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호남·AI는 동남권…TK “새로운 것도 없고 있던 것도 잃는다” 우려 확산

이재명 정부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국가 첨단산업을 권역별로 육성하는 방향을 잇달아 제시하면서 대구·경북(TK) 지역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지역에서는 새로운 국가 프로젝트에서 제외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산업의 성장 기회마저 다른 권역으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최근 반도체를 호남권, 피지컬 AI를 동남권 중심으로 육성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여기에 혁신도시 시즌2를 통한 공공기관 추가 이전 논의까지 본격화되면서 TK에서는 “국가 미래산업 지도를 펼쳐봐도 대구·경북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역 경제계는 특히 반도체와 AI 분야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구미는 국내 최대 전자산업단지를 기반으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이 집적된 지역이다. 그러나 정부가 호남을 새로운 반도체 전략거점으로 육성하는 방향을 제시하면서 지역에서는 사실상 국가 반도체 산업의 중심축이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미 수백조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국가 전략거점까지 호남으로 결정될 경우 기업들이 다시 구미에 대규모 전공정 생산시설을 구축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지역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업은 국가가 조성하는 산업생태계를 따라 투자한다”며 “새로운 클러스터가 형성되면 후속 투자와 협력업체, 연구기관도 함께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AI 분야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SK그룹은 국내 5개 권역에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구는 후보군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수성알파시티 AI 데이터센터 사업은 착공조차 지연되고 있다.
피지컬 AI 역시 정부가 동남권 중심 육성 방침을 밝히면서 부산·울산 중심의 제조 AI 클러스터 조성 가능성이 거론된다. 대구가 국가로봇산업 기반과 ABB 산업을 육성해 왔음에도 국가 프로젝트의 중심축에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공공기관 이전 논의도 지역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혁신도시 시즌2가 본격화될 경우 알짜 공공기관이 서남권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지역에서는 국가 성장동력이 잇따라 다른 권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전력 인프라 논란도 지역에서는 주목하는 대목이다. 에너지업계에서는 한빛원전의 단계적 수명 종료와 송전망 부족 등을 이유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호남 중심의 반도체 전략을 추진하면서 지역에서는 “산업 여건보다 정책 방향이 먼저 결정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 경제계는 개별 사업을 잃는 것이 아니라 국가 성장축에서 밀려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는 대구에서 흔들리고, 반도체는 호남으로 향하고, 피지컬 AI는 동남권으로 간다. 동남권은 사실상 부산 울산 경남을 의미한다”며 “여기에 공공기관 이전까지 서남권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TK는 새로운 국가사업을 받지 못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성장 기회까지 잃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산업정책 전문가는 “산업정책은 한 번 권역별 거점이 형성되면 기업과 인재, 연구개발 기능이 함께 따라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며 “TK가 국가 첨단산업 전략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 제시되지 않는다면 지역의 산업 공동화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Copyright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