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호남으로 AI는 충청으로…TK는 또 ‘찬밥 신세’
영남권 첨단산업 생태계 성장 동력 약화 우려 목소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지방 투자 계획이 광주·전남과 충청권을 중심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대구·경북을 비롯한 영남권 전역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국가 첨단산업 투자축이 수도권에 이어 호남·충청권으로 이동할 경우 구미와 포항을 중심으로 구축된 반도체·전자·첨단소재 산업 생태계는 물론 대구·경북의 미래 성장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3면
2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오는 29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국토 공간 대전환(지방균형국가)' 민관 합동회의에서 대규모 지방 투자 계획 발표를 위한 막바지 조율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광주·전남과 충청권이 주요 투자 후보지로 거론되면서 영남권 산업계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특히 구미는 삼성전자 생산거점과 반도체 소재·부품 산업 기반을 갖춘 국내 대표 전자산업 도시다. 그러나 국가 최대 반도체 프로젝트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과정에서 SK하이닉스 유치에 실패하며 대규모 투자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투자 논의 역시 호남·충청권 중심으로 전개될 경우 국가 전략산업 재편 과정에서 또 한 번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지역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포항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포항은 광명산단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과 AI 기반 산업도시 전환을 추진하며 미래 산업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포스텍과 한동대를 비롯한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철강·배터리·바이오 산업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신산업 육성 전략도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차전지 특화단지와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연계한 첨단산업 생태계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 흐름에서 배제될 경우 성장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구 역시 ABB(AI·빅데이터·블록체인)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며 관련 기업과 연구기관 유치에 집중하고 있다. 대구·경북은 반도체와 AI, 배터리, 첨단소재 산업을 미래 성장축으로 설정하고 산업 전환에 나서고 있지만 국가 첨단산업 투자 방향에 따라 성패가 갈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와 AI 산업은 단순한 생산시설 유치를 넘어선다. 연구개발 인력과 협력업체, 장비·소재 기업, 대학과 연구기관이 함께 집적되며 거대한 산업생태계를 형성한다. 데이터센터와 연구개발 기능, 전문 인력이 집중되는 AI 산업 역시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이 같은 위기의식은 부산·울산·경남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부산은 디지털 물류와 해양산업 고도화, 울산은 자동차·조선산업의 AI 전환, 경남은 우주항공과 첨단 제조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지만 국가 전략산업 투자가 특정 권역으로 쏠릴 경우 인재와 기업, 연구개발 역량까지 함께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구미와 포항, 대구를 축으로 한 반도체·전자·배터리 산업벨트와 부산·울산·경남의 제조업 기반은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을 떠받치는 핵심 축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국가 첨단산업 투자축이 수도권에 이어 호남·충청권으로 이동할 경우 영남권 제조업과 첨단산업 생태계 전반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재호 경북상공회의소협의회장은 "반도체와 AI 산업은 향후 수십 년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성장동력"이라며 "영남권은 반도체와 전자, 철강, 배터리, 자동차, 조선 등 국가 주력산업의 생산기반과 연구개발 역량이 집적된 산업 중심지인 만큼 국가 전략산업 재편 과정에서 특정 권역에 편중된 투자가 아닌 균형 있는 지원과 육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이달 말 발표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 계획이 향후 국내 반도체와 AI 산업 지형을 결정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에서는 이번 발표가 구미와 포항을 비롯한 지역 산업의 미래 경쟁력은 물론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