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따뜻한 사람들이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 ‘콩나물의 노래'
평범한 이웃의 삶 비추며 지역 무대가 지켜온 공동체의 가치 돌아봐

연극을 통해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극단 창작극회가 다시 한 번 무대 위에 온기를 올렸다.
창작극회 제187회 정기공연 ‘콩나물의 노래’ 첫 공연이 지난 24일 오후 7시 30분 창작소극장에서 열렸다. 일본 극작가 오가와 미레이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이번 공연은 1980년대 전주를 배경으로, 콩나물 가게를 꾸려가는 한 가족의 일상을 통해 가족과 이웃, 노동과 생업,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담담하게 비춘다.
작품의 중심에는 일찍 아내를 잃고 어린 아들과 두 동생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만수가 있다. 만수는 콩나물 가게 ‘박가네’를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결혼을 앞둔 여동생은 예민해져 있고, 남동생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한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만수는 가업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작품은 그 과정을 따라가며 ‘무엇이 삶에서 끝내 남는 가치인가’를 조용히 묻는다.
‘콩나물의 노래’가 주목하는 것은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이 아니다. 밤낮없이 손이 가는 고된 노동, 산업화와 자동화의 흐름 속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생업의 현실, 그럼에도 쉽게 놓을 수 없는 가족과 이웃의 정 같은 평범한 삶의 결이 무대의 중심을 이룬다. 작품은 노동의 고단함과 생계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사람을 붙들어주는 공동체의 힘을 끝내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콩나물국밥의 도시’ 전주에서 상연된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지역적 울림을 전한다. 무대 위 ‘박가네’ 콩나물 가게는 단순한 생업의 공간을 넘어, 시대 변화 앞에서 위태롭게 버텨내는 지역의 삶을 상징하는 장소처럼 읽힌다. 공장식 자동화로 운영난을 겪는 박가네의 사정은 오늘날 지역 예술계가 마주한 현실과도 겹쳐 보인다. 수도권 중심의 문화 환경과 일자리 문제 속에서 청년 예술인들이 지역을 떠나는 상황, 그리고 그 속에서도 지역의 무대를 지키려는 극단의 분투가 작품의 서사와 묘하게 맞물린다.

그런 점에서 ‘콩나물의 노래’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지역에서 예술을 지속하는 이들의 이야기로도 읽힌다. 만수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콩나물 가게를 지키려 애쓰듯, 창작극회 역시 지역의 삶과 동시대의 현실,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을 꾸준히 무대화하며 지역 연극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기 때문이다.
극을 떠받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다. 운영난에 놓인 박가네 곁에는 라면가게 아가씨 미자와 새로 들어온 직원 일한, 특유의 밝은 기운으로 주변을 북돋우는 병주 같은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만수의 삶 곁을 지킨다.
이처럼 힘겨운 현실을 버티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사람들’은 공연이 열린 창작소극장에도 있었다. 1990년 문을 연 50석 남짓의 낡은 소극장은 평일 저녁 공연이었음에도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로 활기를 띠었다. 무대에는 중견 배우부터 젊은 배우들까지 고루 올라 호흡을 맞췄고, 오래된 소극장 공간은 여전히 지역 공연예술의 거점으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줬다.
작은 골목 끝 콩나물 가게에서 묵묵히 삶을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오랜시간 지역의 무대를 지켜온 창작극회를 겹쳐 보여낸 이번 공연은 오는 28일까지 창작소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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