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000원 마감 세일 용돈 들고 달려간 MZ들…‘성수보다 동묘’ 핫플 지각변동 [세상&]
구제시장·LP 가게·완구 거리 인기
흥정보다는 가격표…상권도 변화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윤승현 수습기자] “흥정이 잘 안될 줄은 몰랐어요. 3000원짜리는 아예 안 깎아주시더라고요.”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묘 구제시장에는 교복 차림의 10대 여학생 두 명이 옷더미를 뒤적이며 연신 가격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상·하의와 신발까지 10벌 가량을 산 이들의 손에는 이미 비닐봉지 세 개가 들려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노점상들이 모여 형성된 동묘 구제시장. 중고품과 골동품을 사고파는 벼룩시장이던 이곳이 달라지고 있다. 좌판에서 상인과 손님이 침 튀기며 가격을 흥정하던 풍경은 사라졌다. 대신 가격표를 붙여 정찰제가 자리 잡았다. 2030 젊은 손님들도 시장 곳곳을 누빈다. 소셜미디어(SNS)에선 이른바 동묘에서 꼭 들러야 할 이른바 ‘동묘 코스’도 공유된다.

실제 22일과 23일 양일간 동묘시장에는 종강한 대학생과 중·고등학생, 데이트를 즐기는 20대 커플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 가득 담긴 옷들과 말랑이 장난감, 1000원짜리 토스트가 들려 있었다.
구제시장에는 이탈리아 통가죽 벨트·시계·레코드판(LP)·중고 카메라·자전거 안장·네덜란드 맥주·컴퓨터·캐리어·헌 책까지 온갖 물건이 빼곡히 진열돼 있었다. 상인들은 “요즘은 예전처럼 흥정을 많이 해주지는 않는다”면서도 “오후 5시가 넘으면 남은 옷을 정리하면서 가격을 크게 낮춘다”고 말했다. 실제 22일 오후 5시 이후 일부 좌판에서는 3000~5000원짜리 의류가 1000원까지 내려가며 손님들이 몰렸다.
동묘의 새로운 인기 품목으로 떠오른 시계 가판대에는 젊은 손님들이 몰렸다. 1만원짜리 액세서리용 시계부터 50만원 정도인 세이코 정품 시계까지 다양한 제품이 진열돼 있었다. 상인은 “1000원짜리는 없다”며 “여기는 새 제품이 아니라 누군가 쓰던 물건들”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동묘를 찾는 젊은 방문객들은 미리 짜 온 ‘동묘 코스’를 따라 움직인다. SNS에 공유하는 동선을 참고해 구제시장·레코드 가게·중고 카메라점 등을 둘러본 뒤 창신동 완구거리까지 이동하는 식이다.
대학생 황희신(22) 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동묘 가는 법이나 코스를 찾아보고 왔다”며 “처음 오면 헷갈리는데 동선이 잘 정리돼 있어 그대로 따라왔다”고 말했다.
20대 이모 씨도 “처음 오는 곳이라 흥정 문화가 부담스러웠는데 가격표가 붙어 있는 곳이 많아 편했다”며 “시계와 액세서리를 샀고 완구 거리까지 둘러볼 예정”이라고 했다.
고등학생 김나연(17) 양과 박소희(16) 양은 “고양시에 살아서 동묘는 처음 와봤다”며 “용돈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해 옷을 많이 샀다. 아이템 획득은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우리 또래가 많아 놀랐다”고 설명했다.
이날은 평일 오전인데도 젊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문을 열지 않은 중고 디지털카메라 판매장 앞에서는 손님이 직접 사장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도 보였다. 대학생 김모(20) 씨는 “종묘 디카로 검색해 찾아왔다”며 “인터넷 직구가 더 저렴할 수는 있지만 직접 만져보고 살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동묘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1000원 토스트와 2000원 떡볶이 가게에도 MZ세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평일 오후 늦은 시간에도 토스트 가게 앞에는 줄이 늘어서 있었고 토스트를 손에 든 채 시장을 돌아다니는 젊은 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떡볶이집 사장 정승환씨는 “2~3년 전에도 손님은 많았지만 1년 사이 ‘성수보다 동묘’라는 밈(Meme)이 퍼지면서 더 많아졌다”며 “연예인이 방문한 뒤 그 코스를 따라 찾아오는 팬들도 많다”고 말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동묘는) 노년층 중심의 벼룩시장에 서로 다른 콘텐츠가 결합하면서 젊은 세대와 외국인까지 찾는 상권으로 확장됐다”고 평가했다.
인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동묘 구제시장 일대 상가 임대료는 최근 수년간 완만히 오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 D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3년 전과 비교하면 임대료가 약 10% 올랐다”며 “상인이 권리금을 받고 나간 뒤 월세 150만원이던 점포가 250만원으로 오른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인근 B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상가 공실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자리가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길 건너 창신동 완구거리도 젊은 층이 몰리는 또 다른 명소다. 거리 곳곳에는 4000~7000원대 말랑이와 슬라임 제품들이 진열돼 있었고 젊은 여성 방문객들은 직접 만져보며 제품을 골랐다. 한 가게에는 ‘차가운 제품이 소리가 더 좋다’며 냉장 보관 제품을 안내하는 문구도 붙어 있었다.
이곳 상인 60대 신현숙 씨는 “예전엔 문구점 사장들이 물건을 떼러 오는 도매시장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5월 초부터 유튜버들이 잇따라 방문하면서 손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점포가 변화의 수혜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중고 가전제품 매장을 운영하는 최모 씨는 “젊은 손님들은 가게에 진열한 TV를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간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 자본 등이 진출하면서 기존 상인들을 몰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우려하기도 한다.
선종필 대표는 “동묘만의 색깔인 벼룩시장과 노포 문화가 사라질 경우 오히려 상권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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