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곶자왈, 흑두루미… 자연에 법적 권리 ‘생태법인’ 어디까지 왔나

자연의 권리를 인정해 강·숲·산·동식물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가 국내서도 나올 수 있을까. 국회의원 시절 관련 법안을 발의한 위성곤 제주도지사 당선자의 취임을 앞두고, ‘생태법인 제도’가 다시 주목받는다. 제주 해양생태계의 핵심종인 남방큰돌고래를 비롯해 ‘제주의 허파’라 불리는 곶자왈, 전남 순천의 흑두루미까지, 주춤했던 논의가 활기를 찾는 모양새다.
위 당선자는 24일 기자간담회에서 “곶자왈과 같은 고형물로 움직이지 않으며 우리 생활권과 분리된 것에 우선 (생태법인 지정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그동안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국제적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를 ‘제1호 생태법인’으로 추진해 왔는데, 이로써 곶자왈이 국내 첫 생태법인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위 당선자는 “남방큰돌고래 보호에도 적극 나서겠지만, (돌고래 생태법인 지정으로) 어민들과 갈등을 새롭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동안 제주도는 제주의 독특한 생태적 가치를 보전하고, 생태계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보호하기 위해 특정 생태계나 동식물 등 자연물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생태법인 제도 도입을 논의해왔다. 자연이 법적 주체가 된다는 점이 낯설 수 있지만, 이미 기업 등을 ‘법인’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강이나 호수, 숲, 빙하, 동물, 생태계를 ‘법인격’으로 인정해 과도한 개발을 막고, 이들이 스스로 ‘지속성’을 누릴 권리를 인정하자는 취지다. 예컨대 과거 경남 양산 천성산 터널 공사 착공금지가처분 소송(2003년)에서는 도롱뇽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반대 소송(2018년)에서는 산양이 원고로 나서기도 했다. ‘당사자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기각됐지만, 자연물이 법인으로 인정받으면 이런 소송도 가능해진다.
제주 생태법인 논의에 참여해온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 환경법이 자연에 대한 특정 행위를 제한하는 방식이었다면, 생태법인은 지역 공동체, 전문가, 이해관계자 등이 ‘후견인’이 되어 자연에 대한 합리적 거버넌스(공동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는 개념”이라며 “자연을 자원 효율성 측면으로만 대해왔던 환경 관리 방식에 ‘자연이 갖는 가치’를 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는 아직 사례가 없지만, 세계 여러 나라가 이미 자연물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에콰도르는 2008년 세계 최초로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했고, 볼리비아 또한 ‘어머니 대지법’(2010년)으로 자연을 권리 주체로 인정했다. 뉴질랜드도 테우레웨라 국립공원(2014년)·황아누이강(2017년)·타라나키산(2018년)에 잇따라 법인격을 부여했다. 이외에도 인도 갠지스강(2017년), 콜롬비아 아트라토강(2016년)·아마존(2018년), 스페인 마르메노르 석호(2022년) 등의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한 것은 2023년이다.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간 지 10년이 되는 시점이라 관심을 모았다. 오영훈 전임 지사 당시 제주도는 생태법인 제도 도입을 위해 학계와 법조계, 전문가, 시민단체가 참여한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위원장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을 운영하며 법제화를 추진해왔고, 2024년 12월 위성곤 당시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제주특별법 일부개정안’에 생태법인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제주도지사가 특정 생물 종이나 핵심 생태계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3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서 정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출하면서 심의가 보류됐다. 정부는 “현행 법체계와의 조화 여부, 지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충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남방큰돌고래가 생태법인으로 지정되면 지역 어업권이나 관광업이 제한될 수 있고, 해상풍력발전 설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단될 뻔한 논의가 위 후보의 당선으로 다시 관심을 받게 됐다. 이창흠 제주지사직 인수위원회 미래전략위원장은 23일 한겨레에 “(관련 내용이) 공약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당선자는 기후문제와 자연환경·생태계 균형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생태법인 제도는 일종의 ‘플랫폼’으로, (제도가 도입된다면) 곶자왈에 이어 남방큰돌고래도 제2~3호 생태법인이 될 수 있다”며 “의미가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어업권 등과의 갈등을 이유로) 논의를 보류할 것이 아니라, 생태법인 제도 안에서 어떻게 권리 충돌을 조율할 것인가에 대한 면밀한 설계”라고 강조했다. 이 제도의 핵심이 이들을 대변(후견)하는 ‘생태 거버넌스’를 제대로 구성해 “인간-자연의 공존 방정식을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도뿐이 아니다. 철새 이동을 방해하는 전봇대를 모두 철거한 뒤 전세계 흑두루미의 절반 이상이 날아와 ‘생태관광 성지’가 된 전남 순천시도 흑두루미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순천시는 2024년 ‘생태문명 실천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생태문명전환 조례)를 제정해 전담팀을 꾸리고 대안 교육기관인 ‘순천에코칼리지’를 중심으로 “생태문명 활성화”를 추진해왔다. 오는 9월에는 생태법인·생태 민주주의 학술토론과 지역 축제를 결합한 ‘만물공동회’도 연다. 김동호 생태문화팀장은 “논의의 최종 목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과정을 통해 ‘생태법인 도입 조례안’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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