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뭘 해주나” 외면받는 총학생회
서울 대학교 곳곳서
점점 사라지는 총학

지난 10일 오후 6시 서울대 관악캠퍼스 아크로광장.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기 위해 서울대 학생 20여 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이의빈씨가 마이크를 잡고 시국 선언에 나섰다. 그런데 이씨의 직함은 ‘총학생회장’이 아닌 ‘서울대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 의장’이었다. 서울대는 지난해 10월 총학생회장 선거 입후보자가 없어 올해 2월 재선거를 추진했지만 이때도 후보자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했다. 같은 시각, 고려대 서울캠퍼스 민주광장에서 시국 선언문을 낭독한 이지민씨는 자기를 ‘비상대책위원장’이라고 소개했다. 고려대는 지난 3월 총학생회 재선거에 한 후보가 출마했지만, 교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 누적으로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런데 추가 입후보자가 없어 고려대도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하고 비대위 체제로 운영 중이다.
지난 10일 ‘투표지 부족 사태 규탄’ 시국 선언에 참여한 전국 18개 대학 가운데 5개 대학이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해 단과대 연석회의나 비대위 명의로 선언에 참여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숙명여대 등이다. 지난 5일 시국 선언을 발표한 동국대, 국민대도 총학생회가 구성돼 있지 않다. 총학생회장 입후보자가 없거나 투표율 미달로 총학생회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과거와 달리 대학생 사회에서 총학생회 역할이 줄어든 점이 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학 총학생회는 각종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며 사회 변화를 이끌었다. 총학생회장 출신이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적잖았다. 한국 정치권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586그룹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 총학생회의 주된 역할은 학교 축제 준비나 학생 복지 관련 사업, 등록금 인상 관련 논의 등에 그친다.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드는 점도 학생들이 출마를 꺼리는 이유로 꼽힌다. 이지민 고려대 비대위원장은 “선거본부 유니폼, 포스터, 플래카드, 유인물 등을 만드는 데만 평균 200만~300만원 정도가 든다”며 “수십 명에 이르는 선거본부 참여 학생들의 식사까지 챙기느라 1000만원 정도를 쓴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국민대, 숙명여대가 입후보자가 없어 총학생회장을 뽑지 못한 경우다.
“총학생회가 우리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학생들에게 퍼진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취업이나 격차, 젠더 등 청년 세대가 당면한 문제 해결에 총학생회가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며 학생 간에 유대감이 약해지고 각자도생 분위기가 확산된 것이 총학생회 쇠퇴를 불러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학생 투표율 저조로 총학생회장 선출이 무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동국대는 최근 몇 년간 입후보자가 없어 총학생회장 선거를 치르지 못하다가 올 들어 두 후보자가 출마해 지난 3월 총학생회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투표율(43.5%)이 선거 유효 기준인 50%를 넘기지 못해 개표함을 열지도 못했다. 올해 한양대 총학생회장 선거도 투표율 50%를 넘기지 못해 무산됐다. 경희대 서울캠퍼스는 지난 4월 총학생회장 선거를 치렀는데 이틀간 투표를 연장한 끝에 간신히 투표율 50%를 넘겼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총학생회가 더 이상 사회적으로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면서 역할을 잃게 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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