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들] 학폭 1호 처분 ‘서면사과’, 사전처분 단계로 패러다임 바꿔야

김수빈 2026. 6. 2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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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장에서 정의하는 학교폭력은 형법상 범죄 유무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폭넓고 미묘한 개념이다.

이와 같은 서면사과의 문제점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폭력 조치에 사전처분으로 서면사과를 두는 것을 생각해본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사안이 학교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1차적으로 판단하되, 현행 1호 처분, 서면사과를 종국적인 처벌이 아닌 별도의 '사전 처분(사전 조정 단계)' 개념으로 분리 운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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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장에서 정의하는 학교폭력은 형법상 범죄 유무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폭넓고 미묘한 개념이다. 또래 집단 내의 은근한 따돌림, 명예훼손 조항을 절묘하게 피해 가며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SNS상의 이른바 '저격글' 등도 엄연히 학교폭력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교육 현장과 법조계 주변에서는 과거라면 충분히 학교폭력으로 인정되었을 법한 사안을 단순한 '학생 간 갈등 상황'으로 포섭하여 학폭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종종 관찰된다. 얼핏 보면 학교폭력에 처벌이 느슨해진 것 같지만, 사정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행위의 경중과 상관없이 일단 학교폭력으로 인정되는 순간 가해 학생에게 쏟아지는 불이익과 사회적 낙인이 지나치게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의 개념은 넓지만 처벌의 무게는 1호 처분이라고 하더라도 일률적으로 무겁기 때문에 심의위원회에서도 부득이하게 '학폭 아님(갈등 상황)'으로 끌고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1호 처분인 서면사과 조치를 사전처분이라는 개념으로 재편성하는 것을 고려하여야 한다. 현재는 심의 과정을 거쳐 학교폭력이 인정되면 가해 학생에게는 그 경중에 따라 1호(서면사과)부터 9호(퇴학)까지의 조치가 내려진다. 한편,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학교폭력은 인정되기 쉽고, 가장 가벼운 조치인 1호 처분, 서면사과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막대한 비난과 사회적 낙인이 뒤따른다.

물론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화해와 합의'라는 사회적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개입하여 어느 정도 강제성을 띤 화해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아이들 스스로 갈등을 매끄럽게 봉합하기란 쉽지 않기에, 어른들의 적절한 훈육과 지도는 교육적으로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서면사과 제도는 이러한 교육적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는 협박성 구조에 불과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사과를 기한 내에 이행하지 않으면 생활기록부에 기재되어 입시에 불이익을 준다는 압박 속에서, 과연 진정성 있는 반성이 태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아이들은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영혼 없는 반성문을 써낼 뿐이다.

이것이 과거 교실에서 교사가 싸운 학생 둘을 교단 앞으로 불러내 억지로 악수하게 하던 구시대적 '강제 화해'와 무엇이 다른가 싶다. 차라리 과거의 강제 화해 방법은 교사의 재량과 권위를 나타내는 하나의 모습이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심의위원회가 사과를 강제하면서 교사는 교사대로 권위를 잃어버렸다. 게다가 현재 서면사과 조치에는 분량이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조차 없다. 만약 가해 학생이 "나는 사과하고 싶지 않지만 대한민국의 법과 시스템이 하라고 해서 형식적으로 미안하다고 쓴다"라고 적어 보낸다면, 이는 조치를 이행한 것인가, 불이행한 것인가. 피해 학생에게는 모욕적인 가짜 사과가 될 것이고, 가해 학생에게는 진심 없는 거짓을 적도록 종용하는 꼴이다.

이와 같은 서면사과의 문제점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폭력 조치에 사전처분으로 서면사과를 두는 것을 생각해본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사안이 학교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1차적으로 판단하되, 현행 1호 처분, 서면사과를 종국적인 처벌이 아닌 별도의 '사전 처분(사전 조정 단계)' 개념으로 분리 운영하는 것이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시시비비를 가려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생활기록부 기재를 무기로 협박하고 있는바, 이는 교육적 목적 달성이 아니라 마치 사법기관처럼 징벌적 구조를 창설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1호 처분, 서면사과를 사전 처분으로 두고, 이와 동시에 전문적인 화해·중재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을 고려하여야 한다. 또한 사전처분으로 종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하고, 더 나아가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수 있으나 화해 사안이라고 판단하여 불처분하는 방안도 고려하여야 한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는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관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김수빈 법률사무소 강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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