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간의 스토킹 피해, 7번의 소송, ‘탁월한 피해자’가 싸우는 이유

“검찰이 항소를 할지 모르겠어요. 해줘야 하는데···.” 곽아람씨(47)는 스토킹 범죄 피해자다. 6월2일 가해자 차 아무개씨(59)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통신매체이용음란, 명예훼손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가해자가 감옥에 있어야 그나마 안전하다”라고 느끼는 곽씨가 보기에는 낮은 형량이었다. 검찰이 반드시 항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항소 마감 전날인 6월8일까지 항소 여부를 알 길이 없었다. 초조했다.
가해자 차씨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의 네임드 유저(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이용자)다. 일베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게시 글을 올리면서 다른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2019년 8월부터 일면식도 없는 곽아람씨를 범죄 대상으로 삼았다. 곽씨는 2003년 〈조선일보〉에 입사한 기자다. 자신이 쓴 기사와 업무차 출연한 팟캐스트·유튜브를 통해 이름과 얼굴이 알려졌고, 가해자의 표적이 되었다.
곽아람씨는 친구가 알려줘 비로소 가해자의 범죄를 알게 되었다. 범죄가 시작되고 2년이 지난 2021년 6월이었다. 가해자 유튜브 채널에 접속하자 ‘나의 그녀 곽아람을 소개합니다’ ‘곽아람을 구석구석 씻어보자’ 따위 제목의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곧장 유튜브에 신고했고 가해자 계정은 삭제됐다.
그때부터 협박이 시작됐다. 가해자는 “피해가 막심하다”라며 1000만원을 내놓으라고 메일을 보냈다. 오싹했다. 메일을 차단하고 회사를 통해 ‘성희롱과 협박 행위를 중단하라’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가해자는 굴하지 않았다. 도리어 회사 주소로 편지를 보내 돈을 요구했다. 새로운 유튜브 채널을 판 차씨는 도끼 휘두르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란 듯이 올렸다.
곽아람씨 회사는 주소가 알려진 유명 언론사다. 그는 가해자가 회사 앞에서 자신을 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고소를 결심했다. 보복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신고 전 가해자의 유튜브 계정에는 여러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게시물이 있었다. 언론인과 인플루언서 등 대부분 얼굴이 알려진 여성이었다. ‘가해자가 거리낌없이 범행을 반복하는 건 아무도 그를 막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다른 여성들을 지키고 싶었다.
2021년 11월 가해자를 스토킹처벌법 위반, 통신매체이용음란, 모욕 등 혐의로 고소했다. 이것이 곽씨의 ‘1차 고소’였다. 스토킹처벌법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기, 주거지나 회사에서 기다리기, 통신매체로 연락하기, 물건 보내기 등을 ‘스토킹’으로 규정한다. 법은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인 스토킹을 스토킹 범죄로 본다.
가해자는 고소를 당한 후에도 곽아람씨가 쓴 기사에 집요하게 댓글을 달았다. “넌 사람 아주 잘못 건드린 거다. 이 오빠는 너그러운 사람이 아냐. 나는 나조차 놀랄 정도로 복수심이 강하다. 앞으로 넌 나 때문에 엄청 괴로울 거다. 내가 네 목줄을 쥐고 있다고(2022년 7월).” 가해자는 2022년 9월 1차 사건 1심에서 1년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뒤에도 곽씨에게 동료 수감자의 성적 행위를 묘사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스토킹을 이어갔다.

