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안양 김중업건축박물관

“참다운 건축이란 인간에게 짜릿한 감동을 줘 끝없는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드라마를 연출합니다.”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안양예술공원 입구에 자리한 김중업건축박물관에서 만난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말이다. 여천(如泉) 김중업(1922~1988)은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비롯해 ‘삼일빌딩’과 ‘서울올림픽 평화의 문’ 등 건축 역사에 빛나는 작품을 설계한 한국의 빼어난 건축가다.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한 아름다운 공원에 자리한 김중업건축박물관은 1959년 설계한 옛 ㈜유유산업 안양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2014년 개관한 국내 최초의 건축 전문박물관으로도 유명하다.

■ 시민의 힘으로 세운 박물관
공장 건물이 어떻게 시민의 사랑을 받는 두 개의 공립박물관으로 변신했을까. 김중업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의 설립을 둘러싼 사연부터 관람객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 “김중업 선생이 유한양행 계열사인 유유산업의 의뢰를 받아 1959년 설계하고 1960년 초에 준공한 이 건물은 원래 유유산업 안양공장이었습니다.”
2006년 유유산업 공장이 이전하면서 약 2만3천100㎡(약 7천평)의 부지는 아파트 단지로 개발될 예정이었다. 시민단체와 문화예술인들은 이 공장이 한국 건축의 거장 김중업의 작품이자 시민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공간임을 기억하고 보존운동을 벌인다. 토론회와 서명운동을 통해 건축적·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시민의 움직임에 호응한 안양시는 2007년 부지 매입을 결단한다. 이후 철거 과정에서 안양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고려시대 사찰인 ‘안양사(安養寺)’ 명문 기와가 출토되면서 시민운동은 천 년 역사와 근대 건축의 공존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유적을 보존하는 동시에 김중업 건축의 정수인 핵심 건물 4개동을 리모델링하기로 의견을 모아 2014년 3월 연구동은 ‘김중업건축박물관’으로, 작업동은 ‘안양박물관’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안양박물관과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시민의 참여로 보존한 건물을 박물관으로 재생한 국내 최초의 사례라는 명예를 얻게 됐다.

■ 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
대한민국의 건축계에서는 현재 김중업의 현대 콘크리트 건축물을 보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처럼 김중업은 현대 건축계의 전설이다. 김중업은 1952년 6·25전쟁 중 베네치아에서 열린 세계건축가회의(UIA)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가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 그의 아틀리에에서 3년2개월간 실무를 배울 기회를 가진다. 서구 모더니즘의 최첨단 기법과 ‘건축가는 예술가여야 한다’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철학을 온몸으로 터득한 김중업은 귀국 후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열어 서구의 선진 시스템과 치밀한 디테일 중심의 설계 교육을 전파한다.
김중업은 1962년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설계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명성을 얻는다. 전통 한옥의 처마 선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지붕 선을 콘크리트로 우아하게 구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한국의 전통미를 현대건축으로 승화시킨 불후의 명작이다.
상설전시실은 실용성과 예술성이 조화를 이루는 김중업 건축의 속살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건축가 김중업의 치열한 삶과 대표 작품을 살펴보면 누구나 감탄하게 된다. 정교한 설계도면, 섬세한 스케치, 만년필로 휘갈겨 쓴 건축 수첩,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작품모형에도 김중업이 추구한 건축 철학이 배어 있다. 귀국 직후 설계한 부산대, 주한 프랑스대사관, 뉴욕 세계박람회 한국관 등 1960년대 전후의 건축작품들을 하나씩 음미해 보면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김중업의 건축 세계에 빠져든다.

2층은 김중업 건축작품을 관통하는 ‘살아있는 선’을 중심으로 제주대 본관, 삼일빌딩, 여러 주택작품과 한국교육개발원 신관, 육군박물관 등 1960년대 이후의 대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 고층 빌딩 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삼일빌딩(31빌딩)과 육군박물관 모형도 관람객의 눈길을 끄는 전시물이다. 특히 엄마의 자궁을 연상시키는 서산부인과의 독특한 구조는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울 정도로 기억에 생생하다.
김중업의 작품 도면과 작품 모형, 그리고 일상을 보여주는 흑백사진과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김중업의 건축관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구성한 전시 방식이 훌륭하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과 면허증 같은 유물도 재미를 더해준다. 야외에 2022년 기증받은 주한 프랑스대사관 대사 집무실 기증 유물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의 경비실부터 김중업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박물관에 숨어 있는 건축가의 정신
박물관 구석구석에서 김중업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점도 관람의 재미를 더해준다. 본관 현관 기둥을 유유산업의 ‘y’를 본뜬 형상이고 창문의 차광막 또한 y가 엮인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즐거움이다. 안양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 모서리에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을 담은 ‘모자상’과 ‘개척자상’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젊은 건축가와 유유산업의 기업가 정신이 하나로 통해 예술을 품은 공장이 탄생한 것이다.
박물관 너른 마당을 거닐다 보면 곳곳에서 건축가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다. 건축박물관의 바깥에 건물 내부에 있어야 할 기둥 다섯 개와 계단을 마주한다. 건물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빼내 건물 내부 공간을 넓히는 건축가의 발상이 신선하다. 안양박물관 외벽 모서리에 설치한 ‘모자상’과 ‘개척자상’ 조각은 공장에 예술을 품고 싶었던 기업인과 건축가의 아름다운 만남을 상징한다. 마당에서 한국의 전통미를 완벽하게 승화시켰다고 극찬받은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대사 집무실 내부 기둥’을 비롯한 아홉 점의 유물을 둘러본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3회 연속 우수 인증기관으로 선정됐다.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중업의 건축 유산을 바탕으로 한 전문적인 전시와 연구, 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며 건축문화의 공공적 가치를 확산해 온 점이 우수한 성과로 인정받은 것이다. 2026년 올해는 한·불 수교 140주년이 되는 해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협력해 두 나라의 건축문화 교류의 역사와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는 특별기획전을 열 예정이다. 지난봄 박물관은 주한 프랑스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 80여명이 참여하는 ‘문화협력 교류행사’를 열었다.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맞아 10월 김중업건축박물관에서 김중업 건축가와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역사를 담은 전시회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전시는 김중업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중심으로 양국 건축문화 교류의 역사와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는 내용이 중심이다.

■ 현대 건축의 미학과 천 년 역사를 품은 박물관
김중업건축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에서 3회 연속 우수 기관으로 선정될 정도로 교육 프로그램이 튼실하다. 시민과 즐거운 만남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매년 가을이면 박물관 일대는 축제의 마당으로 변한다. 안양건축문화제가 개최돼 건축사 작품전이 열리고 어린이 건축물 그리기와 3D 건축모형 만들기, 건축 강연 등 풍성한 축제의 마당이 펼쳐진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있어 주변의 자연경관 및 현대미술작품들과 함께 조용히 사색하며 둘러보기 좋다. 박물관 마당에 보물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국가유산인 고려시대 삼층석탑 및 절 주춧돌이 잘 보존돼 있어 역사 답사 공간으로도 안성맞춤이다. 건축의 아름다움과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두 개의 멋진 공립박물관이 안양예술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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