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약은 찌질하고 초라하고 파괴적인 선택” 방에 갇혔던 아들, 오늘은 아버지와 달린다 [세상&]

김도윤 2026. 6. 26.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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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예방-회복단체 이끄는 남경필 전 지사
“마약은 전염병…가족이 가장 강한 면역력”
약물법정 도입·전문병원 확대 필요성 강조
남경필 마약예방치유단체 사단법인 은구(NGU) 대표가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사단법인 은구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이준영 수습기자] “주성이한테 항상 그래요. 혹시라도 마약을 하고 싶은 갈망이 생기면 나한테 얘기해줘.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는 아니라고, 나는 늘 네 곁에 있을 거라고요.”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5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한때 대권 유력 주자로도 분류됐던 그가 요새 가장 두려워하는 건 마약을 끊고 회복 중인 장남 주성씨와 대화가 끊기는 일이다. ‘마약이 떠오르면 꼭 얘기해’, 라고 남 전 지사는 아들에게 반복해서 말한다. 정치에 매달려있던 과거엔 결코 쉽게 꺼내지 못했을 말이다. 당시엔 아들을 홀로 두었던 시간이 많았다.

“그래도 아들과 대화가 끊어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마약이라는 시련을 견디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장남이) 누구보다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죠.”

2018년 정계 은퇴를 선언한 남 전 지사는 마약 예방·치유단체 은구(NGU·Never Give Up)를 세웠다. 26일 마약퇴치의 날을 앞두고 헤럴드경제는 경기도 성남 은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가정 안에서 부모와 자식이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마약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면역력”이라고 강조했다.

남경필 마약예방치유단체 사단법인 은구(NGU) 대표가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악명을 끊고 선한 일을 해라”

남 전 지사의 장남은 마약 관련 혐의로 두 차례 붙잡혀 기소됐다. 2017년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 등으로 이듬해 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2023년 9월엔 대마 흡입과 필로폰 투약 등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두 번째 체포 때 아들을 신고한 사람은 아빠인 남 전 지사였다.

그는 “장남의 마약 중독이라는 위기가 닥쳤을 때 오히려 우리 가족은 더 단단해졌다”며 “정치를 할 때는 수백만 명의 삶을 바꾸겠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마약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면 그보다 소중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성아, 너 아빠가 정치할 때 뭐가 제일 어려웠는지 알아? 인지도가 안 올라가는 거야. 국회의원을 다섯 번 하고 대통령 선거에 나가도 사람들이 잘 몰라. 그런데 너는 대한민국에서 남경필 아들인 걸 모르는 사람이 있냐.”
남 전 지사는 아들이 수감된 후 구치소 면회를 하면서 아들과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그는 “너는 지금 악명으로 유명해졌지만 마약을 끊고 세상을 위해 선한 일을 하기 시작하면 그 악명이 선한 인지도로 바뀔 수 있다. 그러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남 전 지사는 마약 경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낙인이 아닌 지지와 연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부분의 가족은 마약 중독 사실을 숨기려 한다” 며 “그 고통을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말고 주변과 나눠야 한다. 함께 나누면 조금은 가벼워진다”고 했다.

남경필 마약예방치유단체 사단법인 은구(NGU) 대표가 2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마약은 쿨하지 않아, 초라하고 파괴적 선택”

남 전 지사는 마약을 단순한 범죄가 아닌 ‘전염병 같은 질병’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중독이 처음부터 돈을 주고 마약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친구나 선배, 믿었던 사람의 권유와 호기심, 때로는 속임수로 시작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첫 마약은 범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질병이 확산하는 과정”이라며 “코로나19가 퍼졌을 때 국가와 사회가 방역에 나섰던 것처럼 마약 역시 예방과 치료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남 전 지사가 가장 강조한 말도 “마약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는 점이었다.

그는 “제가 가장 답답하게 생각하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건 내 일이 아니다’라고 여기는 것”이라며 “일부 철없는 아이들이나 특정 가정의 문제로 치부하다 보니 치료 시설과 제도 마련에도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우리 아이도, 누구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며 “마약을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정치도, 제도도 움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약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마약이 쿨한(멋진) 문화처럼 소비되는 순간 이미 아이들은 위험에 노출된 것”이라며 “마약은 가장 멋없고 지질하고, 초라하고 파괴적인 선택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경필 마약예방치유단체 사단법인 은구(NGU) 대표가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마약의 늪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아들을 둔 남 전 지사의 꿈은, 국립대병원에 마약 전문 치료병원을 만드는 일이다.

남 전 지사는 “전문 병원과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처벌만 하는 것은 둑이 무너진 상태에서 손으로 물을 막고 있는 것과 같다”며 “ 궁극적으론 국립대병원에 마약 전문 치료병원을 만들어 그곳에서 의사를 양성하고 마약 치료의 모범 사례를 만든 뒤 전국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약 문제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갖는 정치인이 있다면 당을 가리지 않고 선거운동이라도 돕고 싶다. 그만큼 지금은 처벌뿐 아니라 치료와 회복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들 성적, 외모 앞세우는 가치관 바꿔야”

남 전 지사는 인터뷰 말미에 학부모들을 향한 메시지도 남겼다. 그는 학벌지상주의와 외모지상주의가 우리 사회가 만든 괴물이라고 봤다.

그는 “좋은 대학에 가면 성공하고 외모가 뛰어나면 인생이 풀릴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며 “심지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치료제나 다이어트 약물 오남용까지 용인하는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 역시 아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미국과 중국으로 유학을 보냈다”며 “부모부터 아이들의 행복보다 학벌과 성적, 외모를 앞세우는 가치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답했다.

남 전 지사는 오는 27일 마약과 ‘헤어질 결심’을 한 단약 회복자들과 함께하는 마라톤 대회를 연다. 그가 달리기에 주목하게 된 계기도 아들의 변화 때문이었다. 출소하고 나서 한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던 아들은 어느 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동굴에서 나오더니 제일 먼저 밥을 먹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 뛰기 시작하더라고요.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 마음을 회복시키는 최고의 보약이었어요. 마약이 주는 가짜 만족이 아니라 삶이 주는 진짜 기쁨을 더 많은 회복자들이 다시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약 예방·치유단체 은구(NGU·Never Give Up)는 유엔(UN)이 지정한 6월 26일 세계 마약퇴치의 날을 기념해 오는 6월 27일(토) 오전 9시 전국이 함께 참여하는 러닝 캠페인을 개최한다. [은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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