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에 집이 잠기면…“피해 80%는 개인 부담” [취재후][장마가 온다]

신방실 2026. 6. 2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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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장마철을 앞두고 KBS 기후위기 대응팀은 [장마가 온다] 연속 보도를 시작합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위협적인 장마 양상과 우려되는 피해, 향후 전망까지. 생생한 현장취재에 기상전문기자의 깊이 있는 분석을 더해 꼼꼼하게 짚어보겠습니다.


장마철을 앞두고 그간 호우 피해를 겪었던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예상과 달리 시민들은 막대한 피해 복구 비용과 손실 대부분을 사실상 개인이 떠안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호우 피해를 입으면 실제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민간 보험사가 최초로 공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호우 피해 보장의 '민낯'이 처음 드러났습니다.

[연관 기사] [장마가 온다] “무너지고 잠겨도…” 호우 피해 80% ‘보장 못 받아’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90073

■ 물에 잠긴 방앗간…멈춰 선 일상

지난해 7월 중순 경남 합천에는 나흘 동안 1년 강수량의 절반이 넘는 700mm의 큰비가 내렸습니다. 전통시장인 삼가시장도 침수 피해를 입었는데요. 특히 곡물을 볶고 기름을 짜는 방앗간은 고가의 기계가 물에 잠기며 피해가 컸습니다.

삼가시장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박인호 씨는 이후 기계를 모두 교체했습니다. 참기름을 짜는 기계는 침수된 차량과 비슷해 물에 잠기면 수리해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침수된 곡물이며 전기 배선 수리비, 2주간 영업 중단 손실까지 떠안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시장 상인들이 받은 수해 위로금은 상가당 최대 천만 원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피해가 컸던 박 씨는 개인 돈에 대출까지 끌어 써야 했는데요. 수해를 입은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일상을 회복하기까지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합천 삼가시장에서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박인호 씨.


■호우 피해 '1조 원' 육박하는데 사후 보상은 '찔끔'

지난 10년간(2013~2024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경제적 손실을 불러온 자연재난은 압도적으로 '호우'(61%)였습니다. 태풍(23%)과 대설(10%)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문제는 최근 변덕스러운 장마와 극한 호우가 잦아지면서 연간 1조 원에 육박할 정도로 피해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호우 피해 지원은 얼마나 될까요?

행안부가 공개한 2023년 개정된 기준에 따르면 주택 전파는 최대 1억 3천만 원, 침수 주택의 경우 600만 원입니다. 박 씨 같은 소상공인은 영업장 침수 피해에 최대 700만 원, 여기에 지자체에서 주는 재해구호기금 200만 원 정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기존보다 상향된 금액이라고 하지만, 치솟는 물가를 생각하면 피해 '보상'과 완전한 일상 '회복'보다는 '긴급' 생계·구호 지원금 성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법령상 '재난지원금'은 재난으로 인한 이재민 구호와 복구를 위한 지원이고, 실제 지원 항목도 생계비·구호비·주거비처럼 당장 필요한 비용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시간당 100mm를 넘나드는 극한 호우가 잦아지고 피해 규모도 급증하고 있는데, 손실에 대한 보상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개인이나 기업이 떠안게 되는 짐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5년간 호우 피해, 평균 82%는 '보장 공백'

호우 피해가 급증할수록, 호우가 불러올 경제적 손실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럴 때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보장'(Protection)입니다.

재난지원금 같은 '보상'(Compensation)이 이미 발생한 손해를 메워주는 사후적 행위라면, 보장은 피해를 입더라도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해 놓는 사전적 대응을 뜻합니다. 풍수해 보험 같은 기후 금융제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국내 재난 대응은 사후 복구와 보상 위주로 짜여있습니다. 충분하지 않은 보상 탓에 피해의 상당 부분이 고스란히 개인의 몫으로 남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서울대 기후테크센터가 지난 5년간(2020~2024년) 발생한 호우 피해에 대해 '보장 공백'(protection gap, 보장 격차)을 분석해 봤더니 '평균 8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장 공백은 "재난으로 발생한 총 경제적 손실액과 실제 보험이나 공적 지원을 통해 보전받은 금액 사이의 차이"를 말합니다. 즉 우리나라 호우 피해의 82%는 그 어떤 제도적 안전망으로도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사후에 지급되는 재난지원금은 이 거대한 격차를 메우기에 극히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보장 '사각지대'에 놓인 호우 취약계층

호우가 어느 지역에 집중됐는지에 따라 보장 공백의 양상도 달라졌습니다.

