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은 여성 천황 원하는데... 日 정부 “안된다”는 이유는?

일본 정부가 황실기본법 개정안 초안을 24일 공개했다. 다카이치 정부는 황실의 지속성을 위해 부족한 황족 수를 늘리기 위한 황실기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 내에선 여성 천황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여성 천황을 인정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왜 여성 천황에 부정적일까.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두가지다. ①여성 황족도 결혼 후에 황실에 남고, ②구 황족가의 남계 남자를 양자로 입양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현재 여성 황족은 결혼하면 황족 신분을 잃고 황실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이같은 독특한 남계 승계 원칙 때문에 현재 황족 수는 17명으로 감소한 상황이다. 또 천황 승계가 가능한 남자 황족은 3명으로, 이중 젊은 남성은 나루히토 천황의 조카인 히사히토 친왕 1명 뿐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여성 황족도 결혼 후 계속 황실에 남는 것이 원칙이 된다. 다만, 현재 살아 있는 여성 황족은 본인 의사에 따라 결혼 후 황적 이탈도 선택할 수 있는 ‘경과 조치’가 마련됐다. “현행 제도 속에서 인생을 살아온 점을 고려해 일정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 여성 황족의 남편과 자녀의 신분에 대해서는 명기하지 않았다.
두번째는 양자 입양을 통해 황족 수를 늘리는 방안이다. 입양 대상은 1947년 황적에서 이탈한 옛 11개 궁가 가운데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15세 이상의 남자로 규정했다. 다만, 양자 본인은 황위 계승 자격을 갖지 않는다. 양자의 아들에게 계승권이 있는지 여부는 명시하지 않았다. 양부모는 현재 나루히토 천황 부부와 나루히토 천황의 아버지인 아키히토 상황 부부만 가능하도록 했다. 나루히토의 동생인 후미히토 부부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는 이달 중 개정안을 확정해 국회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여성 천황 가능성을 배제한 개정안은 일본 국민 다수의 기대와는 다른 것이다. 가와니시 히데야 나고야대 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입법부 총의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일 뿐 국민의 총의라고는 할 수 없다. 여성 황족이나 장차 양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남성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가와니시 교수는 먼저 “여성 황족이 만약 황실에 남지 않는 선택을 할 경우 비판에 노출될 수도 있고, 배우자와 자녀가 황족이 되는지, 아니면 민간인으로 남게 되는지도 명확하지 않아 매우 가혹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했다. 또 양자 입양에 대해선 “애초에 양자가 될 사람이 나타날지, 지금까지 일반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국민으로서 갖는 여러 권리를 갖지 못하는 황족이 되고 싶어 할지, 본인의 의사와는 별개로 사실상 강제적으로 양자 결연을 하게 될 위험은 없는지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그동안 국민 여론은 여성 천황에 기울어져 있었다. 지난 20~21일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 73%가 여성 천황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40%는 여성 천황과 그 천황이 낳은 아들이 자리를 승계하는 ‘여계 천황’에도 찬성하고 있었다. 나머지 33%는 여성 천황에는 찬성하지만, 여계 천황에는 반대했다.
반면, 양자 입양에 대해선 반대가 32%, 찬성이 28%, 모르겠다가 39%로 반대가 찬성보다 많았다. 이는 나루히토 천황의 외동딸인 아이코 내친왕(24)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친밀감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아이코 내친왕은 가쿠슈인대학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2024년부터 일본적십자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공식 석상에 소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등장해 호감도가 높다.

일본 천황은 헌법에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가지지 않는다”고 돼있으며, 오랫동안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왔다. 황실기본법에 대해서도 뚜렷한 입장을 내놓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나루히토 천황은 이례적으로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 원론적이지만 속 뜻이 담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나루히토 천황은 지난 11일 유럽 방문 전 기자회견에서 “제도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제가 언급하는 것을 삼가고자 한다”면서도 “황실의 존재 방식과 활동의 기본은 국민의 행복을 항상 바라며 국민과 고락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러한 황족 수 확보 방식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도 국민 여러분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라고 말했다. 원론적인 입장이지만,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표현에서 아이코 내친왕을 지지하는 국민 여론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는 양자 입양을 최우선 방안으로 삼고 개정안을 추진중이다. 부계가 천황의 혈통을 잇는 남계 계승이 이어져 온 황실의 역사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거 다카이치 총리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여성 천황’ 자체에 대해선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인 적도 있다. 그동안 일본 역사에서 8명의 여성 천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 보수 정치인들은 여성 천황을 인정하게 되면, 그 후 태어난 아들이 ‘여계 천황’이 될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여계 천황은 인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다시 다른 남계 황족을 찾아야 되는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일본 보수 정치인들이 여성 천황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배경에는 좀 더 복잡한 배경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일본 일부 강성 우파 논객들은 “중국이 일본의 여성 천황 지지 여론을 퍼트려 일본의 정체성과 근간을 흔들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영상들이 아이코 내친왕을 찬양하는 반면, 사실상 황위 승계 1순위인 히사히토 친왕 일가에 대해선 부정적인 내용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아이코 천황론’은 일본 국론을 양 갈래로 분열시키고, 남계 전통을 이어온 역사와 일본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 같은 우려가 자민당과 유신회 내에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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