곽아람씨는 2025년 10월까지 가해자를 모두 여섯 차례 형사고소하고 한 차례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거듭 고소·소송 제기에 나서는 곽씨를 보고 누군가는 ‘탁월한 피해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곽씨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가해자는 반성하지 않고 복역 중에도 계속 범죄를 저질렀다.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해자가 출소하지 않는 건데, 스토킹 범죄는 양형 기준(기본 구간 징역 최소 6개월 최대 1년)이 너무 낮다. 계속 고소해서 형기를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가 형사재판 당사자가 아니라면
누군가 가해자를 고소해야 한다면 상대적으로 사회적 자원이 많은, 기자인 자신이 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형사소송법 구조에서 형사재판의 당사자는 검사와 피고인이다. 2021년 11월 1차 고소 후 지난 5년간, 피해자인 곽아람씨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었다. 곽씨는 의문이 들었다. “피해자가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면, 피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아도 국가가 피해자를 대리하는 것만으로 사건이 매끄럽게 해결돼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곽아람씨는 증거자료를 수합해 제출하는 등 유죄를 입증할 책임이 피해자에게도 전가된다고 말했다. “자료를 뒤져 일일이 증거를 찾아 검찰에 가져다주면 그게 증인신문에 증거로 나왔다.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정작 피해자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을 겪으면서 수천 번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피해자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기자 곽아람과 달리 피해자 곽아람은 검찰 구형량조차 알기 어려웠다. 2025년 11월 5차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된 뒤,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다. 곽아람씨는 변호사를 통해 구형량을 물었지만,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속이 터졌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도 가해자가 항소했으니, 피해자인 내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감형받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2심 재판부에 의견을 내려면 근거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검찰에 구형의견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 뒤에야 검찰 구형량과 선고 결과가 징역 1년으로 같다는 걸 알게 됐다. 곽씨는 “(형사재판은 수사기관인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과정인 만큼) 피해자를 재판의 당사자로 만들어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피해자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는 몰라도 돼’라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피해자가 아니라면 몰랐을 일은 그 밖에도 연달아 벌어졌다. 곽아람씨는 가해자의 엄벌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여러 차례 제출했다. 탄원서는 증인으로 법정에 설 때를 제외하고 피해자가 재판부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재판 기록이라는 이유로, 가해자가 탄원서를 볼 수 있다는 건 가해자 변호사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됐다. 당혹스러웠다. “재판부에 가해자를 엄벌해달라고 낸 탄원서를 가해자가 보면 당연히 앙심을 품지 않겠나. 이러면 어떤 피해자가 당당하게 가해자를 벌해달라고 쓸 수 있겠나.”
“취재가 시작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예상대로 수감 중인 가해자 차씨가 탄원서 구절을 언급하며, 원망하는 편지를 회사로 보내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해자는 고소를 취하하라며 협박하거나 음란물이 동봉된 편지를 지속적으로 곽씨에게 보냈다. 또 다른 스토킹이었다. 경찰과 검찰, 교도소에 편지를 막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모두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가해자가 수감 중인 교도소 서신 담당자는 “서신을 보내는 건 수용자의 권리이므로 어쩔 수 없다”라고 했다. 곽씨는 가해자가 처음 수감된 2022년 9월부터 꼬박 1년 넘게 가해자의 편지에 시달렸다.

가해자의 편지가 멈춘 건 ‘기사가 나가고 나서’부터였다. 2024년 1월 〈조선일보〉는 곽아람씨의 사건을 사례로 편지 스토킹에 대한 대책이 없는 현행법의 문제를 지적한 기사를 내보냈다. 그제야 검찰은 교도소에 요청해 서신 검열 조치를 해주겠다고 했다. 2025년 10월 6차 사건 고소 때도 비슷했다. 피해자로 몇 시간 동안 항의해도 묵묵부답이던 경찰은 “취재가 시작되자” 태도를 바꿨다. 곽씨는 “피해자 곽아람과 기자 곽아람을 대하는 세상의 온도 차가 너무 커서 슬펐다”라고 말했다.
곽씨가 꿈꾸는 건 일상 회복이다. “가능할까? 스토킹 범죄는 ‘끝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가해자도 반성하지 않았다.” 가해자 차씨는 2023년 1월 감옥에서 곽씨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원하신다면 제가 스토킹을 할 다른 여자를 물색해보도록 할게요. 석방되어 나가면 이제 A 앵커를 스토킹할까 생각 중입니다. B도 스토킹하기에 좋은 대상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스토킹하는 건 기분 좋으니까요.”
곽아람씨는 ‘새로운 판례’를 쌓으려 한다. 1차 사건에서는 가해자에게 징역 1년(확정), 2차 사건 징역 2년 6개월(확정), 3·4차 사건 징역 3년(1심), 5차 사건 징역 1년(1심)이 선고됐다. “(2021년 10월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법이다. 판례에 따라 법조인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양형을 더 높이려면 좋은 판례가 나와야 한다. 그나마 여력 있고 (사회적) 자원이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싸워서 이런 판례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좋은 판례를 만들면 나중에 다른 피해자들이 쉬워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싸우고 있다.”
잘못된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고 바꾸는 건 기자의 일이다. 훈련된 기자인 곽아람씨는 ‘취재 중’이라고 생각하면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취재하다 보면 욕도 먹고 별별 일 다 겪는 거지 뭐’라고 생각하면 매몰되지 않고 사건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었다. 피해자이자 기자로서, 피해자를 억누르는 형사사법 시스템의 문제를 낱낱이 취재하겠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통쾌했다. 시스템이 잘못돼 있음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도 생각했다.”
곽아람씨는 기자라는 이유로 스토킹 피해자가 됐다. 그리고 기자이기에 ‘탁월한 피해자’가 되어 지금까지 싸울 수 있었다. 6월8일 늦은 오후, 불안한 마음으로 검찰의 항소 소식을 기다리던 곽아람씨가 변호사에게 연락을 받았다. 검찰은 3·4차 사건 1심에서 가해자 차씨가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데 대해 항소했다. 곽씨는 “당연히 가해자도 항소를 했고 6차 사건도 남아 있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해봐야죠”라고 말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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