과거 호우 사례 경제적 손실과 보장 공백. 자료 : 서울대 기후테크센터


2021년 7월 남부지방에 긴 비가 이어지며 홍수와 산사태 등으로 3,295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보험으로 채워지지 않은 보장 공백은 '98%'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정수종 서울대 기후테크센터장(환경대학원 교수)은 "농촌 지역은 보험 가입률이 낮고 보험금 상승에 대한 부담으로 보험 청구도 줄면서 보장 공백이 100% 가까이 치솟았다."라고 말했습니다.

2022년 8월에는 수도권 등 중부지방에 극한 호우가 쏟아졌습니다. 서울에 시간당 140mm가 넘는 폭우가 내리며 도시 전체를 마비시켰는데요. 경제적 손실은 8,261억 원으로 2021년 남부지방 사례보다 컸지만, 보장 공백은 오히려 '60%'로 줄었습니다.

자산이 풍부한 대기업이나 부유층은 보험을 통해 기후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회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세한 농민이나 중소기업, 소상공인, 반지하 주택 거주자 등 취약계층일수록 보장 사각지대가 훨씬 크다는 뜻인데요. 정수종 교수는 "재난 피해의 경제적 보장조차 지역이나 형편에 따라 양극화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정수종 서울대 기후테크센터장(환경대학원 교수)


■풍수해 보험 도입 18년 됐는데…전국 가입률 '30%대'

이 같은 결과는 풍수해 보험의 초라한 성적표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풍수해 보험은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매미' 이후 수조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2008년 본격 도입됐습니다. 재난지원금 급증이라는 정부의 재정적 부담을 줄이고 국민 스스로 재해에 대비하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8년째인 지금도 전국 가입률은 30%대에 머물러있고 일부 농어촌 지역에선 한 자릿수로 뚝 떨어집니다.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설마 나에게?"하는 안전불감증도 원인으로 꼽힙니다.

정부가 절반 이상 보험료를 지원해 준다고 해도 매달 나가는 돈에, 1년마다 돌아오는 갱신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재난지원금만 바라보고 있기엔 호우 피해 규모가 너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재난 대응, '사후 보상'에서 '사전 대비'로

이번 연구를 통해 과거 큰 피해를 불러온 호우 당시 우리 사회의 보장 공백이 처음 확인됐습니다. 지금까지는 손실 규모 산정과 보험 데이터 확보가 어려워 정확한 분석이 불가능했지만 민간 보험사가 관련 자료를 최초로 공개하면서 그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해법은 없을까요? 일단 수해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자동차보험처럼 풍수해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자는 주장이 나옵니다. 미국은 홍수 다발 지역에선 의무적으로 보험 가입을 하게 하고, 프랑스는 재산 보험을 들 때 자연재해에 대한 담보가 들어가게 설계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업이나 소상공인의 경우 건물 침수나 파손뿐 아니라 '영업 중단'(BI, Business Interruption) 손실에 대한 대비가 시급합니다.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 때 냉천이 범람하며 포스코의 공장 가동이 멈췄습니다. 135일 만에 시설이 정상화됐지만, 영업 중단으로 인한 거대한 손실은 기존 보험으로 메워지지 못했습니다.

만약 AI 데이터센터가 침수될 경우 수만 대의 고가 서버와 반도체 장비가 손상돼 영업 중단이 수개월 이상 장기화될 수 있습니다. 손실에 미리 대비하지 않는다면 데이터 기반의 금융 시스템과 교통망, 병원 의료 시스템 등 사회 경제망이 통째로 멈춰 서며 천문학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보험금 청구와 피해 증명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생략한 '지수형 보험'(parametric insurance)도 유력한 대안입니다. 실제 피해액을 따지는 대신, 누적 강수량이나 호우특보 등 미리 정한 기상·재난 지표가 기준을 넘으면 즉시 자동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호우가 잦아들고 물이 빠져나가면 재난이 모두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새로운 재난 국면이 시작됩니다. 논밭이 물에 잠기고, 상점이 문을 닫고 공장의 운영이 중단되는 모든 경제적 손실이 물가 상승과 재정적 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사회 전체에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재난 대응 체계도 '사후 보상'에서 '사전 보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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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방실 기자 (weez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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