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귀찮다고 그냥 들어갔다간…" 화학사고 88% '인적 실수', 초가성비 기계로 막는다
사고 저감 현장 가보니…정전기 잡고 주의 집중 시키는 가성비 장치들
기후부 "올해 음성안내장치 400개·방전패드 560개 지원…내년 본격 확대"

24일 오전 충청남도 예산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산업용 세정제 전문 제조업체 바이켐의 제조동 입구. 취재진이 발을 디디자마자 머리맡에 설치된 경보 스피커가 날카로운 경고 음성을 뱉어냈다. 이선화 바이켐 대표이사가 현장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자세히 들으려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도 경보 스피커 음성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이 말은 즉, 작업자가 바쁘다고 무심코 지나치려 해도 기계가 먼저 가로막고 안전 수칙을 강제로 귀에 꽂아 넣는 셈이다.

화학물질 유출 시 안전하게 배수되도록 집수 시설로 연결되는 배수로(트렌치)나 방류벽 같은 안전 설비들은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따라 의무화됐기 때문에 이미 대부분 현장에 설치돼 있다. 즉, 최근 자주 발생하는 화학사고들은 관련 법과 규정이 없어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법적 설비가 버젓이 구비돼 있음에도 현장 작업자들이 기본적인 '안전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러한 규정 미준수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나 '중대재해처벌법' 등 무거운 형사 처벌과 강력한 체벌을 피할 수 없음에도, '괜찮겠지'라는 현장의 방심은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기후부가 인명피해 사고 원인을 심층 분석한 결과, 무려 88.3%(159건)가 작업자의 안전수칙 미준수 등 '인적 요인'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가스 중독을 부르는 개인보호장구 미착용(44건)과 화재·폭발로 직결되는 정전기 등 점화원 관리 소홀(39건)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법적 강제를 넘어 작업자의 주의력을 환기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날 기후부 출입기자단이 찾은 바이켐이 물리적 장치의 도움을 받아 이 같은 '사람의 실수'를 타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현장이었다.

공장의 핵심인 입·출하 하역장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실외 탱크들 앞 바닥에 노란색 페인트로 큼지막하게 쓰인 '화학안전구역'이라는 문구가 시선을 압도했다. 대형 탱크로리 차량이 인화성 물질인 톨루엔이나 에나멜신너 등 가연성 물질을 주입할 때 안전거리를 강제로 확보하게 만드는 시각적 차단벽 역할을 한다. 외벽에는 톨루엔과 메탄올 등 취급 물질별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요약본과 유해성 그림문자가 빼곡히 붙어 있어 흡사 요새를 연상케 했다.

눈에 띄었던 건 작업자들이 밸브를 열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손바닥 모양 '정전기 방전 패드'였다. 맨손을 대고 몸 안의 정전기를 완전히 제거해야 비로소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전기 불꽃 하나가 공장 전체를 날려버릴 대형 폭발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1차 관문인 셈이다. 야외 폐유기용제 저장소 역시 철망 펜스 사방에 '흡연금지', '화기엄금' 경고판을 대형으로 부착해 불씨 하나조차 원천 차단하고 있었다.

손명균 기후부 화학안전과장은 "이번에 도입한 방전 패드는 개당 4만5000원밖에 하지 않고, 안내 장치나 페인트도 단가가 얼마되지 않는 초가성비 장치들"이라며 "비용 대비 인명피해를 줄이는 데 큰 공헌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는 시범 사업으로 진행하는 거라 정부가 예산을 100% 부담한다"며 "폭발 인화성 물질을 갖고 있는 고위험 사업장을 선정해 음성 안내 장치 400개와 방전패드 560개, 화학안전구역 설치 30개소 등을 지원하고, 내년부터는 45억 원 규모의 중소기업 노후 취급 시설 개선 사업과 연계해 국고보조금 60~80%를 매칭하는 방식으로 본격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기후부는 사업장에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점 등을 고려해 내년부터 사고사례 포스터 등 시각자료에 영어 등 외국어를 함께 표기해 보급할 계획이다.
이선화 대표는 "직접 현장 근로자께 여쭤 보니 기존 포스터나 표지판 같은 시각 자료는 벽에 붙어 있어 바쁘게 일하다 보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작업 구역에 들어설 때마다 스피커에서 확실하게 소리까지 질러주니 훨씬 더 직관적이고 순간적으로 주의가 집중돼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된다고 한다"고 전했다.

조현수 기후부 환경보건국장은 "화학사고는 0.1초의 방심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특성이 있는 만큼, 근로자가 의식하지 않더라도 시스템이 먼저 안전을 강제하는 현장 중심 대책이 핵심"이라며 "대기업은 매뉴얼대로 즉시 대피해 인명피해를 막는 시스템이 정착된 만큼, 가성비 높은 저감 우수 사례를 산업계에 적극 환류해 중소기업 전반의 안전 패러다임을 바꿔 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