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든 이색 응원도구 들고 “대한민국”…패배에도 뜨거웠던 광화문 [르포]
외국인 관광객도 거리응원 동참
“딱 한 골만”…후반 실점에 탄식
32강 진출은 경우의 수로 남아

“결과는 아쉽지만 끝까지 응원해야죠.”
2026 북중미 월드컵 한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조별리그 최종전이 열린 25일 오후 12시 서울 광화문광장.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미국 시애틀 교포 장제현(50) 씨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장 씨는 “멀리 미국에서도 늘 한국 축구를 응원해왔는데 광화문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니 감회가 남달랐다”며 “오늘은 졌지만 대표팀을 끝까지 믿고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이날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과달루페의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3차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0대1로 패했다. 비기기만 해도 32강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던 한국은 조 3위로 밀리며 다른 조에 속한 국가들의 경기 결과를 기다리게 됐다.


경기 시작 한 시간여 전부터 광화문광장은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응원객이 몰리자 경찰은 보행 동선을 분리해 시민들을 안내했다. 붉은악마 머리띠와 빨간 두건을 맞춰 쓴 시민들은 대형 태극기와 손팻말을 든 채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과거 붉은 티셔츠와 태극기로 대표되던 거리응원과는 사뭇 다르게 이날 광장에서 유니폼을 리폼하거나 직접 응원용품을 제작해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 응원객들이 눈에 띄었다.
킥오프가 가까워지자 광장 한복판에서는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축구대표팀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대형 태극기를 몸에 두른 권태균(74) 아리랑응원단장은 무릎을 꿇은 채 북을 두드리며 “대한민국! 가자!”를 외쳤고, 주변 시민들도 손뼉을 치며 구호를 따라 했다. 권 씨는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매 대회 대표팀 원정응원을 다녔다”며 “오늘도 목이 쉬도록 선수들을 응원하러 왔다”고 말했다.
개성 넘치는 응원 소품은 또 다른 볼거리였다. 최원길(64) 씨는 도라에몽 인형 수십 개를 달아 고개를 흔들 때마다 소리가 울리는 이색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그는 “모자를 흔들며 스트레스도 함께 날려 보내자는 의미”라며 “대표팀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하트 모양 안경까지 착용했다”고 말했다.



이색 응원은 외국인 관광객의 시선도 사로잡았다. 멕시코에서 온 다이애나(24)와 과테말라 출신 수지(25)는 축구대표팀 유니폼에 검은 뷔스티에를 덧대 크롭 스타일로 직접 리폼한 의상을 입고 광장을 찾았다. 캐나다에서 온 그레이엄(31)·에단(25)·앤드류(26)는 종이 응원모자와 부채, 스카프를 두른 채 “아이 러브 코리아”를 외쳤다. 이들은 “유튜브에서 한국 거리응원 문화를 보고 응원용품까지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젊은 응원객들도 저마다 개성 있는 응원룩을 선보였다. 경기도 광명에서 온 대학생 김은채(21) 씨와 최예원(21) 씨는 머리띠와 미니 응원봉, 빨간 도트무늬 블라우스로 응원복에 포인트를 더했다. 김 씨는 “똑같은 빨간 티셔츠를 입기보다는 우리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뜨거웠던 응원 열기와 달리 이날 경기는 좀처럼 한국 쪽으로 풀리지 않았다. 한국이 우세할 것이라는 관측과는 다르게 되레 후반 18분남아공의 선제골이 터지자 광장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떨구는 이들도 있었다. 경기 막판 추가시간까지도 “대한민국!”, “딱 한 골만”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손을 모은 채 숨죽여 전광판을 바라보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끝내 한국 대표팀이 동점골을 터뜨리지 못하고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자 시민들은 한동안 전광판 앞을 떠나지 못했다. 일부 축구 팬들은 “전술과 경기 운영이 아쉬웠다. 더 과감하게 했어야 했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은 허탈한 결과에도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권태균 아리랑응원단장은 “결과는 아쉽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라며 “32강에서도 거리응원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소정 기자 n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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