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시스템이 빼앗은 피해자 목소리, 스토킹 피해자 된 기자의 기록으로 되찾다

윤유경 기자 2026. 6. 25.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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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책 '탁월한 피해자' 저자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
스토킹 피해자가 된 기자, 6년 간의 7번 소송 과정 기록
'피해자다움' 강요하는 구조 속 '재피해자화' 되는 피해자
피해자 보호보다 피고인 방어권을 중시하는 사법 시스템
치유 과정 된 기록, '당사자'로서 서사의 소유권 얻게 해줘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 미디어오늘이 지난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만난 곽아람 조선일보 기자. 사진=윤유경 기자.

'기록'은 서사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글을 쓴 뒤에야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통과의례와 같았다. 무슬림 극단주의에게 피습 테러를 당한 살만 루슈디가 그의 저서 <나이프>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일어난 일을 소유하고, 그 사건을 책임지고 내 것으로 만들어 단순한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고 쓴 것처럼, 책을 쓰는 일은 서사에 대한 소유권을 얻는 과정이었다. 지속된 스토킹 피해로 6년 간 일곱 번의 소송을 진행해야 했던 곽아람 조선일보 기자는 그렇게 지난달 기나긴 '투쟁기'를 기록한 책 <탁월한 피해자>를 세상에 내놨다.

서사의 당사자가 되는 건 피해자인 그에게 가장 어렵고도 절실한 일이었다. 사적 보복을 막고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면서, 피해자의 주체성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민사 재판에서는 원고(피해자)와 피고가 당사자이지만, 형사재판의 당사자는 국가(검사)와 피고인이다. '숨은 당사자'가 되어버린 피해자는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 피고인은 방어권 행사라는 이유로 피해자가 법원에 제출한 증거와 엄벌탄원서까지도 열람할 수 있었지만, 피해자에게 공소장을 제외한 다른 재판 기록 열람이 허가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가해자가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했는지, 판결문을 보내줄 수 있는지 등 기본적인 사항을 물어볼 때마다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라서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감옥에 수감된 가해자가 음란물을 동봉한 협박 편지를 보낼 때도 “수용자의 권리”라는 이유로 검열하지 않아 1년5개월을 가해자의 편지에 시달렸다.

겹겹이 쌓인 분노와 억울함은 연료가 됐다. 절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곽 기자는 사법 시스템의 문제를 고발하는 '정교한 르포르타주(reportage) 취재' 중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사건을 겪으며 매일 기록해왔기 때문에 초고는 충분했다. 낮에는 기사를 쓰고, 밤에는 법률 서면을 쓰고, 주말에는 책을 썼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만난 곽 기자는 “피해자에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재판을 겪어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 내 당사자성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했고 주변으로 밀려났기에 이 서사를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책을 쓴 이유를 설명했다.

누군가는 피해 자료를 다시 보며 글을 쓰는 과정이 고통스러웠을 거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기록은 그에게 곧 치유의 과정이었다. 내 이야기 안에서는 내가 주체성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물론 세밀한 자료들을 다시 보는 작업은 고통스러웠고 울면서 쓴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구성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즐겁기도 했고, '마침내 책이 나오니까 두고보자'는 카타르시스가 있었다”며 “피해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일상의 회복이다. 이건 내 인생에서 딛고 넘어가야 하는 단계이고, 완전히 잊을 수는 없겠지만 일상을 회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 쓰고, 끝내고, 내 인생을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그의 말에선 일상을 되찾고자 하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 책 '탁월한 피해자'(저자 곽아람, 출판 생각의힘). 사진 출처=생각의힘.

'탁월한 피해자'라는 말

일면식도 없는 1967년생 남성의 스토킹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 가해자는 본인의 유튜브 채널과 블로그, 일베 게시판에 곽 기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가해자는 곽 기자가 쓴 신문 기사, 회사 업무로 진행한 팟캐스트, 팟캐스트 홍보차 출연한 회사 유튜브를 통해 그를 알게 돼 범행 타깃으로 삼았다. 곽 기자가 유튜브 측에 신고해 본인의 계정이 삭제되자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1000만 원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시작했다. 곽 기자와 동료들 기사에 댓글을 남겨 '곽 기자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데 내가 다른 여성들에게 관심을 보이자 질투심에 무고했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렸다.

