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습상속의 함정…패륜 자녀 막아도 손자가 온다
[상속 비밀노트]

A씨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두 딸을 키우며 살았다. 큰딸 B씨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장사를 하며 힘들게 살면서도 어머니인 A씨의 생계를 위해 매달 300만 원의 용돈을 드렸다. 반면 작은딸 C씨는 배우자 X씨와 결혼해 아들 Y씨를 낳고 여유 있게 살면서도 A씨를 전혀 부양하지 않았다.
치매 어머니 폭행한 딸, ‘패륜상속인’ 해당
그런데 A씨가 치매에 걸리자 C씨는 A씨를 폭행하는 등 학대하고 어머니의 계좌에서 몰래 돈을 빼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A씨가 사망하자 A씨가 남긴 아파트 한 채를 두고 B씨와 C씨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 B씨는 C씨의 패륜행위를 문제 삼으며 가정법원에 C씨에 대한 상속권 상실 청구를 하려고 한다.

2024년 4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유류분 제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따라 2026년 3월 17일 민법이 개정됐다. 개정 민법에 따르면 상속인 중에 기여가 있는 사람은 유류분 소송에서 자신의 기여분을 주장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피상속인에게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이른바 ‘패륜상속인’에게는 상속권을 아예 상실시킬 수도 있게 됐다. 이것이 바로 상속권 상실 청구 제도다.

상속권 상실 청구 제도는 원래 2024년 9월 20일 처음 도입됐다. 가수 구하라 씨가 사망한 후 구 씨의 어머니가 갑자기 나타나 상속인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자 부모의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이런 경우까지 상속권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그로 인해 상속권 상실 청구 제도가 도입됐다.
당시 필자도 법무부 상속법 개정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상속권 상실 청구 제도 마련에 힘을 보태기는 했지만 당시의 입법은 불완전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자녀에게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양의무를 저버린 부모에 대해서만 상속권을 상실시키는 것으로 입법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번 민법 개정을 통해 상속권 상실 대상이 확대됐다. 이제는 부모에게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양의무를 저버린 자녀의 경우에도 상속권을 상실시킬 수 있게 됐다.
상속권을 상실시킬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피상속인 본인이 생전에 미리 상속권 상실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공증유언으로만 해야 한다. 둘째, 피상속인이 상속권 상실의 의사 표시를 하지 못하고 사망한 경우 다른 상속인이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을 청구하는 것이다.
상속권 상실 청구의 맹점
상속권 상실 청구 제도는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판례도 없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양의무를 위반해야만 상속권이 상실되는지는 불확실한 상태다. 앞으로 판례가 누적되면서 그 내용이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상속권 상실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 심지어 법률전문가들조차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상속권 상실과 대습상속의 관계다. 예를 들어 앞 사례에서 C씨의 상속권이 상실된다고 하더라도 A씨의 재산을 B씨가 모두 취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C씨의 상속권이 상실되면 C씨의 아들인 Y씨가 대습상속인으로서 C씨의 몫을 상속받게 되기 때문이다.

민법은 이 경우 배우자의 대습상속은 허용하지 않지만 직계비속의 대습상속은 허용했다. 부모의 잘못으로 인해 그 자녀까지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고의 일환이다. 따라서 패륜상속인에게 자녀가 있을 때는 상속권 상실 청구를 하는 것이 큰 실익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