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전쟁 때 미국이 세균전을? 직접 증거 없다" 中 역사학자의 반론
중국 항미원조 서사 핵심 '美 세균전' 주장 정면 반박
"논리·방법·증거 모두 결함...조사단도 직접 검증 못해"
"역사적 진상 설명해야 한중 민간감정 풀릴 수 있어"

한국전쟁 시기 미국이 북한과 중국에서 '세균전'을 벌였다는 주장은 지금도 동아시아 냉전사의 민감한 쟁점 중 하나다. 북한은 전쟁 중 미군이 세균무기를 사용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고, 중국에서는 지금도 한국전쟁 세균전 주장이 현재형의 역사 기억으로 남아 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중국 영화계 거장 천카이거 감독의 지난해 개봉작 '지원군: 욕혈화평'에서도 세균전은 미군의 전쟁범죄를 상징하는 소재로 그려졌다.
그러나 30년 이상 한국전쟁을 연구해온 중국 역사학자 선즈화(沈志华) 화둥사범대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미국이 세균전을 실시했다는 주장은 논리와 방법, 증거 측면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며 "지금까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만 놓고 보면 세균전이 있었다고 입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없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있었다'는 증거도 없다는 얘기다. 23일 베이징 소재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논리도, 방법도, 직접 증거도 취약했다"
그의 주장은 중국에서 나온 것으론 극히 이례적이다. 중국에서는 한국전쟁을 '항미원조(미국에 맞서 조선을 도움) 전쟁'으로 부르며, 세균전은 미국의 비인도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자리 잡아왔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유지돼 온 역사 인식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민감한 주제이지만, 선 교수는 "역사학자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1952년 북한과 중국, 소련 등 공산 진영은 미군이 비행기를 통해 세균에 감염된 곤충을 살포했다며 국제적 선전전에 나섰다. 공산권 국제 평화운동 조직인 세계평화이사회 주도로 국제과학위원단도 꾸려졌다. 영국 과학자 조지프 니덤 등이 참여한 이 위원단은 미국이 세균전을 벌였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냈다. 일명 '니덤 보고서'로 불리는 이 보고서는 오랫동안 세균전 주장의 주요 근거로 활용됐다.

선 교수는 니덤 보고서에 세 가지 근본적 허점이 있다고 봤다. 첫째는 논리 정합성 문제다. 당시 보고서는 일본 731부대가 중일전쟁 시기 벌인 세균전 경험을 미국이 흡수해 한국전쟁에서 사용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선 교수는 "일본 731부대가 주로 곤충이나 쥐 같은 매개체를 통해 전염병을 퍼뜨리는 방식이었다면, 미국의 생물무기 연구는 폭탄을 터뜨려 공기 중으로 병원체를 살포하는 방식에 가까웠다"며 "그런데 당시 보고서에 등장하는 주장은 대부분 곤충을 매개로 한 것"이라고 했다.
둘째, 논증도 허술했다. 공산권의 주장은 '미군 비행기가 곤충을 투하했다→그 곤충이 사람을 물었다→그 결과 전염병이 퍼졌다'는 구조였는데 이에 대한 증명이 부실했다. 선 교수는 "세균전이라고 하려면 비행기가 왔고, 곤충이 떨어졌고, 그 곤충이 사람을 감염시켰다는 인과관계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하지만, 어느 단계도 독립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셋째는 '직접 증거'의 부재다. 선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증거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라며 "비행기가 곤충을 살포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도 아니고, 미군 비행기에서 투하됐다고 하는 곤충을 국제조사단이 직접 조사한 것도 아니었으며, 최종적인 과학검사 보고서도 없다"고 했다. 국제조사단의 판단은 상당 부분 학술적 검증이 어려운 중국과 북한 측이 제공한 자료와 증언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정전 협상 카드 활용 위한 선전전으로
선 교수는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 당시 중국 지도부가 처음부터 이 주장이 허위라는 것을 알았다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처음에는 실제로 믿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전쟁 중 군사 지휘관과 국가 지도자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방역 차원의 대응을 넘어 국제 선전전으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당시는 판문점 정전협상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선 교수는 세균전 문제가 미국을 압박하고 협상에서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카드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직접 증거를 찾기 위해 전문가 44명을 북한에 보냈고, 이후 소련 전문가도 파견됐지만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정전협상에서 중국 측이 세균전 증거 제출을 압박받자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에게 관련 상황을 보고한 전문도 확인했다. 선 교수는 "증거를 찾지 못했지만 이미 북한과 소련 관영 매체까지 미국이 세균전을 벌였다고 보도한 상태였다"며 "호랑이 등에 올라타 내리기 어려운 상태(기호난하·骑虎难下) 같았다"고 표현했다.

소련의 입장 변화도 주목할 지점이다. 선 교수가 소련 해체 이후 공개된 러시아 측 기밀 해제 문서와 내부 기록을 분석한 데 따르면, 소련은 스탈린 사후 세균전 주장의 신빙성을 재검토했다. 1953년 5월 2일 소련 각료회의 상임간부회 결의문에는 "조선에서 미국인들이 세균무기를 사용했다는 언론 보도는 조작된 자료에 근거한 것이었고, 미국인들에 대한 비난은 날조된 것이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결의문은 중국과 북한에 관련 보도를 중단하고, 세균전 문제를 국제기구와 유엔 논의에서 제외하도록 권고하라고 지시했다.
선 교수는 이 문제가 단순한 과거사 논쟁을 넘어 한중 양국 국민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그는 "한국전쟁은 한중관계에서 넘기 어려운 장애물 중 하나"라며 "역사적 진상을 정확히 설명하지 않으면 민간 차원의 감정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세균전 논쟁에 대해 "단순히 '있었다'거나 '없었다'고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시 각국이 왜 그런 주장을 했고 그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즈화 화둥사범대 교수는?
중국의 대표적인 냉전사·한국전쟁 연구자다. 소련 해체 이후 공개된 러시아 문서고 자료를 토대로 한국전쟁과 중소관계, 북중소 삼각관계를 30년 이상 연구해왔다. 특히 한국전쟁 발발 책임론, 중국의 참전 동기, 미군 세균전 논쟁 등 중국 내에서도 민감한 주제를 사료 중심으로 재해석해온 학자로 알려져 있다.
베이징= 이혜미 특파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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