징역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 갇혀 있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그와 동료들에게 음란물을 동봉한 편지를 보내는 방법으로 스토킹을 지속했다. 서신검열대상으로 지정돼 편지를 보낼 수 없게 되자 허위사실로 그를 무고해 고소장을 보내는 방식으로 스토킹했다. 가해자는 자신이 소지한 도끼와 낫 등 흉기를 영상으로 찍어 올린 적도 있었다. 2021년 6월 친구로부터 처음 피해 사실을 인지한 곽 기자는 같은 해 11월 첫 고소를 시작으로 총 일곱 번의 소송을 거쳤다.

통신매체이용음란, 모욕, 스토킹, 특가법상 보복협박,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 갖가지 혐의로 1차, 2차, 5차 사건에서 각각 징역 1년, 2년6개월, 1년의 형이 확정된 가해자는 현재 복역 중이다. 지난 2일 3·4차가 병합된 사건 1심에선 스토킹, 명예훼손, 모욕 등으로 징역 3년과 3년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이 선고됐다. 무고와 스토킹 등으로 고소한 6차 사건은 오는 26일 첫 공판기일을 앞두고 있다.

<탁월한 피해자>라는 책 제목은 그가 소송을 진행하며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수차례 고소를 하고, 직접 법률 서면을 작성하며 '대처를 잘하는' 그의 모습에 감탄한 지인은 어느날 그에게 '탁월하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했지만 '탁월한 피해자'라는 말은 그에게도 중의적인 의미였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증거가 명확히 남아있는 피해를 당해 법리를 다툴 일도 거의 없는 '완벽한 피해자'이고, 기자라는 직업에 법조인을 포함한 넓은 인맥이 있고,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은 그는 스스로도 본인을 '탁월한 피해자'라고 여겼다. 여기엔 끝까지 버텨 스토킹 범죄에 대한 좋은 판례를 쌓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피해자가 사용해야 할 자원을 빼앗아선 안 된다는 죄책감이 뒤따랐다.

▲ 책 '탁월한 피해자'(저자 곽아람, 출판 생각의힘). 사진 출처=생각의힘.

“나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피해자들은 어떤 지옥을 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책임감이 있었다. 스토킹처벌법이 생긴 지 얼마 안돼서 판례가 많이 없는데, 법은 판례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양형이 높아지고 케이스가 많이 쌓이면 다음 양형도 높아질 수 있다. 다른 피해자들이 따라올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에 조건이 좋은 피해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고통을 버티기 위해 의미를 부여하며 정신 승리를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자원을 활용하면 누군가를 새치기하게 될 것이란 죄책감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탁월하기 때문에 피해자다움의 전형에서 어긋나 손해 보는 지점도 있었다. 약하고 돈 없는 피해자는 무시당하고, 무언가를 갖고 있는 피해자면 '피해자답지 않은데 왜 잘해줘야 돼'라는 소리를 듣는 경계에 있었다.”

소송을 진행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기자처럼 굴지 말라'는 말이었다. 법원에, 수사기관에 기자처럼 따지지 말라는 의미다. 곽 기자의 사건을 다룬 기사를 스크랩해 고소장에 첨부하려 하자 담당 변호사가 '나는 기자이고, 특별한 피해자니까 특별히 집중하라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선 이런 걸 싫어한다'며 삭제한 일도 있었고, '소송 여러 번 하면 수사기관에서 널 예민하게 본다'고 조언한 지인도 있었다. 사법 시스템은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을 강요했다. 그 틀에서 어긋나면 수사기관이든 법원이든 변호사든 피해자답지 않다며 배척했다. 결국 조금이라도 유리한 결과를 위해 그는 '피해자 노릇'을 해야만 했다.

“납득이 안 가고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피해자이기도 하고, 기자이기도 하다. 나는 잘못한 게 없고 국가는 범죄 피해를 입은 사람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그 의무를 다하라고 말하면서 왜 당당하면 안되는 건가. 주변에서 다 (법정에 가면) 울라고 하는데, 싫고 치욕스러웠다. 너무 힘들기 때문에 눈만 감았다 뜨면 울 수 있다. 그런데 공적인 장소에서 국가에 나의 권리를 요구하는 데 왜 울면서 잘 보여야 하나.”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시스템 안에서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벌하기 위해 회복 불가능한 상태를 자처하며 '재피해자화'된다. 피해자의 회복은 감경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힘들고 괴로운 상태를 유지한다. 2022년 새벽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과 성폭행을 당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씨는 회복 불가능 과정에서 괴로워하는 곽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해자를 벌하기 위해 스스로를 벌하지 마세요.”

