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76년째 끝나지 않은 이름 찾기 [6ㆍ25전쟁 76주년]

김세영 기자 2026. 6.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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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76주년]
대전 산내 골령골 가보니 발굴된 유해 1472구 달해
예산 없어 확인 중단… 유족 “정부, 진실 규명 무책임”
전미경 유족대표회장이 학살 당시 촬영한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사진=오민지 기자

[충청투데이 김세영·오민지 기자]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 76주년을 하루 앞두고 찾은 24일 오전 대전 산내 골령골은 짙은 초여름 녹음에 잠겨 있었다.

길목에 들어서자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이 시야를 감싸 다소 서늘한 바람이 가로질렀다. 적막 속 흔들리는 추모 현수막만이 매듭짓지 못한 기억의 아픔을 붙잡고 있는 듯했다. 학살 규모가 워낙 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리는 골령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민간인 등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학살된 장소다.

당시 정부와 군·경은 북한군 남하 과정에서 이들이 적에 합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처형을 강행했고, 최대 7000여명의 희생자가 곳곳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제9학살지까지 확인돼 발굴된 유해만 1472구에 달한다. 그중 100m 길이의 제1학살지는 가장 많은 유해가 발굴된 장소다.

한때는 개 농장이 들어서 수십년간 오물에 방치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풀과 들꽃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학살의 비극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전미경(79) 대전산내골령골희생자유족회장은 "이곳에서 총살된 희생자들을 눕혀 묻고 얕게 흙을 덮은 뒤, 그 위에 또 시신을 쌓아 벽돌처럼 매장했다"며 "유해들이 나무젓가락처럼 붙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한 번에 수십명씩 끌려가 숨진 곳도 많은데 증언자가 없다"면서 "그냥 이 골짜기 전체가 유골밭이다"라며 분노했다.
100m 가량 길게 늘어선 제1학살지. 꽃이 피어있는 땅 아래가 수많은 유해가 발굴된 곳이다. 사진=오민지 기자

맞은편으론 배에 달하는 180m 길이의 제2학살지가 길게 누워 있었다.

유족에 따르면 과거 이곳에서 발견된 유해가 트럭 10대 분량으로 반출됐다.

실제 희생 규모를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은 유해가 사라졌거나, 아직도 이 골짜기 어딘가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적잖다.

유족들은 힘들게 발굴한 유해의 신원 확인 작업이 멈춰 선 현실에 큰 답답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단 5구.

그 가운데 4명은 제주 4·3사건 희생자로 확인됐다.

추가 유전자 분석이 필요하지만,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신원 확인 작업은 중단됐다. 무책임한 국가의 태도에 유족들은 붙잡을 수 없는 세월을 흘러 보내고 있다.
2000년 7월,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현장에 처음으로 세워진 비석(오른쪽). '대전형무소 정치범 및 민간인 집단1학살지'라고 적혀 있다. 사진=오민지 기자

현재 유족회에 이름을 올린 300여 명의 회원 중 가장 젊은 유족이 76세다. 이렇듯 유족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도, 정작 제도와 기록, 법적 정비는 더디기만 현실이다. 몸을 가누는 일조차 버거워진 유족에게 진실을 규명하는 일은 갈수록 힘겨운 싸움이 되고 있다.

전 회장은 "학살지를 오갈 때마다, 비포장 자갈길을 따라 이곳으로 끌려왔을 아버지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너진다"며 "아버지를 잃은 것도 모자라 오랫동안 '빨갱이'라는 낙인과 연좌제의 그림자를 체감하며 살아야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딸이 있어서 여기까지라도 왔지만, 후손이 끊긴 분들은 얼마나 억울하겠느냐"며 "이제 유족들마저 다 세상을 떠나면 누가 그분들의 이름을 찾아주겠느냐"고 되물었다.

김세영 기자 ksy@cctoday.co.kr

오민지 기자 omji@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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