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권 칼럼] AI 접근권이 진짜 안보다… ‘독파모’ 다시 봐야

지난 13일, 미국 연방 정부는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에 국가안보를 근거로 최신 모델 ‘페이블 5’와 ‘미토스 5’에 대한 모든 외국인의 접근을 차단하라는 수출통제 명령을 내렸다. 미국 밖의 외국인은 물론, 미국 안에 거주하는 외국인, 앤트로픽에서 일하는 외국 국적 직원까지 대상이었다. 범위가 워낙 넓어 회사는 결국 전 세계 모든 고객에게 두 모델을 차단했다.
페이블은 미토스에 안전장치(가드레일)를 씌운 모델이다. 가드레일이 작동하면 일반에 판매하는 고성능 AI지만, 뚫리면 수십 년 묵은 소프트웨어 취약점까지 찾아내는 미토스의 가공할 사이버 능력이 새어 나오는 통로가 된다. 그런데 미토스를 ‘사이버 무기’라 부르며 규제 필요성을 가장 앞장서 주장한 회사가 바로 앤트로픽이다. 정작 미국 정부가 그 가드레일 우회 가능성을 문제 삼자, 앤트로픽은 ‘심각하지 않다’며 공개 반박했다. 우회를 발견해 정부에 먼저 신고한 곳은 앤트로픽의 최대 투자자이자 추론 인프라 파트너인 아마존이었다.
이 충돌의 본질은 ‘안전’이라는 단어에 가려진 권력 문제다. 지난 3년간 AI 경쟁의 질문은 ‘누가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드는가’였다. 이번 사건이 드러낸 질문은 다르다. ‘누가 그 모델에 접근할 수 있는가’, ‘누가 접근을 막을 권한을 갖는가’ 여부다.
AI 경쟁의 전장이 성능에서 접근권으로 이동했다. AI 지능은 상품이다. 누가 최고 모델을 쓰고, 누가 약한 버전을 받고, 누가 아예 차단되는가. 기업은 이를 안전정책, 정부는 국가안보, 규제기관은 공익이라 부르지만 메커니즘은 하나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지능 접근권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앤트로픽이 ‘AI는 위험하다’고 강조할수록 정부는 ‘그렇다면 더더욱 민간 한 곳에 맡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규제 주도권을 쥐려던 논리가 거꾸로 정부 개입의 명분이 된 셈이다.
문제는 이 사건의 한복판에 한국이 있다는 점이다. 이번 명령이 잘라낸 단어가 바로 ‘외국인’(foreign national)이다. 한국 기업과 연구자, 미국에서 일하는 한국 국적 엔지니어가 그 외국인이었고, 하룻밤 사이에 접근이 끊겼다. 더구나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수출통제 검토가 ‘중국 연계가 의심되는 한 한국 통신사’에 대한 우려에서 일부 비롯됐다고 보도했다.
AI 지능 전쟁에 대한 기업 차원의 대응은 분명하다. 이제 AI를 공급망 리스크로 인식해야 한다. HBM이 끊기면 GPU가 멈추듯, 특정 모델이 끊기면 어떤 업무가 멈추는지 지도를 그려야 한다. 모델은 언제든 갈아끼우되, 기업이 축적한 평가 체계와 데이터, 도메인 지식만큼은 자기 것으로 남기는 구조를 지금 설계해야 한다. 결국 공은 정부로 넘어온다.
이 지점에서 정부가 5300억원을 투입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사업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독파모를 향한 회의론은 ‘글로벌 톱10의 95% 수준 모델을 굳이 수천억 들여 만들 이유가 있느냐, 진짜 프런티어를 쓰면 되지 않느냐’였다. 이번 셧다운이 그 회의론에 한 번에 답했다. 핵심은 한국산 모델이 벤치마크에서 페이블을 이기느냐가 아니다. 내가 의존하는 최고 지능이 외국 정부의 한마디로 하룻밤에 꺼질 수 있느냐다. 독파모의 진짜 가치는 프런티어 우위가 아니라 회수되지 않는 바닥, 즉 보험으로서의 주권에 있다. 이번 사건은 독파모의 명분을 ‘국가 자존심’에서 ‘경제안보 인프라’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정부는 ‘모델은 주권의 가장 얕은 층’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독파모 정예팀들은 여전히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위에서 모델을 훈련한다. 한국은 메모리(HBM) 층은 쥐었지만 그 위의 연산과 리소그래피 층은 미국과 네덜란드의 손에 있다. 회수 가능한 컴퓨팅 위에서 도는 주권 모델은 결국 ‘빌린 주권’이다. 독파모의 진짜 시험은 한 모델이 톱10에 드느냐가 아니라, 컴퓨팅·데이터·모델로 이어지는 스택 전체를 얼마나 자국 통제 아래 두느냐다. 국가 AI 컴퓨팅센터의 GPU 확보와 독파모 사업이 별개 트랙이 아니라 하나의 주권 패키지로 묶여야 하는 이유다.
정예팀을 뽑아 6개월마다 한 팀씩 탈락시키고 2027년 한두 팀만 ‘국가대표 AI’로 남기는 현재의 오디션식 설계가 지금도 합리적인지 물어야 한다. 승자독식 토너먼트는 초기 자본 집중에는 유효했으나, 접근권 주권이 목표라면 다수의 생존 가능한 모델 생태계를 남기는 편이 회복 탄력성에 유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수출 통제의 일방적 수신자에 머물 이유가 없다. AI 시대의 결정적 병목은 메모리이고, 그 시장을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사실상 양분한다. 미국의 AI가 한국의 HBM 없이 작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한국이 ‘접근권을 구걸하는 나라’가 아니라 ‘접근권을 협상하는 나라’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지렛대다. 정부의 AI 외교는 이 비대칭을 전제로 설계돼야 한다.
AI 시대의 권력은 더 이상 모델을 만드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최고 지능에 접근할 자격을 정하는 데서 나온다. 한국은 그 허가를 기다리는 나라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메모리를 무기로 검문소를 함께 짓는 나라가 될 것인가. 이번 사건은 그 선택의 시한을 앞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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