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노을 전시관 / 박숙경

노을 전시관
박숙경
박제된 노을/ 저기, 한 오백 년쯤 갇히고 싶었네// 꽁꽁 싸매둔 시간을/ 팽팽한 수평에 풀어놓고 싶었네// 이미 먼 곳의 사람을 생각하며 아득해져/ 저물지 않는 하루였으면 했네// 그 밤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별을 두고/ 천 년 꿈의 빛으로 박아놓았으면 했네// 누구 하나 사라져도 표시 나지 않는/ 세상쯤은 잊어도 괜찮겠다는 생각 들었네// 노을이라는 뜨거운 말을 생각하며/ 먼지처럼 안개처럼 흩어져도 좋은// 칠산 앞바다는 온통 바람의 독백뿐이었네
『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달아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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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전시관은 전남 영광군 백수해안도로에 위치한 전시관으로, 하루 한 번 노을을 전시한다. 그녀의 시를 읽으며, 나도 언젠가는 '서쪽 허공 전시관에 노을을 걸어둬야지', 라고 상상한다. 아니, '하늘 전체를 전시장으로 보고 붉은 빛이 스스로 작품이 되게 둬야지'라고, 생각을 고친다. '노을을 구름 액자에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 바다의 방식으로 그냥 섬이 있는 수평선에 세워두면 더 좋지 않을까'라며, 궁리한다. 포인트 조명은 '보랏빛과 남색으로, 잠시 켜 둬야지' 떠올리다가, 작품 설명만은 '노을' 스스로가 하게 둘 작정이다. 하여, 나는 서쪽 바다에 무더기로 "노을"을 심는 박숙경(1962~, 경북 군위 출생)이 부럽다.
그녀처럼 나도 "저기, 한 오백 년쯤 갇히고 싶"다. 붉게 번진 '노을 의자'에 앉아 한 백 년 노을 시를 쓰다 가면 좋겠다. "꽁꽁 싸매둔 시간을" 풀어 "팽팽한 수평에 풀어놓"고, 사랑하는 이와 팬플룻을 들어도 좋겠다. 그녀의 시는 이미지와 묘사를 서경과 서정으로 버무려 작품을 빚는다. 이런 그녀만의 개성적 아름다움은 균형감각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법고(法鼓)를 통해 창신(昌新)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신선한 주제는 시의 깊이를 더한다. 어쩌면 지구는 노을이란 붓으로 한 편의 명시를 쓰는 시인인지도 모른다.
박숙경이 그러하듯, 노을은 서녁 하늘과 바다 사이에 번진 은유다. 영원히 "저물지 않는 하루"의 풍경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별을 두고/ 천 년 꿈"을 꾸게 하는 매혹적인 시의 장소다. 주황빛이 사라진 시간의 온기라면, 보랏빛은 다가오는 밤의 신비다. "누구 하나 사라져도 표시 나지 않는" 시의 유토피아다. 노을은 빛과 어둠이 만나는 경계의 미학이며, 사물과 세계의 윤곽을 더욱 깊게 판다. 자연이 그리는 가장 짧은 노을 전시회에서, 우리는 가끔 "세상쯤은 잊어도 괜찮겠다".
붉은 캔버스에 스며오는 '물안개'를 본 적이 있는가? 그 오묘한 색채는 자연의 감정 같기도 하고, 시인의 느낌 같기도 하다. 그러하다. "칠산 앞바다"는, 그 자체가 시의 침묵의 세계다. 아니, "바람의 독백"이다. 노을은 하루의 끝을 예술로 바꾸는 지구의 시법 중 하나이다. 하여, 박숙경은 추상의 이미지를 통해 영감(靈感)을 불러내었다. 그 풍경이 번지는 노을 끝에는 시인이 꿈꾸고 있어 더욱 빛난다.
김동원(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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