피해자 보호보다 피고인 방어권 중시하는 시스템

곽 기자는 일곱 번의 소송을 겪으며 목도한 사법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당사자로서 세세하게 추적해 고발했다. 많은 일의 근본 원인은 피해자의 보호보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더 중시하는 시스템 체계였다.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보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것이 낫다'(영국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는 이념에서 피해자의 권리는 잊혔다. 대표적으로 하나의 행위가 여러 법에 저촉되는 경우 복수의 죄를 경합시켜 가장 중한 죄의 형으로 처벌하는 '상상적 경합'과, 판결이 확정된 죄와 그 전에 범한 죄가 함께 재판될 때 한 번에 재판받았을 수도 있음을 전제로 형평을 고려해 선고하는 '후단 경합'이 있다. 이때문에 가해자는 스토킹처벌법, 명예훼손, 모욕, 보복협박 등의 혐의가 인정됐음에도 2차 사건에서 고작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곽 기자는 책에서 이 문제에 대해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면 열 명 이상의 피해자가 생겨날 수 있을 텐데, 그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피해자 보호라는 가치와 피고인 방어권이라는 가치가 충돌할 때 왜 항상 피해자를 희생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무시해도 되는 존재이고, 피고인 방어권 관련해 형사소송법상 문제가 되면 귀찮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6월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한국여성기자협회 포럼W '위협 받는 기자들 어떻게 지킬 것인가'현장에서 발언하는 곽아람 조선일보 기자. 사진=한국여성기자협회.

2021년부터 시작된 '검수완박', 즉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검경수사권 조정도 예상치 못한 피해를 남겼다. 검찰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접수사를 할 수 없게 되면서 경찰 수사에 과부하가 걸려 수사가 지연되기 시작한 것이다. 곽 기자의 사건 가해자의 죄명이 많을수록 시간이 지나면서 수차례 지연을 겪어야 했다. 그는 책에서 “정치인들의 이해득실 때문에 수사 인력으로 길러진 2000명의 검사들을 왜 민생 수사에서도 손을 떼게 해 피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느냐”고 질타했다.

“당사자가 되어보니 내 사건을 경찰이 한 번, 검찰이 한 번 봐준다는 게 의미가 있다. 한 사람이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시각도 전달되는 게 중요하다. 또 경찰은 법률 전문가가 아니다. 법리를 다투는 사건이 너무 많고 특히 디지털 성범죄는 생긴 지 얼마 안 돼 법리 적용이 어려운데, 경찰이 대충 보고 종결해버리면 내 인생은 경찰의 손에 끝장 나버린다. 지금까지는 검찰이 당사자들을 위한 무료 형사, 변호사 역할을 해왔는데 그 과정을 없애버렸다. 변호사가 없는 사람은 소송하지 말라는 얘기다. 국선변호사가 있다고 해도 성범죄, 스토킹 등에 한정돼 있다. 최근에야 강력범죄 피해자까지 지원해 주는 걸로 확대됐다. 이 문제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관심이 없다. 한 개인이 아무리 탁월하다고 해도 시스템이 망가지면 다 고생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책 제목도 어느 정도 위정자들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스토킹 범죄에 대한 가벼운 양형이다. 현재 스토킹 범죄의 양형은 최대 3년, 흉기로 협박한 경우엔 5년이다. 가해자가 1년 더 수감되면, 곽 기자는 '1년 더 살 수 있겠구나'라며 안심해야 했다. 낮은 형량은 스토킹에 대한 가벼운 사회적 인식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대구에서는 피해 여성을 스토킹하다 신고 당한 가해자가 두달 뒤 그 여성을 보복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스토킹에 대해선 사람들이 '예민하게 군다', '인기 많아서 좋은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한다. 수사기관도 법원도 스토킹 범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근데 스토킹은 안 끝난다. 스토킹은 결국 피해자가 죽으면 끝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법을 따로 만든 것처럼, 법을 더 세밀하게 만들어 젠더폭력으로서 스토킹을 다르게 다뤄야 한다. 가해자의 양형을 높이는 게 제일 중요하다.” 곽 기자가 힘주어 말했다.

