 수풀 뒤에서 누군가 걸어 나와 말을 건넬 것 같다. 간간이 코를 찌르는 비릿한 밤나무꽃 냄새에 정신을 번쩍 차린다. 소설을 괜히 읽고 온 걸까, 패배한 역사의 현장에 오니 괜스레 마음이 들뜨기보단 가라앉는다.
청나라 대군은 어디 가고 하얀 담뱃갑만
암문을 통해 남한산성에 입성한다. 좌우 폭 1m 남짓한 이 정육면의 터널은 '숨어 있는 문' 답게 허리를 숙여야 통과할 수 있다. 사대문처럼 문루를 세우지 않고 성돌을 몇 개를 빼 뚫은 출입구로, 평소에는 돌로 막아 두었다고 한다. 암문으로 몰래 빠져나가 청군의 동태를 살피던 조선 척후병처럼 몸을 낮춰 지난다. 암문을 빠져나오자 햇살이 비춘다. 사람도 부쩍 많아진다. 100m 거리에 서문이 있다.

동서남북 4개의 대문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단연 서문이다. 유일하게 전망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문에는 전망대가 없지만 서문에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선 롯데타워가 보인다. 롯데타워 전망대에는 없는 감동이 남한산성 서문전망대에는 있다.
여장(성 위에 낮게 쌓은 담)에 가까워지기 전까지 풍경은 조용하다. 비탈진 땅을 한 걸음씩 내딛어 여장에 닿는 순간, 풍경이 팡파르를 터뜨린다. 감동은 바로 그 몇 발자국을 걷는 시간에 있다. 여장은 근경으로 남고, 풍경은 원경으로 뻗는다. 그 어떤 산 정상에서 이런 멋을 누릴 수 있을까. 인조의 펜스는 흉내낼 수 없는 문화유산의 멋이다. 남한산보다 사방으로 트인 조망을 가진 산은 많지만, 이 프레임을 대체할 만한 곳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송파구가 내려다보인다. 거여·마천 일대 평야를 눈으로 휘젓다가 인조가 청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린 삼전도가 어딨는지도 찾아본다. 하얀 담뱃갑 같은 아파트 천지다. 두 갈래였던 한강은 합쳐지고 커져서 옛날 모습을 짐작하기 어렵다.

서문에서 남문 방향으로 걷다 보면 청량산 정상에 수어장대라는 2층 누각이 나온다. 정상석은 따로 없다. 지휘와 관측을 위한 이 군사 건물은 석축 기단과 허리춤까지 높게 올린 팔각형의 주춧돌이 일품이다. 성 안 건물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며, 다섯 개의 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서늘한 마루에 누워 햇볕을 피하고 있다.
청량산 정상부터 남문까지는 임도를 버리고 성벽길을 따라 걷는다. 선글라스를 끼고 브로슈어로 부채질 하는 관광객이 빠지면 몇 없는 등산객만 남는다. 토요일 오후임을 감안하면 남한산은 서울 근교치고 등산객이 정말 적은 편이다.
산성은 방향을 미리 정하지 않는다. 갈 곳을 예상하지 않는다.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땅의 굴곡을 따라 정처 없이 흐른다. 달아나는 산성을 좇아보지만 성벽의 끝은 잡히지 않는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져 있다. 산성이 옆으로 휘어 잘록한 옆태를 드러낼 때면 아름다움보다는 슬픔이 밀려온다. 이 성을 쌓은 사람들은 어디가고, 이토록 옹골지게 쌓은 돌만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까.
이 많은 돌을 어떻게 쌓았으며, 얼마나 많은 인부를 부렸을까를 헤아리면 아득해진다. 다만 남한산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병자호란을 앞두고 증축을 거쳐 완성된 모습을 갖췄을 뿐, 백제 혹은 신라의 고성을 기반으로 축조됐다고 한다.
소나무를 지킨 건 팔할이 산성이다
남문에 닿았다. 사대문 중 가장 큰 문답게, 인조는 남문으로 처음 남한산성에 들어왔다. 점심을 먹기 위해 동문까지 가지 않고 산성리로 빠진다. 남한산 산행의 장점은 이렇듯 수시로 마을로 내려와 밥을 먹거나 쉬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동서남북 어느 문에서도 30분 안이면 마을에 닿는다. 분지 지형이라 성 안에는 식당과 찻집이 많고, 산에서 내려온 물이 흘러 예로부터 마을이 형성됐다. 광주와 동문으로 통하고, 남문 방향으로 터널이 뚫려 성남과도 통한다. 두 방향 모두 버스가 다니는데, 주말이면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선다.
산성 안에서는 임금의 임시 거처인 행궁을 가볍게 둘러보기 좋다. 역사문화관이나 세계유산센터 남한산성의 가치도 톺아볼 수 있다. 중심부 로터리에서 12시 방향으로 약 10분 걸으면 북문이 나온다. 이 문을 열고 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한 300여 명은 전멸했다. 남한산성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였다.
북문에서 다시 서문까지 성벽길을 따라 걷는다. 그제야 지나쳤던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 근교에 이 같은 100년생 소나무 군락은 귀하다. 남한산성에 소나무가 많은 건 100년 가까이 지속된 금림조합의 노력 덕분이다. 20세기 초 민둥산이 당연하던 시절, 마을 사람들은 금림조합을 만들어 소나무를 지켰다. 소나무는 남한산이 아닌 '남한산성'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지켜졌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소나무를 바라본다. 녀석, 참 잘생겼구나. 소나무에게 고마웠다. 그저 있어줘서. 남한산성에 있어줘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아까 지나온 조용한 숲길이다. 비록 남한산의 반밖에 걷지 못했지만, 그래서 산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반은 다음을 위해 남겨둔 셈 치면 되니까.



