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 “정전협정 위반 아니다”…한국군·유엔사 ‘다른 목소리’ 이유는?
비무장지대(DMZ) 북측 구간에서 북한이 벌이고 있는 활동들을 놓고, 한국군과 유엔군사령부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군이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히자, 유엔사가 오늘(24일) 이례적으로 팩트시트(설명자료)를 내면서 한국군 입장을 우회적으로 반박했습니다.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다'라는 기존 유엔사의 입장을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며 설명한 겁니다.
하나의 현상을 놓고, '같은 편'이어야 할 양 측이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 유엔사 '정전협정 위반 아니다' 판단 근거는?
유엔사가 오늘 홈페이지에 '유엔사 설명자료 : 비무장지대(DMZ) 정전협정 이행과 최근 북한의 활동'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유엔사는 "울타리 설치와 도로 보수를 포함해 최근 북한의 건설 활동은 군사분계선(MDL) 이북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중화기 반입을 수반하지 않는 한 1953년 정전협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철책 설치와 도로 보수는 "MDL 이북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면 허용된다. 울타리는 방어와 분리 목적을 위한 시설"이라면서,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지뢰 매설 역시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라며 "북측 지역에 방어 목적으로 지뢰를 매설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했습니다. 또, 대부분 지역에서 북한군의 건설 활동이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MDL을 기준으로 최대 이격거리 100m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MDL 침범 증거는 없으며 모니터링 결과 북한이 중화기와 드론 등을 DMZ에 반입한 증거도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이 남측 DMZ에서 "현재 도로, 울타리, 수목 정리와 관련된 36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며 이 역시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며 "유엔사는 남북 양측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남북의 DMZ 내부 작업을 나란히 기재한 것은 결국 한국도 유사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북한만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 유엔사, 북한과 소통한 내역도 공개
유엔사는 "최근 작전 과정에서 북한군은 오판을 막기 위해 기존에 확립된 유엔사와의 연락 메커니즘을 활용해 왔다"며 북측과 그간 소통한 내역도 구체적으로 공개했습니다.
북한은 2024년 10월에는 교통 통로(남측과의 연결 도로·철도)를 차단하겠다는 의향을, 지난해 여름에는 울타리 건설과 도로 보수를 개시한다는 의향을 통보해 왔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MDL 근접 작업에 대해 유엔사가 적극적으로 경고를 전달해 북한군이 우발적 월경을 막기 위해 태세를 조정하고 북측으로 후퇴하기도 했다는 내용도 밝혔습니다.
■ DMZ 북측 구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2023년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한 이후, 북한은 MDL을 국경선으로 만들려는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2024년 4월부터 MDL 북측 인근에 지뢰를 대규모로 매설하고, DMZ 북측 통문 주변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쌓아 대전차 방벽을 만들었습니다. 수십 년간 무성하게 자란 수풀과 나무를 제거해 시야를 확보하는 작업도 벌이고, 병력과 장비가 이동할 수 있는 전술도로를 만드는가 하면, 기존 남북을 잇는 철도와 도로는 철거해 버렸습니다.
■ 정전협정 위반?
DMZ는 MDL에서 각각 남북으로 2km 거리까지로,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DMZ를 '완충지대'로 규정합니다. 남북이 바로 맞붙어 있으면 언제든 우발적 충돌이 생길 수 있으니, 이걸 막자는 취지입니다. DMZ에는 군사시설 설치나 무장 병력 주둔이 금지되고, 그 안에서 적대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엔사가 공개한 것처럼 현실은 좀 다릅니다.
남북 모두 70년 넘게 DMZ 안에 감시초소(GP), 도로, 철책, 경계 시설 등을 설치해 운용해 왔습니다.
단순한 수목 제거, 경계 목적의 도로 정비, 일부 방어 시설 보강 등의 활동은 유엔사 설명처럼 '정전협정 위반'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반면, DMZ 내 새로 군사시설을 구축하거나, 중화기 배치 행위, 공격 목적의 진지 구축 등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에 해당합니다.
■ 한국군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 첫 언급
유엔사가 '팩트시트'를 공개한 건, 한국 정부가 북한의 DMZ 내 활동이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거듭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2일, 합동참모본부는 이렇게 입장문을 냈습니다.
[ MDL 일대 근접 활동 관련 합참 입장 ]
ㅇ 북한군의 MDL 일대 장애물 설치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으로, 우리 군은 유엔사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지속 대응해 나갈 것임.
같은 날,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도 "'DMZ를 설정해 이를 완충지대로 함으로써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한다'는 정전협정 1조 1항을 언급하며 "(이를) 근거로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말씀드린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빛나 대변인은 어제(23일)도 "국방부는 북한군의 MDL 일대 장애물 설치를 정전협정에 따라 설치된 완충지대를 무력화하는 명백한 위반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북한의 국경선 요새화 작업이 시작된 지는 2년 이상이 지났지만, 정부가 이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하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 '다른 목소리' 이유는?
북한이 MDL을 국경선화 하려는 작업은 2024년에 시작됐습니다. 윤석열 정부 시절입니다. 당시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DMZ 내 활동을 여러 차례 공개했지만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2024년은 북한이 DMZ 상공을 통해 남한으로 오물 풍선을 계속 살포하던 시기입니다.
무인기 침투 사건도 있었습니다. 2022년 12월, 북한이 서울 상공으로 무인기를 침투시켰고, 2024년 10월에는 한국이 평양 상공으로 무인기를 보냈습니다. 상대방 영공으로 군용 무인기를 침투시키는 행위야말로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정전협정은 유엔군, 북한군, 중국인민군 간 체결된 협정입니다. 정전협정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주체는 유엔사입니다.
최근 유엔사는 DMZ 일대 활동과 관련해, 계속 한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DMZ 출입 통제 권한을 놓고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유엔사가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DMZ 관할권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양 측의 갈등 국면이 이번 사태에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정전 체제 관리 책임이 있는 유엔사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상황을 잘못 관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줘선 안 된다"면서 "한국군이 유엔사와 협의 없이 북한군 활동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단독으로 발표한 것에 유엔사가 발끈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양측의 판단 기준이 다른 것일 뿐, 과잉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조성렬 경남대 초빙교수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기조 속에서 헌법 개헌까지 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조 교수는 "북한의 적대적인 대남 정책과 군사 활동을 종합적으로 본다면 한국군 판단처럼 완충지대를 무력화하는 '정전협정 위반'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반면 유엔사는 순수하게 군사적인 측면에서 '공격 의도'만 봤기 때문에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다'라고 밝혔을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유엔사가 남북 간 문제에 '당사자'로 휘말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일 거란 지적도 있습니다.
북측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라고 규정하면, 그에 따르는 후속 조치도 함께 요구해야 합니다. 이 경우 북측이 반발하면서 유엔사의 권위를 부정하고 유엔사와의 소통 채널인 '핑크폰'마저 단절해 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조용근 경남대 군사학과 교수(전 국방부 대북정책기획관)는 "유엔사가 남북 모두에게서 자신들의 위상을 강화하고,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남측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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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 기자 (j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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