연대의 손길로 버텨낸 시간들

지난 6년의 시간 동안 곽 기자에게 고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곁에는 먼저 손을 내밀어준 수많은 연대자가 있었다. 처음 겪는 피해에 허우적대고 있을 때, N번방 문제를 처음 공론화시킨 반성착취 활동가 '추적단불꽃'은 그가 피해 사실을 적은 SNS 글을 보고 자진해서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추적단불꽃은 가해자의 유튜브 화면을 캡쳐해 증거를 수집하고 유튜브 내용을 바탕으로 가해자의 신원을 특정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씨와는 그의 투쟁기를 기록한 책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출간 인터뷰를 하며 인연을 맺었다. 반성폭력 활동가인 '연대자 D', 서울 디지털성범죄 안심지원센터의 피해지원관, 진심으로 사건을 맡아 준 변호사들, 공판 모니터링을 맡아 준 여성단체, 그에겐 때마다 귀인이 나타났다.

동료인 여성 언론인들도 있었다. “살면서 한 번 이상은 다 이런 경험을 겪기 때문에 매체가 달라도 주변 여성 언론인들이 '내 일처럼 느껴진다'며 도와주고 보도해줬다. 너무 고마우면서도 여성이기 때문에 이런 연대를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소송 과정은 언론의 역할을 뼈저리게 느낀 경험이기도 했다. 곽 기자의 말은 듣지 않던 수사기관이 타사 저연차 기자가 전화했더니 태도가 바뀔 때는 회의감을 느꼈다. 그래도 억울한 피해자들이 시스템에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을 때 절박한 마음으로 찾는 곳이 언론이었다.

곽 기자가 신고한 가해자의 유튜브 계정에는 본인 외에도 수많은 여성 언론인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게시물들이 있었다. 가해자는 감옥에서도 곽 기자와 동료들에게 편지를 보내 '나가서 스토킹 하기 좋을 것 같다'며 다른 여성 언론인의 인적 사항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특히 플랫폼이 다변화되면서 유튜브 등을 통해 더 많은 기자들의 신상이 노출되고 있지만, 보호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언론사는 드물다. '기자니까 견뎌야지'라는 말은 더 이상 허용돼선 안 되는 말이다.

▲ 6월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한국여성기자협회 포럼W '위협 받는 기자들 어떻게 지킬 것인가'현장. 사진=한국여성기자협회.

곽 기자 역시 사각지대에 놓인 언론인들의 보호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며 “꼭 다뤄달라”고 말했다. “기자들이 노출되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공격도 많아지는데, 언론사는, 사회는 보호 시스템을 갖추고 있나. 온라인 환경에서 기자에 대한 공격은 차원이 달라졌고 너무나 정교해졌다. 나는 가해자가 한 명이지만 가해자가 불특정 다수인 경우도 많다. 피해를 당하는 기자들은 너무 많은데 실태 파악이 전혀 안 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나 한국여성기자협회에선 법률 지원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 하나의 연대를 이뤄 온라인 괴롭힘 문제에 대해 매체와 상관없이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언론인을 제대로 보호하는 법안도 만들어야 한다.” 지난 17일 진행된 한국여성기자협회 포럼에서도 그는 각 언론사에 사내 신고 및 2차 가해 금지 가이드라인 마련, 2차 가해가 이뤄졌을 때 조사 및 인사평가 반영 체계 등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화부 기자로서 열두 권의 책을 집필해 온 베테랑 작가인 그에게도 이번 책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는 농담처럼 “기자생활 24년 만에 처음으로 기자다운 책을 썼다”고 말했지만, <탁월한 피해자>는 그에게 직업적인 글쓰기 과정이었다는 의미도 있다. “쓰겠다는 마음이 나의 불행한 사건에서 시작됐다는 건 안타깝지만, 작가로서 외연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다른 언론인을 포함해 많은 분들이 연대와 지지를 해주셨다. 시스템 하에서 피해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는 측면에서 책을 쓰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곽아람 기자의 용기 있는 기록이 또 하나의 연대의 길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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