함께 가볼 만한 곳
행궁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곳이다. 인조는 이곳에 47일간 머물렀으며, 청군이 쏜 대포알에 맞아 기둥이 부서지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후 방치되다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멸실됐고, 1999년 1차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2012년 복원을 마쳤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이며, 경기도민은 무료다.
남한산성역사문화관
남한산성의 역사와 미래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알리고자 2024년 개관한 박물관 겸 복합문화공간이다. 크지 않아 가볍게 둘러보기 좋다. 화장실이 깔끔해 산행 중 들르기에도 좋다. 관람료는 무료다. 남문주차장과 붙어 있다.

산행길잡이
마천동 버스 종점과 '환영합니다 위례' 라고 쓰인 왕복 8차선 굴다리를 지나면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인 성골마을에서 남한산성 서문까지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초반에 등산로가 여러 갈래로 흩어지니 주의가 필요하다.
하나는 청운사와 푸른산장 식당에서 출발하는 코스다. 최단코스답게 경사가 있고 길이 곧은 편이며 계단이 많다. 한 시간 안쪽이면 서문에 닿는다. 또 하나는 성불사에서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숲길을 돌아 연주봉옹성을 지나는 코스다. 최단코스보다 거리는 길지만 사람이 적고 숲길이 좋아 호젓한 산행을 할 수 있다. 한 시간 반 정도면 서문에 닿는다. 서문에는 전망대가 있어 사람이 많다. 수어장대가 있는 청량산 정상보다 실질적인 정상 역할을 한다. 나무데크로 조성한 전망대보다 성벽 위 여장 너머로 바라보는 전경이 더 좋다.
서문~남문, 서문~북문 구간은 임도와 성벽길 중에 선택해 걸을 수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돼 산행 거리에 비해 의외로 체력 소모가 있다. 비교하면 서문~남문 구간이 조망이 열려 있고, 서문~북문 구간은 조망이 갇혀 있는 편이다. 서문~북문 구간에는 금림조합에 의해 보존된 소나무가 많다.
성 안에는 맛집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식당이 즐비하다. 백숙을 비롯한 한식집이 주를 이루며, 카페와 찻집도 많아 쉬어가기 좋다.
교통
성남 방면의 산성터널과 광주 방면의 산성대로를 통해 차량으로 남한산성에 들어올 수 있다. 로타리주차장, 남문주차장, 중앙주차장 등 공영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고, 요금은 종일권 기준 평일 3,000원, 주말 5,000원 정도다.
공휴일은 남한산성 내 도로와 주차장이 혼잡해 버스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성남 방면(8호선 산성역·남한산성역)으로 52번, 9(9-1)번, 광주 방면(경강선 경기광주역)으로 15-1번 버스가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서울에서 접근한다면 5호선 종점인 마천역에서 산행 기점인 성골마을까지 도보로 약 15분 걸린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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